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적응된 반응을 하는 그 순간을 경계해요”
[인터뷰]뮤지컬 <해를 품은 달>배우 주민진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매 순간 살아 있으려고 노력해요. 항상 같은 시간대에 같은 연기를 하다 보면, 배우가 가슴에서 우러나온 반응이 아닌 적응된 반응을 하게 돼요. 그 순간, 관객과 배우 모두 흥미를 잃게 되잖아요. 그 순간을 경계해요. ‘잘하는 친구들이 그만두고 또 그만두고 하다 보니 내가 잘 하는 배우가 됐다’는 말도 있는데, 눈앞에 보이는 짧은 목표만을 보는 게 아닌 천천히 오래 오래 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지난 달 18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은 1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 정은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블컬이다. 2013년 성공적인 초연에 이어 다시 한 번 관객들과 만난 것. 조선의 왕 훤과 액받이 무녀 연우의 사랑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며, 김수현을 톱스타로 만든 동명의 드라마 또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우의 오라비로 조선 제일 미남자이며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 ‘허염’ 역을 맡은 배우 주민진을 만났다.

■ 천재이자 미남 염의 내면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인터뷰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먼저 들었나
“관심이 감사하면서도 허염이란 캐릭터가 장치적으로 중요할 진 몰라도 보여지는 면이 크지 않다보니, 굳이 인터뷰 하면서 궁금한 부분이 뭐가 있을까 생각 해 봤어요. 전 사실 공연보다 인터뷰가 더 긴장돼요.”

-허염은 어떤 캐릭터인가?
“대제학 허민규의 자제로 열 입곱의 나이에 장원급제를 한 천재로 나와요. 그런데 캐릭터로서 한 비중을 차지하기 보다는 드라마의 요점을 찍어주는 장치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긴 원작 소설과 드라마를 함축적으로 풀어 놓다보니, 뮤지컬 안에서 드라마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인거죠. 중요한 사건의 연결 고리를 쥐고 있어요. 처음엔 염이 하는 역이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해 큰 부담 없이 왔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만은 않았어요.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가지 정서를 다 보여 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됐거든요. 분량은 적은데 슬픈 일들을 많이 겪는 인물이에요. ”

-초연과 달리 허염의 아버지 역이 없어졌다.
“작품 들어올 때, 아빠 역을 없앤 걸 알았어요. 그래서 염 비중이 늘어나 아빠 역할도 해야 한다고요. 원작 소설과는 다를 수 있지만, 관객들이 너무 여러 캐릭터에 신경 안 쓰고 드라마에 집중하기 위한 방침입니다. 소설과 드라마와는 다른 뮤지컬만이 지고 가야 할 무게가 늘어난 것으로도 볼 수 있죠.”

-아버지가 아닌 오빠의 품에서 연우가 죽는다. 동생에게 약을 먹이는 오빠의 심경은 어떤건가?
“타당성을 찾자면 가족과 가문을 위해 그렇게 하는건데, 허민규의 집안은 홍문관 대제학으로 높은 귀족이죠. 그런데 그런 집안에 천하디 천한 무녀가 생겼다는 건 가문의 수치라고 볼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집안 3대를 멸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염은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결국 동생의 죽음을 선택 하게 돼요. 가문을 위해서 염이 모든 짐을 지고 가겠다 마음 먹게 되는거죠. 그래서 ‘염이란 인물이 더 슬퍼지지 않았나’ 란 생각도 들어요.”

-약을 먹고 연우가 죽음으로 가는 그 장면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된다.
“염이 연우의 무병에 걸린 걸 듣게 되고, ‘연우의 죽음’을 다짐하게 되는 장면이 배우로서도 쉽지 않아요. 지금까지 공연 하면서 하루도 같았던 날이 없어요. 나쁜 의미의 매번 다르게 하는 연기가 아니라, 큰 틀은 같게 가지고 가지만 그 안에서 염의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동생 연우의 죽음 후 염이 상복을 입고 슬퍼하는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장면들이 빠르게 빠르게 지나가는데 짧은 신들에 색깔이 더 살아날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동생에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아픈 감성을 관객들이 잘 느낄 수 있었다면 감사하죠. 친누나랑 저와 이렇게 2남매라, 실제 여동생은 없는데 누나에 대한 정서를 많이 떠올려 보면서 감정을 표현 하려고 노력했어요.”

