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연출가 박툴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13년 전 가로 세로 8m의 무대, 2개의 판넬, 6개의 박스, 2개의 막, 7명의 배우와 함께 작은 소극장에서 시작된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이하 백사난)가 뮤지컬로 새롭게 태어났다. 2001년 5월 초연 돼 ‘어른을 울린 어린이극’, ‘마법에 걸린 연극’이라는 별명은 물론 ‘10년 전 연인과 함께 보고 10년 후엔 내 아이와 함께 보는 공연’이란 수식어를 이끌어내며 지금까지 8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다.

서울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 최우수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고 월간 한국연극이 꼽은 ‘올해의 연극 베스트 5’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중음악의 뮤직비디오 콘텐츠화(가수 이기찬의 ‘또 한번 사랑은 가고’ 앨범), 연극 분야 최초의 팬클럽 결성(‘백설기 마을’), 희곡의 소설화(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10위), 대만 라이선스 공연 수출,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중학교 국어교과서 등재(지학사 발행)에 이르기까지 소극장 연극의 신화를 다시 썼다.

<백사난>(작 연출 박툴, 작곡 조선형, 음악감독 제갈윤, 안무 류장현 조성주)은 유명 동화 <백설공주>를 재해석해 백설공주를 향한 난쟁이 ‘반달이’의 가슴 시린 짝사랑을 담고 있는 작품. 2013년 12월 이화여대 삼성홀 공연을 마친 뮤지컬 <백사난>은 지난 24일부터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으로 장소를 옮겨 연장공연을 펼치고 있다. 연극에서 뮤지컬로 바뀌어 다채로운 볼거리가 늘어나고 청각적인 기쁨도 높아졌다. 변하지 않은 건 백설공주를 사랑한 막내난장이 반달이를 통해 마음 깊이 느끼게 되는 ‘가장 작은 자의 가장 큰 사랑이야기’에 대한 울림이다.

공연예술창작소 생각나무 툴(전 극단 툴)의 대표이자, 13년간 <백사난>과 동거동락 해온 연출가 박툴(박승걸)을 만났다.

■ <백사난> 뮤지컬 작업은 아름다운 추억과의 싸움

-연극을 뮤지컬로 다시 만든 이유는?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았는데 여러모로 ‘내가 처음 이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면...’ 이란 생각으로 그 때 못했던 걸 해 보는 것이다. 대본, 음악, 무대, 의상,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순수하고, 목숨을 건 사랑이야기는 그대로이다. 연극일 때도 음악은 함께 했었다. 주인공 반달이의 마음을 대신 표현하는 인물이 감성적 해설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워낙 음악적 구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연극 연출가 중 한 명인데, 이번엔 뮤지컬이라고 표방했으니 마음껏 음악을 썼다. 반달이의 마음을 노래로 하는 부분이 늘어났다.”

-반달이가 직접 부르는 넘버가 없다. 뮤지컬로 바뀌어서 반달이가 노래를 할 거라 예상한 관객도 있었을 것 같다
“‘주인공이 노래를 한 곡도 안 해?’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벙어리 난쟁이 반달이의 분위기, 마음 등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극과 마찬가지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배우들이 반달이의 마음을 노래로 부른다. 뮤지컬로 바뀌면서 연극을 봤지만 못 봤던 반달이 마음이 더 진하게 느껴질 거라 봤다.”

-반달이 역 강연정 배우에겐 연출로서 어떤 말을 많이 해주었나
“‘연기를 열심히 해라’ 란 말을 많이 했다. 실제 말을 하지 못하는 반달이는 연기 밖에 기댈 게 없다. 다른 배우들은 대사가 도와주는데 반달이는 연기 말고는 아무것도 기댈 게 없다. 반달이의 감정을 진짜 느끼고 손끝 발끝 하나에 감정이 표현이 되어야 관객들도 느낄 수 있다. 대사만 없지 하는 게 정말 많은 역할이다.”



-반달이와 닮은 날지 못하는 홍등수리가 새롭게 등장했다.
“연극에선 대사로만 나오고 등장하진 않았던 캐릭터다. 그 외에도 몇몇 캐릭터가 더 등장한다. 뮤지컬로 바꾸다보니 반달이가 혼자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어 도와 줄 조력자 역할을 만든 거다.”

-뮤지컬 작업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연극을 보셨던 분이 많아 ‘연극과 뮤지컬을 비교하겠구나’란 생각은 든다. 미처 놓쳤던 부분은 ‘아름다운 추억과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연극에도 못한 장면이 있었을텐데 이전 것이 좋았다고만 추억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처음엔 완전히 새롭게 다 바꾸려고 했지만 연극에서 반응이 좋았던 장면은 남겨두자 마음 먹었다.

상업적 비상적 구분이 아니라 뮤지컬이다 보니 극 중간에 음악을 갑자기 쉴 수 없어 넣게 되는 장면도 생기게 됐다. 이렇게 바뀌어서 더 좋다고 봐주는 분도 있겠지만 안 좋다고 보는 분도 있을 걸 안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더 좋아진 게 많다고 생각한다. 안 좋아진 게 조금 있다면 좋아진 건 더 많다. 뮤지컬 <백사난>으로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전 이화여대 공연에서 대학로로 넘어오면서도 좀 더 수정 과정을 거쳤다. 계속 보완해나가겠다.”

