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이례적 흥행을 보는 흥미진진한 분석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의 인기는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예외적이다. 아직도 거의 불사조처럼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미국내 순위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극장에서 이렇게 인기를 끈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극장 흥행도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인기는 그를 넘어선다. '겨울왕국'으로 간단히 검색해도 팬들이 만든 2차 창작물이 쏟아지는데, 그 속도와 양은 놀랍다.

당연히 이 상황을 분석하고 싶어진다. 가장 쉬운 대답은 이 작품이 인기를 끌만큼 잘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디즈니가 자기네들이 가장 잘하는 것들을 완벽하게 구현해냈다거나, 이야기가 특별히 재미있다거나.

하지만 성공 이후의 때늦은 분석이 대부분 그렇듯, 이 모든 것들은 조금씩 구멍투성이다.

우선 애니메이션과 뮤지컬의 조합은 그렇게까지 오래된 디즈니 전통이 아니다. 지금도 <피노키오>나 <신데렐라>와 같은 영화들에 삽입된 노래들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본격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뮤지컬이 시작된 것은 앨런 멘켄과 하워드 애쉬먼이 <인어공주>에 참여한 뒤부터이다. 기껏해야 20여년 정도의 역사인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나온 영화들 중 <겨울왕국>과 같은 인기를 얻은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렇게 보면 디즈니가 자기네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했다는 그냥 의미가 없는 말이다. <겨울왕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그러니까 올라프와 같은 귀염둥이 캐릭터나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와 같은 것들이 최근까지만 해도 진부하다고 공격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니 의외로 타이밍을 맞추어 성공한 영화가 어쩌다보니 새로운 디즈니 전통에 맞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특별히 잘 만들어진 영화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기술적으로는 디즈니/픽사 3D의 첨단을 걷는다. 하지만 각본은 평이한 편이고 그리 치밀하지도 않다. 반전은 성급하고 결말은 급작스럽다. 매력적인 노래들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기존 디즈니 뮤지컬의 정점인지는 알 수 없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인어공주> 이후 나온 디즈니 애니메이션 뮤지컬 중에는 지금 잊힌 게 아쉬운 노래들이 굉장히 많다.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발굴해보시길. 일단 <노틀담의 꼽추>부터 추천한다.)



정치적 진보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흥미진진한 분석들이 많이 나온다. 일단 주인공 엘사의 능력과 그에 대한 반응을 동성애 메타포로 읽는 것인데, 이 부분은 대사나 스토리 전개가 너무 노골적이라 의도적이 아니었다고 볼 수가 없다. 일반적인 디즈니 영화들과는 달리 엘사와 안나의 자매 관계를 안나와 크리스토프의 이성애 연애 관계보다 높게 놓는 태도도 신선하다. 다들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한데, 정치적 진보성이 곧장 흥행으로 이어진 적이 있던가?

그렇다면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무래도 그냥 '사고'라고 말하는 게 가장 정확할 것 같다.

무신경한 이야기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겨울왕국>의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방향전환을 겪었다. 지금 엘사의 캐릭터, 엘사와 안나의 관계와 같은 것들은 모두 본격적인 작업 직전에 결정된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영화는 종종 다른 내용의 이야기들이 거칠게 엮인 것처럼 보인다. 사고가 일어나기 딱 좋은 환경인 것이다.

단지 그 완벽하게 계산하지 못한 불완전한 그림 속에서 사전 계산으로는 잡아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생겨난다. 두 주인공인 엘사와 안나를 지금의 자매 관계로 수정하는 동안에도 이 영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의무적으로 삽입되는 이성애 로맨스에 밀려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의 영역이 있고 이 영화는 바로 그 영역을 건드린다. 마찬가지 이유로 완결되지 못한 채 조금씩 열려있는 인간관계는 오히려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관객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우연과 미완성으로 도달한 성공은 모방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식화된 계산 밖에 우리가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 무언가를 찾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공식 안에 갇혀 지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겨울왕국>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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