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삼’ 왜 하지원을 이렇게 활용했을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모두들 영화 <조선 미녀 삼총사>가 망할 줄 알았다고 한다. 이미 망한 영화에 대해 그런 말을 하긴 쉽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정말 모두 시사회 이전부터 그런 말을 해왔던 것이다. 시사회의 첫 반응은 지금까지의 소문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는 의미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징조가 보였던 걸까. 처음엔 왜색 논란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옷이 한국식보다는 일본식에 가까웠다는 것. 정작 보니 그들의 복장은 국적불명일 수 있지만 특별히 일본식이라고 집어 말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여기까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쁜 징조는 작년 5월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가 올해 설날연휴로 밀린 것이었다.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 반응이 굉장히 나빴다는 소문도 있었고. 그러다 예고편과 스틸들이 공개되면서 점점 그 확신은 굳어져갔다.

그런데 이 영화가 정말로 처음부터 그렇게 말아먹을 운명이었던 걸까. 모르겠다. 필자는 이 영화가 좋은 재료를 많이 갖고 있었다고 믿는다. 하지원, 손가인, 강예원은 모두 제대로 캐스팅된 배우들이다. 여기에 고창석과 송새벽이 들어갔으니 액션에 밀려 코미디가 딸릴 거 같으면 그들을 이용하면 된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미녀 삼총사>는 안이한 계획이지만 그만큼이나 안전하기도 하다. 걸작이 나올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도 적당히 바보스럽고 적당히 웃기는 장르 액션 코미디가 나올 재료는 된다.

왜 그 간단한 일을 못 했던 걸까?

한참 머리를 굴려봤지만 답은 하나였다. 필자가 장르 영화에 대해 지적할 때 늘 하는 말. 감독이 장르에 관심이 없었다. 여기서 장르란 막연한 코미디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감독 박제현은 코미디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전작인 <울랄라 시스터즈>와 <내 남자의 로맨스>는 모두 코미디였다. 하지만 그는 글라이더를 타고 날아다니는 조선시대 발명가 여자주인공이 요요로 악당들을 때려잡는 액션 코미디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특정 장르를 내세운 한국영화들이 계속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다루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현석 감독은 시간여행 모험담인 <열한시>를 만드는 동안 시간여행을 다룬 SF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는 물리학자에게 조언을 들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진짜로 도움을 청해야 했던 대상은 이미 시간여행을 다녀온 과거의 SF 작가들이었다. 한 스무 작품만 집중적으로 읽고 연구했어도 이야기의 문제점이 뭔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조선 미녀 삼총사>의 문제는 보다 복잡했다. 박제현은 미녀 삼총사가 현상금 사냥꾼으로 나올 수 있는 조선 시대를 만들어야 했다. 아무리 퓨전 사극의 사례가 많다고 해도 이런 세계는 각자 독특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감독이 연구해야 했던 건 과거의 작품들보다 자기가 직접 만든 세계였다.

그런데 그는 그 세계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다! 자기가 직접 만들어 놓고도!

아마 그는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곳이니까 그냥 대충 넘겨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에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흐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형지물을 알아야 한다. 각각의 말도 안 되는 코미디들이 하나로 엮이기 위해서는 그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가능할 수 있는 그 세계 특유의 특성을 꼼꼼하게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 코미디에 설득력이 생기고 그러는 작업 과정 중 코미디가 생산된다. 말도 안 되는 곳이라서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선 미녀 삼총사>는 그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초반에 설정과 함께 쌓아놓은 농담들이 몇 분만에 날아가 버린다. 영화는 무얼 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고 여기서 택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른다. 갑자기 진지해져서 하지원이 주인공인 장황한 복수활극을 찍는 것이다. 척 봐도 말도 안 되는 선택이지만 이 상황에서 왜 그들이 이런 짓을 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영화에 무게를 주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관객들은 원래 만들었던 말도 안 되는 설정 위에 광해군 이후 실제 조선 역사의 일부가 운석처럼 떨어져 박살나는 것을 봐야 한다.

교훈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건 자기가 무슨 장르를 쓰는 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세계에 대해 꼼꼼하게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연구 과정이 실패로 끝난다면 각본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조선 미녀 삼총사>라는 콘셉트에 맞는 설정이 꼭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포기하고 잘 찾아보면 더 잘 맞는 설정도 하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엔 너무 늦었지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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