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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주 “‘은밀한 기쁨’ 정치인들이 보러왔으면”
기사입력 :[ 2014-02-04 19:01 ]


[인터뷰] 연극 <은밀한 기쁨> 배우 우현주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오는 7일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되는 연극 <은밀한 기쁨>은 198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경제 몰락과 함께 위기를 맞는 ‘전통적인 가치와 인간성 붕괴 혹은 그 회복’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 현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과 흡사한 1980년대 후반의 영국의 모습을 신랄하게 그려내고 있다. 연극 <에이미>(Amy’s Veiw) <블루 룸>(Blue Room) 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영국 극작가 데이빗 해어(David Hare)의 대표작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돌보며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 이사벨은 조용히 아버지와 작별하기를 바라지만, 환경부 차관인 언니 마리온과 성공한 기업가인 형부 톰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 아버지의 젊은 새 아내인 알코올중독자 캐서린과 언니가 부딪히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배우 추상미(이사벨역), 우현주(마리온역), 이명행(어윈역), 서정연(캐서린역), 유연수(톰역), 조한나(론다역) 등이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극단 맨시어터의 대표이자, 경제논리와 정치적 야심으로 뭉친 첫째 딸 마리온 역을 맡은 배우 우현주를 만났다.

■ 가족드라마와 정치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끽하다

-<은밀한 기쁨>을 한국 무대에서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10년 전 처음 대본을 읽었고, 2007년 쯤 무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극단 단원들과 리딩을 했어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덮어놓고, 다른 작품을 올렸어요. 정권이 바뀌는 시기였던 작년에 다시 대본을 읽었는데 훨씬 재미있게 다가와 올려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어요.”

-어떤 점이 재미있었나?
“시대적으로 학생 운동이 소강상태였을 때 대학을 다닌 1세대 X세대에요.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것을 봤고, 자본주의가 옳다고 믿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20년이 지나 자본주의가 몰락했어요. ‘과연 무엇이 맞는가?’란 생각이 들 시기에 대본을 다시 읽은 거죠. ‘의심 없이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진짜 옳은가?’, ‘전통적 가치의 고수이냐,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는 게 옳으냐’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작품이었어요. 또 지금이 마치 80년대 후반 정부처럼 여러 가지 민영화가 시작되려는 시점이고. 그런 식의 결말을 맞길 바라지 않지만 시대적인 결말도 이 작품과 맞다고 봤어요.”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 온 추상미 배우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이유는?
“작품의 중심 인물이 이사벨인데 이해하기 어려운 인물 중 하나입니다. 웬만한 분석력을 가진 배우가 아니면 하기 어려울 정도로요. 영국 공연 때는 물론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 때 ‘이사벨이란 인물을 이해할 수 없다. 주인공인지만 존재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캐릭터입니다. 배우가 가진 존재감이 강해야 소화할 수 있는 역이죠. 또 분석 잘하는 지적인 배우 이렇게 두 가지가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추상미 씨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상미 씨가 이 대본을 좋아할 것 같다는 확신도 있었고, 남편인 이석준 씨랑 가깝기도 했고요.”

-이사벨의 애인 ‘어윈’ 역에 이명행 배우를 캐스팅 한 이유도 비슷한가
“명행 배우는 연극 <푸르른 날에>를 보고 반해서 같이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 전에 <벚꽃동산> 캐스팅 제안을 먼저 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하지 못하고 <터미널>이란 작업을 같이 하게 됐어요. <은밀한 기쁨>의 어윈도 ‘이사벨’이란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무색무취 배우가 올라오면 하기 어려운 역입니다. 추상미 배우에 대적할 만한 배우 에너지와 개성이 중요한데, 명행 배우가 적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광보 연출은 “<은밀한 기쁨>은 체홉과 입센의 결합” 이라고 한줄 평을 말했는데 우 배우가 대본을 접하고선 어떤 감상이 먼저 들었나?
“좋은 게 이미 나와 있는데 뭐라고 정리를 해야 할까요? 가족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극장에서 나올 때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요.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한 그런 이야기’라고 하면 될까요. 지적인 희곡을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포부가 있어요.”