-허염은 누가 봐도 홀딱 반할만한 외모의 소유자로 나온다. 민화공주(이한솔)가 ‘예쁘다. 전부 다’, 말 할 때 기분이 어떤가?
“그 장면이 가장 장치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는 장면입니다. 약 2시간 30분 러닝타임 동안 제가 가장 열심히 참고 연기하는 부분 아닐까 생각해요.(웃음)”

-스스로를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나
“가끔 잘 생겼다고 말씀 해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전 제가 가진 얼굴색이 만족스럽진 않아서요.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전 심심하게 생긴 얼굴이 좋아요. 그런 캐릭터가 다양하게 색깔을 입힐 수 있어 어떤 역이든 갈 수 있잖아요. 엄마한테 ‘누가 아들이 잘 생겼대’ 하시면 항상 같이 비웃어주세요.”

-허염은 본인이 머리도 총명할 뿐 아니라 외모도 대단한 걸 알고 있는건가
“저도 그 점이 고민이 됐어요. 허염이 지나가면 궁녀들 모두가 관심을 보이는데, 과연 염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하는 건지, 진짜 모르는건지요. 생각해보니 17세의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려면 정말 공부에만 몰두했을텐데, 거기에 여자의 반응까지 알아차리는 남자라면 희대의 한량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여자 관계에 대해선 소통장애가 있다는 거였어요. 남녀의 감정에 둔한거죠. 염은 여인들의 관심을 이해하는 방향이 달라요. 본인이 외쪽으로 뛰어나서 관심을 받는다기 보다는, 좀 더 특별한 사람으로 관심을 받고 있음을 알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할까요. 그런 생각으로 민화나 궁녀들에 대한 반응 장면을 구축했어요.”

-연출이 그린 ‘염’은 어떠한 인물이었나
“박인선 연출님께서는 올곧고 고지식하고, 위트가 없을 정도로 꼿꼿한 사람으로 표현해주길 원하셨어요. 전 그 중간에서 무언가를 찾다보니 인간적인 염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동생 앞에서 다정한 모습, 친한 친구인 운(홍현표) 과 양명(강필석 조휘) 앞에서 보여지는 우정, 왕 훤(김다현 전동석 규현) 앞에서 제왕 수업을 돕는 모습 등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유연한 염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훤과 양명이란 캐릭터와 겹치지 않는 인물로서 서 있는 모습, 걸음걸이, 목소리 톤의 변화 등에 신경을 썼어요.”



■ 민화 공주에 의해 날개가 꺾인 염의 마지막 선택은?

-동생 연우의 죽음은 윤대형(박시현)의 음모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화의 욕망이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염은 의빈으로 묶여 청운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염은 민화 공주에 의해 날개가 꺾인건가?
“본인이 동생을 죽이게 돼서 민화공주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염은 무조건 나를 좋아해주는 공주와 결혼 해 꿈을 잃어요. 의빈에 묶이면 정치적 색깔을 보일 수 없으니까요. 꿈을 잃어 염이 더 슬퍼졌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극 중에선 중간에 8년이란 시간을 뛰어넘게 되는데 그걸 채우기가 힘들어요. 민화공주랑 결혼을 했으니 살을 붙이고 살았겠죠. 오로지 민화에게 집중하고 살았는데 결국 본인이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뮤지컬에서는 민화가 죽는 것 까지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론 허염이 자살까지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결국 보경(박꽃별)과 민화는 자결하고 염은 ‘어찌하면 행복해지는지 이젠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구나’ 라며 방황하게 된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염은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몰라요. 자기 손으로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에 매번 자책하고 있었을텐데... 그게 꾸며진 일이라고 했을 때 그 충격을 어디에 비견할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세상이 끝났지 않나. 그렇다고 단순히 분노로만 표현하면 안 돼요. 정말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소리 지르면서 힘들어 할 수도 있고 오히려 다 놔버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부인인 민화는 아이를 임신 한 채로 자살을 생각해요. 그 때의 심경까지 헤아려보면 염도 처자식에 대한 고민이 컸겠죠. 먼 산 불 보듯이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었겠죠. 그리고 염 입장에선 연우가 살아 돌아온다는 인식 없이 극이 끝나요. 거기까지 생각해보면, 염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살 할 수 있겠구나. 여러 생각들을 하게 하죠.”

