‘수상한 그녀’ 심은경 명연기로도 채울 수 없는 빈틈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심은경이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다면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라. 20대로 돌아간 70대 할머니를 그린 판타지 영화이니 배우에게는 스턴트다. 테크닉 과시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지만 그 결과가 이렇게 관객들을 웃기고 울릴 정도로 강렬하다면 그건 배우가 가진 재능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말이다. <로맨틱 헤븐>이나 <써니>를 볼 때도 느꼈지만 특히 이 배우는 이전 세대 한국 여성들과 일종의 채널링이 가능한 것 같다. 그 연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능청맞아서 보고 있으면 멀미가 날 정도이다.

심은경의 연기를 제외하면 나머지 영화는 평이한 정도이다. 다른 조연배우들도 자기 역할을 정확하게 하지만 연기가 빛나는 부분은 거의 대부분 심은경에게 쏠려있다. 마법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은 70대 주인공이 20대로 돌아간 뒤 겪는 일들은 별다른 고민없이 지나치게 수월하게 흘러간다. 하긴 배우 한 명만 확실하게 빛나면 끝나는 영화에서 이 정도면 충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영화의 각본 과정 중 소재에 대한 고민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소재란 노인 문제와 그와 연결된 다양한 갈등을 가리킨다.

도입부에서 심은경의 캐릭터, 그러니까 젊어지기 전 나문희 캐릭터의 아들 성동일이 나오는 장면을 보자. 그는 노인문제를 전공하는 대학교수인데, 학생들에게 노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묻는다. 뻔뻔하다, 몸에서 냄새가 난다, 와 같은 일반적인 대답이 돌아온다. 나올 법한 답들이다. 하지만 실제 교실이라면 반드시 나와야 할 몇몇 답은 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왜 어느 누구도 어버이 연합의 가스통 할배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은 가장 눈에 뜨이는 노인들인데?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를 지적하자. 보편적인 답변만으로는 현대 한국 사회의 노인들이 겪고 일으키는 문제를 올바르게 접근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너네들도 늙어봐라" 식의 해결책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노인들의 문제점은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노인들은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의 산물이고 그만큼이나 특별한 위치에 있다. 이것은 세대 문제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노인들이 겪는 문제는 지금과 달랐고, 몇십 년 이후의 노인들이 겪을 문제는 또 다를 것이다.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는 것이 일반적인 성향이라고 해도 지금의 젊은이들이 나이 들어서 가스통 할배가 된다고 한다면 좀 이상한 주장이 아닌가. 아마 지금 젊은이들이 늙으면 일베 할배라는 조롱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가스통 할배와 일베 할배는 전혀 다른 종일 것이다.

저 정도로 과격하지는 않지만 심은경이 되기 전 나문희 캐릭터도 그 나이 또래 할머니들에게 자연스러운 특별한 선입견과 사고방식 속에 갇혀있다. 남편을 잃고 6,70년대의 가난을 험악하게 견뎠고 그렇게 키운 아들을 지나치게 자랑스러워하며 며느리에게는 끔찍한 시어머니이다. 이 사람은 '생존과 아들 키우기'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심각한 일들을 저지르기도 했다.

특히 사진관에 가기 직전에 폭로된 잘못은 끔찍한 수준이라 상식적으로 용서하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이 할머니의 변명은 겨우 "그래도 나는 내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웠어!"인 것이다. 물론 이건 이전 세대 여성들에게는 당연한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윤리준칙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최근 몇십 년 동안 한국 여성들이 일상 속에서 무심하게 저지른 끔찍한 일들 상당수는 자식, 그 중에도 아들이라는 단어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겪는 고통도 거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런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 뒤에 이어지는 심은경의 이야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배우가 바뀌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전 나문희 캐릭터와는 다른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무리 심은경이 충실하게 연속성을 유지한다고 해도 두 캐릭터 사이엔 명백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심은경일 때 겪는 모험을 통해 나문희 캐릭터가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심은경의 연기가 좋았다는 것은 앞에서 인정했으니 두 번째로 넘어가자. 70대 할머니가 20대 아가씨가 되어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자기를 좋아하는 동네 할아버지의 하숙집에 얹혀 지내면서 손자가 리더인 밴드의 리드보컬이 되었고 우연히 그들을 발견한 방송국 PD와 연애도 한다. 모두 매력적인 소망성취이다. 하지만 성장은? 깨달음은?

영화는 유감스럽게도 그 특별한 세대에 얽혀있는 사람의 인식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 결국 이번에도 답은 혈통과 모성애다. 그러는 동안 가장 큰 희생자처럼 보였던 며느리와의 화해는 얼렁뚱땅 넘어가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영화는 이 이야기를 당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성애 예찬 속에 묻어버린다.

그것은 올바른 알리바이가 아니다. 어머니와 노인이라는 단어는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진다. 하지만 그들은 나문희 캐릭터가 그 특수한 시대와 상황 속에서 저지른 모든 일들에 대한 변명은 되지 못한다. 심은경 캐릭터가 겪는 모험은 재미있고 귀엽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세대를 진지하게 돌이켜볼 시간을 내는 방법을 찾는 건 꼭 필요한 일이 아니었을까? 왜 주인공이 어머니와 노인을 넘어선 무언가로 성장할 기회를 날려버리는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수상한 그녀> 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