-김광보 연출이 나가고자 하는 방향은 뭐였나
“작품 속의 은유, 함축적 의미를 살리려고 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한 가족의 이야기, 그 것도 대립되는 가치관을 지닌 가족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살아나야 정치적 은유, 함축적인 의미도 자연스럽게 살아나게 될 것이다,고 말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다른 가치관을 지닌 자매를 묶어주는 존재가 후처 캐서린입니다. 부권의 상실 후 흩어진 이들이 가치관을 주장하고 자기만 살아남으려고 해요. 이 안에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사벨이 왜 계속 캐서린에게 선의를 행할까. ‘희생’이란 의미일 수도 있는데 이해가 안 갔어요. 자료에서 보면, 세상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오염돼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다들 비슷한 정도로 오염돼 있길 바라고 있어요. 그게 편하니까요. 그들에게 너무 선의를 앞세운 선한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그 선한 사람을 공격 하게 되요. 그 시점이 재미있어요. 그 선한 걸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사회, 인간적이지 않은 사회의 모습이요.”

-이사벨의 주변 인물들은 그녀의 ‘선의’를 견뎌내지 못한다. 그들에겐 ‘선의’가 없나?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가 생각하는 ‘선의’가 있어요. 그런데 흔들리고 있는 거죠. 연습 시작 단계에서, 연출님이 ‘오히려 이런 사람(이사벨) 많아’란 말을 던지셨는데... 되게 우스운 일이구나 란 생각이 들었어요. 새 어머니 캐서린을 골칫덩이라고 생각해 이사벨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봤는데, 주객이 전도 된 태도일 수도 있겠구나.”

-몇몇 관객들에게 연습실 공개를 했다고 들었다.
“10명의 관객 앞에서 연습 장면을 선 보였어요. 이사벨이 아닌 다른 배우들이 대사 할 때마다 ‘어머나 어머나 뻔뻔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어요. 이사벨 말고 다른 배우들에게 감정이입하기 힘들 정도로 설득력 있는 이사벨이 나왔어요. 상미 씨가 설득을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어요. 많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김광보 연출과 함께 작업해 보니 어땠나?
“작품이 주인을 제대로 만난 것 같아요. <은밀한 기쁨>이 김광보 연출님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돌직구로 맥을 뚫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데 최고의 고수를 만난 것 같아요. 배우에게 말을 던지고 작품을 끌어가는 게 예술 입니다. 디테일을 잡아주기 보다는 배우에게 이 말을 던지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다 알고 계세요. <스테디 레인>도 그렇게 요술을 부리셨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연습이 잘 안돼서 혼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는데, ‘1장은 조금 무거웠으면 하고, 2장은 슬프고 3장은 어윈이 더 아팠으면...’ 이렇게 한번 씩 선문답 같은 걸 던져주고 가면 요술처럼 뭔가 해결점이 보여요.

이 작품의 핵심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힘든 멘트들인거죠. 오죽하면 책을 내려고 마음 먹었어요. 인터뷰에서 직접 말을 해서 스스로 족쇄를 채워야겠네요. <은밀한 기쁨> 비하인드 프로덕션 책을 내고 싶어요. 국립극단에서 내는 것보다 조금 라이트하게 만들려고요. 처음 꾸려진 연극 기획사, 혹은 학생들, 배우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요. 연습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생각났어요.”



■ 연극에서 만나게 될 ‘대처리즘’

-경제논리와 정치적 야심이 강한 이사벨의 언니인 ‘마리온’ 역을 맡았다.
“이사벨과 마리온 자매의 아버지는 진보주의자입니다. 웃긴 게 동생은 진보당, 언니는 보수당에 있어요. 극중 이사벨은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지녔지만 전통적인 가치를 고수해, 가족을 사랑하고 책임감과 신뢰를 중요시해요. 가족관계, 생활 방식에선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는 인물인거죠.