■ 가슴 아픈 첫사랑의 추억을 위로해주고 대신 말해주는 작품 <백사난>

-20~30대 연인들이 연애시절에 이 작품을 보고 ‘우리 아이가 커서도 이 극을 관람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공연 초창기에 그런 반응이 있었는데 얼떨결에 그 약속을 지킨 셈이다. 어른들도 볼 수 있는 어린이 연극을 만들고자 생각 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주 관객 층이 2,30대 연인들이 됐다. 이번엔 작정하고 가족이 함께 보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자 마음 먹었다.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연출했다. 음악과 함께 연극 이야기의 흐름을 가져가고 그 전에 없던 거대 인형들이 나와 비주얼적인 부분을 풍성하게 만들다보니 어른은 물론 아이들도 인상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명품 어린이 극이라 불러도 좋고, 진정한 의미의 가족극으로 불러도 좋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런 작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러 번 작품을 봤지만, 넘실거리는 바닷물 장면과 안개 꽃 장면은 쉽게 잊기 힘들다.
“그 장면들을 인상적으로 본다는 건 극적으로 잘 들어맞았기 때문 아닐까. 커다란 천을 이용한 바닷물 장면과 샤막과 조명 효과를 활용한 안개 꽃 장면도 어찌보면 공연에서 흔한 효과일 수 있다. 극적으로 얼마나 잘 맞게 쓰느냐에 따라 관객들 반응이 달라지는 것 같다. 안개 꽃 장면에서 많이들 놀란다. 처음엔 거울이 그려져 있으니 ‘거기에서 뭐가 나타나겠다‘ 생각하게 되는데, 그 예상을 파괴하고 안개꽃밭이 펼쳐진다. 그 파괴력에 놀라는 것 같다. 특히 무대가 커지면서 안개 꽃밭은 두 배 정도 넓어졌다. 이전엔 천만송이 안개꽃이 깔렸다면 이번엔 2천만송이 정도 될까? 그런데 무엇을 한 송이로 따지느냐에 따라 수치는 다를 것 같다. 안개 꽃(조화) 한 송이에 50개 정도의 꽃이 달려있으니 100만송이라고 해야 하나?

기억나는 일화로는 처음에 <백사난> 연극을 할 때, 국내 안개 꽃 조화를 다 구해다 써 안개 꽃 조화를 구하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우리를 위해서 주문생산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2년간 공연을 안했더니 그 공장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엔 다른 공장에서 샘플을 제작했다.“



-박툴 연출에게 <백사난>은 어떤 존재인가
“내 엄지손가락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나에게 있어서 안할 수 없고... 또 계속하기엔 쉽지만은 않은 작품이다. 13년 전에 연극으로 올렸는데, 일반인 분들 뿐 아니라 관계자들도 그 동안 이 작품만 했다고 생각한 분이 많다. 저보다 이 작품이 더 유명하다. 제 이름도 분명히 말했을 텐데 이름은 잊어버리고 작품 <백사난>을 더 잘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공연 일 만 해왔다. 이 작품 말고도 모든 작품을 열심히 했다. 한 번도 대충 한 적은 없다. 검지 작품은 극단 사다리와 같이 만든 <거북이 고투더월드>이다. 우리말로 하면 ‘거북이 세상속으로’이다. 새끼 거북이의 순환과 고난을 극화한 작품인데 실험성이 강하다는 평도 들었다.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은 <백사난>이다.“

-<백사난>이 오랜 시간 사랑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
“왜 사랑받았냐? 누구나 경험했을 만한 보편타당한 스토리가 담겨 있어서 아닐까. 대부분 첫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나는데, <백사난>은 가슴 아픈 짝사랑이자 첫사랑 이야기다. 그 경험과 그 추억을 위로해주고 대신 말해주는 작품이다. 말 못하는 작은 난장이 반달이란 캐릭터가 상징하는 게 대중가요 가사 ‘그대 앞에만 서면 난 왜 작아지는가’ 그 심정과도 같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작아져 말 못하는 심정 말이다.

첫 사랑을 가슴 아프게 떠나보낸 경험을 지닌 분들이 많이 공감하는 작품인 것 같다. 나이가 40~50대인 아저씨들이 감정이입 돼서 우는 경우도 봤다. 흔치 않는 경우이긴 한데 저희 형이 50대에 이 작품을 보고 울었다. 가슴 아픈 남자가 목숨을 건 사랑 이야기로 어필된 거 아닌가. 그것도 동화 백설 공주 이야기를 가지고 어필 했다는 점이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박툴 연출은 “한 편의 공연은 관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장 진실한 만남이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있다. 무대가 무대 아래에 있는 관객에게 뭔가를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론 무대 아래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다. ‘영화도 비슷하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영화는 직접 만나지 않는다. 관객이 영화관에 있을 때 그 배우는 다른 곳에서 다른 걸 하고 있다. 영화 역시 좋아하지만, 무대 연기를 볼 때 그 직접적 교감은 타 장르가 흉내 내지 못한다. 그 공연이 내 고민, 아픔, 추억을 이야기해준다고 했을 때 엄청난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진실한 만남이다. 이런 경험을 카타르시스, 대리만족, 감정이입이란 단어로도 부르지만 관객 입장에선 결국 내 이야기를 말 한 것이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쇼플레이, 마케팅컴퍼니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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