-보경과 민화의 자결을 암시하는 장면은 한번 볼 땐 눈에 들어오지 않은 장면이기도 하다.
“잘 안 보이나요? 그런 고민들이 고민으로 끝나지 않고 공연 끝날 때까지 풀어내야 할 숙제죠. 그 이후 <해품달>이 세 번째 올라올 땐, 더 느끼고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른 한편으론 이래서 창작이 재미있지 않나? 서 너번 더 보라는 의도로 마니아 층을 겨냥한 씬 아닐까? 란 생각도 감히 해봅니다.”

-<해를 품은 달> 크리에이티브 팀은 재연을 올린 뒤 관객들의 평을 피드백 하고 있나
“제가 거기까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제 개인적으론 관객 평은 마지막 공연이 끝난 다음에 읽어봐요. 공연 중에 보게 되면,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배우로서 흔들리게 되는 게 있거든요. 고집이 아니라 제가 만들어 논 드라마 캐릭터 그게 우선이지 않나? 라는 생각 때문이죠. 제가 생각하지 못한 좋은 건 충분히 수용할 마음이 있어요. 놀랄 정도로 정확한 관객들의 시선이 담긴 글도 있고, 응원의 글도 많이 있는데 거기에 전적으로 따르진 않아요.”

-설은 염을 매번 훔쳐보며 연모한다. 염은 설을 어느 정도 사랑하는가?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대본만 봤을 때 사랑까지 가기엔 뭔가가 있어요. 그런데 높은 귀족과 몸종과의 관계라 깊게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 색깔을 놓고 볼 때, 왕과 천한 무녀의 사랑과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비슷하면 안 되겠다. 사랑까진 아니고 좀 더 특별한 관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연출님과 크리에이티브 팀의 상의 끝에 나온 결론은, ‘사랑이 아닌 큰 애정을 갖고 있는 염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을 표현하는 대표적 캐릭터가 ‘설’이다‘ 였어요. ’눈(설)이 불꽃(염)을 향해 가면 녹아 하늘에 닿겠지요.‘ 란 ’설‘의 가사도 있는데 한자 이름 만으로 관계를 볼 수 있게 한 점도 재미있어요. 설이 자객 앞에서 염을 보호하죠.”



■ <해를 품은 달>의 부제는 <뮤지컬 장씨>?

-대본은 계속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편인가
“창작 작품이다 보니 대본을 놓지 않고 있어요. 항상 하던 씬인데 뭔가 불편한 기분이 들 때 꼭 대본을 봐요. 또 제 씬만 중요한 게 아니라, 앞 뒤 다 중요하니 대본을 다 통으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박인선 연출님이 작 연출이다보니 제가 생각하는 고민 혹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내면 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연습실이나 집에서도 밤마다 붙잡고 있는 게 대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강한 주술이다고 말하는 ‘장씨’(최현선)란 인물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염이 봤을 때 장씨가 연우 훤 양명 등의 운명에 대해 노래하는데, 염의 운명에 대해서 노래하는 건 없어요. 장씨라는 캐릭터와 부딪치는 부분은 연우가 무명에 걸려 그 뒤 조치에 대해서 알려주는 그 장면 하나입니다. 그것 말고 전체로 봤을 땐 이 작품은 <뮤지컬 장씨>가 아닐까 생각돼요. 장난식으로 그렇게 말을 하기도 했어요. 뮤지컬 <노트르담드파리> 해설자 역을 우리 작품에선 장씨가 해 주고 있어요. 커튼콜에서도 마지막에 나와야 할 정도로 중요한 부분 을 꾹꾹 눌러주고 본인 씬도 하면서 이어가요. 비중도 작지 않은데 원 캐스트로 무대에 올라 신기했어요. 장씨가 정말 힘든 역인데 더블로 가야 하지 않나요. 배우 개인으로선 분장실에서 최현선 배우를 괴롭히지 않고 쉴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어요.(웃음)