‘보수’에도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환경부 차관인 언니 마리온은 돈을 벌고 성공을 하는 걸 절대 절명으로 여겨요. ‘거짓말도 하는데 그게 인간적이지 않냐’고 응수해요. 마리온이 말하는 ‘보수’는 성공과 돈은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거죠. 그러면서 스스로는 보수적이다고 주장해요. 언니는 끝없이 위로위로 올라가고 싶어해요. 동생이 동의하지 못하면 못 견뎌하는 거죠. 끝없이 동생을 의심하면서 동생을 몰아붙이고 화를 내요. 동생이 죽고 나서야 모든 것이 한 순간에 확 들어오게 되는 그런 언니입니다.”

-언니 마리온은 비논리적인 분노를 보이며 동생과 갈등을 겪는다.
“이 집안은 즐겁게 남에게 베풀면서 사는 걸 좋아해요. 맨 마지막 장면을 보면, ‘어렸을 때 우리는 이렇게 놀았고, 이사벨에겐 마법의 세계가 있었다. 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생 화만 내고 살았다’고 말 해요. 그 이야기들을 유추해보면, 언니는 동생에게 콤플렉스가 컸을 거 같아요. 언니가 동생보다 공부는 더 잘하지만 인기는 없어요. 아버지는 언니보단 동생과 ‘쿵짝’이 잘 맞아요. 동생에게 ‘아빠랑 똑같냐’ 란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는데 마리온에겐 파더 콤플렉스도 있었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딸을 무시하거나 학대 한 건 아니었겠지만, 동생 이사벨과 더 깊은 교류를 하고 있고 언니인 난 뒷전이다는 생각을 하게 하니까요. 머리가 좋은 마리온이다보니 그런 생각도 분명 들었을 것 같아요.”

-마리온이란 인물은 마가렛 대처의 모델인가?
“네. 그렇죠. 데이빗 해어(David Hare) 작가는 마가릿 대처를 끔찍하게 비판했어요. 대처의 보수당을 비판한 것은 물론 행동하지 않은 진보주의자도 비판했던 작가이죠. 마리온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건 옳다고 생각하지만 희생하는 건 마땅하지 않다고 봐요. 심지어 동생에게 손해를 끼치고도 우리는 잘 하려고 했었다고 말해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아요. 잘못된 결과가 나와도 ‘그게 뭐가 대수냐?’라고 대응하죠. 자신의 뜻대로만 재단하려 해서 사실 좋아하기 힘든 인물입니다. 불쌍하게 생각하면 또 불쌍한 인물이긴 해요.”

-환경부 차관인 마리온의 정치적인 모습은 어떠한가
“극 안에서 정치가들의 뒷모습, 오프더레코드 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리온은 언론과 국민을 우습게 아는 태도를 보여요. ‘언론에 헤드라인을 줬지 않나’ ‘그들을 조정하는 건 식은 죽 먹기다’는 식으로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부분 동감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전에 촛불시위에 대해서 윗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다’는 말들을 많이 했어요. 성공한 사람들은 ‘우리는 하고 싶어도 못한다. 바쁘니까’라고 말 했는데 그런 모습들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치인들도 <은밀한 기쁨>을 보러 왔으면 좋겠다
“정치인들이 보러왔으면 해요. ‘보러 온다고 해서 뭘 가지고 가겠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로 말도 안 하고 너무 심한 거 아니야’란 생각에 그들이 와서 봤으면 좋겠어요.”

-흔히들 ‘연극이 정치적이다’고 말 하는데 그에 대한 생각은?
“대놓고 정치적인 작품은 처음 해요. 저희 극단 맨 씨어터를, 또 대표인 저를 많이들 페미니즘 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요. 꼭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마치 여성 연극인의 대부처럼 비쳐지는 게 있었나봐요. 예전에 LG아트센터에서 오스터마이어 <인형의 집> 리뷰를 신문에 기고 한 적이 있는데, 10명 정도의 사람이 저를 추천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어요.

대놓고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가정정치, 성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정치란 가치관의 문제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연극이 이런 점을 함의하고 있다고 봐요. 극 안에서 ‘가치관이 맞느냐’는 질문을 계속적으로 하는데 굉장히 인상적인 말이에요. 독재자일수록 문화 핍박을 많이 한다고 하죠. ‘정치인의 연설 혹은 구타보다도 무서운 건 어머니의 자장가이다.’란 말이 있어요. 정서를 움직여주면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가치관이 움직이면 나라를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서를 움직여주는 연극도 줄었어요. 문화의 힘, 예술의 힘이 정치까지 가지 않는거죠. 이런 이야기도 판에 박힌 거 일 수 있겠네요.”



■ 당신이 경험하게 될 ‘은밀한 기쁨’은?

-은밀한 기쁨(The Secret Rapture)이란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뭔가?
“사전적 정의론 ‘수녀가(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순간의 환희’입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제목을 바꾸는 과정에서 별의별 제목을 다 생각한 뒤 <은밀한 기쁨>으로 결정했는데, 19금 작품이 연상된다고 하시는 거였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입니다. 작품 안에서 제목이 상징하는 바는 아직 통일이 안 됐는데, 마지막에 이사벨이 모든 걸 내려놓는 그 모습이 비참하지 않고 숭고하게 느껴지는데 그게 이 작품의 제목이 가진 의미 아닐까? 생각돼요. 이게 추상미 씨의 설득력이겠죠.

저런 비참한 개죽음이 아니라, ‘저렇게 하면 편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겠구나’ 그렇게 느끼게 만들어요.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일 수 있어요. 마리온은 동생이 죽고 난 뒤 내부를 들여다보게 돼요. 이사벨을 그리워하고, 저에게도 새로운 은밀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와요.”

-어윈과 캐서린에게도 ‘은밀한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 오게 되나?
“어윈 역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각자 자유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돼요. 현상적으로 혹은 사건적으로 비극이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은밀한 기쁨의 순간이 오는 거죠. 캐서린 입장에서 은밀한 기쁨이라면? 제가 생각하기엔 알코올이나 마약에 의존하고, 이사벨에 의존하는 그런 의존적 부분에서 벗어나 두 발로 일어서는 것 아닐까요. 극 안에서 직접적으로 써 진 건 없는 데 이후 맞이하게 될 것 같아요.”

-언니와 동생이 아버지의 여인 캐서린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캐서린이란 인물은 어떤 존재인가
“모든 사건의 원인 제공자로 볼 수 있어요. 그 사람만 없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가치관 대립이 불거져 나와요. 이 가족은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살아왔거든요. 다른 면에선 제일 인간적인 인물이죠. 생존 본능이 강한 인물로 자기 딴에는 살아보겠다고 하는데 망치게 되는 인물이요.”

-인상적인 장면이나 좋아하는 대사가 있다면?
“첫 장면이요. 마치 죽음으로 걸어가는 듯 기묘한 서스펜스가 있어서 좋아요. 마지막 장면도 좋아요. 어머니가 패션디자이너라 이번 작품의 의상을 담당하는데, 이사벨의 마지막 대사로 대본이 끝나있는 걸 보고 ‘이게 끝이야? 프린터가 덜 된 거 아니야?’란 말을 하셨어요. 연극을 보면 이게 왜 끝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웃음)

“착한 사람이 왜 있겠어? 나처럼 쓰레기 같은 인간을 도우라고 있는 거 아냐?” 란 대사도 좋아요. 모든 작품의 초벌 번역은 맡기고 나중에 제가 직접 손을 대요. 손 댈 수 밖에 없는 게 배우이다 보니, 연습 하다보면 계속 고쳐 나갈 수밖에 없어요.”

-<은밀한 기쁨>의 메시지 적인 거 말고 매력 포인트가 있다면
“전통작품을 전통적으로 가져가는 것,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 드문데 전통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번역극이지만 번역을 세심하게 해서 너무 번역 투가 느껴지지 않게 노력했어요. 간혹 번역극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봐야 해’ 란 식으로 퉁치고 나가는 지점들이 있는데 저희는 그 지점을 배제 했어요. 그렇다고 너무 한국적이게 보이겠다는 의도는 아니고요. 이런 것들을 최소화 했고, 배우 앙상블 역시 자신있고요. ‘전통극이지만 맨씨어터에서 하니까 재미가 있더라’ 그런 말을 듣고 싶어요.”



■ “관객을 배제하는 작품은 싫다”

-뮤지컬 <태양왕>에서 루이 어머니 안느 역으로 캐스팅 됐다. 이전에도 뮤지컬 작업을 했었나?
“뮤지컬은 처음인데. 보컬 레슨을 오랜 기간 받아 왔어요. 오디션 때 떨려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은데 합격하게 됐네요. 나중에 들은 소문은 제작사 측에서 생각했던 이미지랑 비슷했다고 했어요.”

-뮤지컬 작업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 이유들이 있는데, 뮤지컬을 꼭 하고 싶었던 이유가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배우입장에서는 비슷한 게 많다고 생각 했어요. 무대에 서는 게 좋고 뮤지컬을 좋아한 점도 있었고요. 뮤지컬만 주로 보던 분들이 저희 극단 연극 <벚꽃동산>을 처음 보고 그 뒤 연극을 많이 보게 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무대 좋아하는 분이 연극을 좋아 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게임에 몰두해있는 사람, TV 드라마에 몰두해있는 사람에게 공연을 권하겠어요? 홈그라운드에서 끌어들여야죠.”

-극단 맨씨어터의 체호프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뮤지컬과 연극을 같이 보는 관객들이 저희 작품을 많이들 좋아해주세요. 연극계에선 저희가 상업적인 연극을 한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하는데, 관객을 배제하는 작품을 싫어하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오경택 연출과 함께 한 <갈매기>란 작품에 대한 평가는 제일 억울했어요. 상업적인 그런 거 없어도 된다는 마인드로 올렸는데 ‘체호프 작품을 대중적으로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오그라들긴 했는데 나쁘진 않은 것 같아요. 김태무 선배가 오경택 연출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이런 말을 했어요. ‘칼로 가슴을 푹 찌르는 느낌의 연극이 있다면, 오경택 연출의 작품은 면도날로 ’쓰윽‘ 그었는데, 피가 나 있는 그런 미장센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이런 느낌이 <갈매기>와 <벚꽃동산>에 잘 배어나온 것 같아요. ”

-<갈매기>,<벚꽃동산>에 이어 옴니버스 연극 <14인 체홉>도 올렸다. 극단 대표로서 뿐 아니라 배우 개인으로서도 체호프 작품을 사랑하는 것 같다.
“대학교 때 체호프 텍스트를 가지고 하는 특강을 들은 적이 있어요. 체호프 작품의 독백들을 하나씩 외우라고 해서 아무거나 외워 갔어요. 전 여자 역이 아닌 남자 역인 <갈매기>의 뜨레플레프 대사를 외워갔는데,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둘러앉아 다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어요. 마치 알콜 중독자들 모임처럼요. 제가 지금 대학 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거죠. 하다보면 정서가 이입 되서 내 언어가 아닌 체호프 대사를 해요. 똑같은 대사인데 이 사람은 화가 나서 하고 이 사람은 울면서 하고요. 그런데 그게 또 다 들어맞아요. 체호프 작품이 스펙트럼이 넓은거죠. 그 때부터 체호프에 빠져들었어요.”

-체호프 작품은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체호프 작품은 지루해야 한다’고 오해를 하고 있어요. 저희 극단 작품을 보고 체호프 작품을 왜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었냐고 항의를 하기도 했어요. 전 체호프의 여백은 있어야 하지만 지루함 자체가 무대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진짜 지루함을 무대에 올리려면 뭐 하러 남의 돈을 받아가며 올려요? 그렇다고 저희 작품이 무한한 스펙트럼, 무한한 경지에 올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떤 공연을 좋아하나
“실험극, 리얼극 모두 좋아해요. 형식적인 면에서 새로운 게 없다면 관객과 소통을 잘 하는 작품이 좋고, 연기가 훌륭하거나 연출이 훌륭하거나 한가지 만 좋아도 괜찮다고 봐요. 그런데 관객을 우습게 아는 공연은 싫어요. 관객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공연을 간혹 볼 때가 있어요. 고전일 때도 있고, 현대물일 때도 있고요. 너무 어려워서가 이해가 안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작품을 왜 하는 거야?’란 의문이 드는 작품이요.

체호프 작품을 이 시점에 다시 할 때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든 연기적인 완성도가 높은 무대 활용이든 뭐라도 의도가 보이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런데 누가 봐도 고리타분하고 느껴지고, ‘연출이 자기 작품 하고 싶어서 했구나’ 란 인상을 주는 그런 작품은 싫어요. 공연을 보다보면 장르에 상관없이 경지에 오른 작품이 눈에 들어와요. 여기서 경지라 함은 고수가 아닐지라도, 우린 할 수 없는 신인 후배들의 저런 에너지 혹은 발랄함 같은 거요. 전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걸 제일 싫어해요.“

-극단 맨시어터 작품을 애정하는 팬 층이 많은 걸로 안다.
“저희 극단을 사랑해주는 고정팬 분들에게 감사하죠. 극단 초기 작품부터 챙겨보고 좋아해주시는 분을 ‘조상’이라고 지칭 하는데 조상님이 꽤 계세요. 계속해서 애정해주셔서 이젠 친구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입니다. 이 우정이 오래갔으면 좋겠어요. 판에 박힌 소리가 아니라, 어려운 길이기 때문에 응원해주는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꾸준히 저희 극단을 지켜봐주는 누군가 ‘같이 늙어갈 수 있겠다’는 말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됐으면 해요. 또 저희 극단이 여성극단이라고 보시는 분도 있는데 단원들 성비는 반반입니다.”



■ 도박을 걸고 약속을 지키며... 당신이 극장으로 오는 이유

-연극 <강 건너 저편에>,<결혼전야>, <썸걸즈>, <울다가 웃으면>, <디너>,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안티고네>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다. 배우가 된 계기가 있다면?
“특별한 계기라기 보다면 연기자라면 ‘내가 나를 잘 표현 하지 못한다’ 란 결핍이 있어요. 배우라면 다른 인물로 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데 저에게도 그런 게 있어요. 어렸을 땐 영화배우 되고 싶었어요. 딸이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니, 어머니가 수를 쓰신다고 ‘너는 그러면 예술을 해라’고 말 했어요. 딸이 ‘설마’ 할지는 모르고 그렇게 말하신 거죠. 정신여고 연극반을 들어갔는데 동기들이 서주희 천정하입니다. 무대에 서는 것보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게 좋았어요. 이후로 연극 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일찍 진로를 결정 한 거죠. 지금도 연극이 제일 재미있어요. 오래 전에 ‘객석’ 잡지에 여배우 시리즈란 타이틀로 1년간 여배우 11명을 인터뷰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여배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심이 없는데 전 인터뷰로 여배우들을 만나는 게 좋았어요.”

-여배우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나?
“세상엔 다섯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해요. 남자, 여자, 남자배우, 여자배우, 주연여배우요. 자아도취라고도 볼 수 있는데 여배우들이 많이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크죠.”

-배우들이 무대 아래에선 더 연약한 존재처럼 보일 때도 있다.
“각자 패턴이 다른 것 같아요. 무념무상 잘 되는 배우도 있고, 그 전에 내가 무슨 역을 했는지도 영향을 미치고요. 또 배우라는 일이 불안한 게 있잖아요. 다음 작품이 정해져있음 괜찮은데 불안정하게 이 일을 해 나가야 해요. 돈에 대한 게 아니라, 뭔가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소멸’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 않을까요. 연극인들과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눠보진 않았지만 연극이란 걸 언제까지, 또 얼마동안 할 수 있을까? 이런 불투명한 장래에 대한 생각도 있겠죠. 연극 배우로서 자리 잡힌 사람들은 극소수인데 그나마 영화 쪽으로 가버려요. 이런 불안감이 작품 몰입하고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없어지는데, 거기 떨어져서 혼자 있다보면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란 생각이 들게 되는거죠.”

-박호산 배우 인터뷰 때 ‘배우 손에 대본이 없으면 불안하다’는 말도 들었다.
“배우 손에 대본이 없다는 건, 어찌 보면 쓸모없는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세상에 중간 정도 실력을 지닌 운전사, 약사가 있다고 했을 때, 세상은 실력이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굴러가요. 하지만 중간 실력을 지닌 배우는 필요하지 않은 존재에요. 이 중간이란 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배우 손에 대본 없는 순간 직업인이 아닌거니까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니 남들이 보기엔 소꿉장난하며 놀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배우 스스로도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구요. 요새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 즐거운 거 하면서 계속 살아도 될까?’”

-제작자로서, 배우로서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배우로서 외로움을 느끼죠. 외로움이란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일이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이요. 돈을 벌어야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자원봉사라고 말 할 수 없는 자괴감도 견뎌야 하는 점...배우라면 일 섭외가 안 들어 왔을 때, 난 이런 의도로 무대에 섰는데 내 연기가 정반대의 것으로 받아들여 질 때, 상대배우와 소통되지 않을 때 등 많아요.

제작자나 연출로선 극장 들어가기 2~3일전이 제일 외로워요.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 몰두 해 있는 시기죠. 배우는 배우대로 스태프는 스태프대로 당장 해결해야 할 일에 빠져있어요. 제작자로선 혼자 ‘이 작품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는 시기죠. 마치 포커스가 줌 아웃되고 카메라가 쭉 빠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면서도 힘들지만 열심히 하는 후배들 보면 좋아요. ‘으샤 으샤’ 하면서 술도 사고... 그런 순간엔 선배들 생각이 많이 나요.”

-혹시 어떤 경우엔 내가 연극 작업을 그만 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나
“제작자로선 돈 문제가 가장 크지만, 그건 어떻게든 해결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식구들처럼 서로 서로 위안을 주는 단체로서 신뢰가 깨진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댈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작게는 극단 맨씨어터이고 크게 보면 연극판인데,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이 벌어진다면...이 일이 즐거워서 하는 거고, 그 안에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작업인데 문제가 생기겠죠. 연극이란 장르는 절대 없어질꺼라 생각하지 않아요. 연극 배우들이 언제 돈 벌었고, 또 언제 명예가 있었나.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등을 돌린다면... 말만 해도 슬퍼지네요.”

-<안티고네>,<왕은 죽어가다>,<태양왕>까지 왕비전문 배우다.
“작년 한해 그런 작품만 들어왔어요. 일정 상 하지 못하게 된 영화 섭외 온 것도 영부인 역이었고, 다른 작품도 그랬고요. 왕비전문 배우라고 불러주면 고맙긴 한데, 왕비 연기는 재미있진 않아요. 연기란 흠이 많아 관객의 연민을 자아낼수록 재미있잖아요. 재미는 <터미널>에서 제가 했던 역들이 더 재미있죠.”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다재다능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광보 선배는 절 보고 얄미운 배우라고 하더라고요. 논리적인 배우를 좋아해 논리적인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얄미운 배우’란 뭘까. 물어보니 본능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아니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그게 얄미울 정도로 나와지는 게 있다는 의미라고 했어요. 쏙쏙 잘 찾아나간다는 의미로 그런 말을 쓴 것 같아요. 어쩌죠. 결국 자기 자랑을 한 셈이 되버렸네요.”

배우 우현주는 “공연은 그 어떤 예술 장르 와 다른 인간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 했다.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박을 걸고 약속을 지키며 극장으로 와요. 공연 10편을 본다고 했을 때, 1~2편이 만족도 수치가 높으니 도박과 다르지 않죠. 또 시간에 맞춰 2시간 동안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어두운 극장에 들어가요. ‘2시간 온전히 극장에서 집중하겠다’ 마음 먹은 이들은 인간적인 걸 좋아하지 않을까요. 완벽한 몰입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거죠. 사람을 통해서 보는 건 다른 어떤 경험과 달라요. 공연으로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끝나고 나면 배우들이 인사도 하고 같이 친해지기도 해요. 이런 게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미 아닐까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극단 맨씨어터, 스토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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