-연우 역엔 소녀시대의 서현, 린아, 정재은이 트리플 캐스팅 됐다. 각각의 연우 느낌이 다를 것 같다.
“3명의 연우 색깔이 정말 달라서 고마워요. 린아 누나는 제가 본 첫 연우입니다. 일본에서 같이 공연하고 한국으로 넘어왔어요. 그 때부터 쌓아온 게 있어 붙는 씬에서 믿음감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재은 배우는 분석을 정말 잘 해와요. 제가 찾지 못한 것도 많이 찾아낼 정도로요. 1막 사건 발생 후 슬픈 부분에 대해 너무 표현을 잘 해주세요. 재은 배우의 감정표현만 받아서 가도 충분히 좋은 상황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요.

서현 배우는 보고만 있어서 동생 연우 같아요. 연예인에 대한 색안경 같은 게 없지 않아 있었는데 열심히 하는 모습이 웬만한 뮤지컬 배우보다 더 해요. 더 열심히 대본을 분석하고 공부해서 와요. 본인이 무언가를 만들려고 한다기 보다는,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중요시 하고 신경 쓰는 모습에서 많이 놀랐고 저도 많이 배웠어요. 순간순간 살아있는 배우의 모습에 저 또한 반응할 수 있는 점이 좋았어요. 어여쁜 여동생의 모습을 잘 표현해주고 있죠.“

-더블 트리플 배역이 많아 연습이 충분하지 않았을 것 같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닌 배우적인 욕심으로 연습은 항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규현(슈퍼주니어)이랑 서현이도 연습실에 꼬박 꼬박 왔어요. 저희 연습이 연말에 끼어있었는데, 바쁜 연예인들의 그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연습 일정도 참여했어요. 한번은 규현이가 연습에 빠질 수 없다고 나왔는데, 결국은 피로가 겹쳐서 그날 병원에 입원했어요. 어떤 이유에도 상관없이 무조건 연습실에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모습에서 한 번 더 배울 수 있었어요.

규현이랑 서현이는 열심히 한다는 점 외에도 먼저 동료 배우들에게 다가오고 소통 하는 자세가 좋았던 것 같아요. 배우들끼리도 인사 하는 거만 봐도, 그들은 분장실 돌아다니면서 먼저 인사를 해요. 저희 팀 나이대가 나이 많은 선생님도 안 계시고 26세~37세 사이에 분포 해 있는데 제가 딱 중간이네요. 나이 갭이 그리 크지 않아 다들 친해요.“

-일주일에 2회 공연 하는 날도 많은데 힘들지 않나
“원 캐스트들은 주 10회 공연을 해요. 힘들다는 생각 보다 매 순간 살아 있으려고 노력해요. 적응하지 않으려 노력 한다고 할까요. 매번 같은 시간대에 같은 연기를 하다 보면 익숙한 반응을 할 우려가 있어요. 배우가 가슴에서 우러나온 반응이 아닌 적응된 반응을 하는 순간, 보는 사람 하는 사람 모두 흥미를 잃게 되잖아요. 조심해야죠. 도움을 받고 있는 게 훤, 양명, 연우가 여러 배우라 여러 조합이 만들어진다는 점이요. 남들은 모르는 미묘한 차이일 수도 있지만 항상 살아있는 염을 보여주고 싶어요.”

-캐릭터 분석도 그렇고 상당히 학구적이다. 책도 많이 읽는 편인가
“학구적인 건 아닌데 알고 싶은 게 많아요. 21살부터 책을 좋아해 ‘한달에 4권 이상의 책을 읽자’고 정했어요. 벌써 10년이 됐네요. 다 못 읽은 달도 있지만 항상 책과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진 게 없다보니 체득을 해서 나가야 하는 배우입니다.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데 쉬는 날은 공연을 보려고 노력해요. 공연 보는 게 일처럼 느껴지진 않아요. 한 달에 네 번 정도 극장에 찾아가는데 거기서도 많이 배워요.”



■ 천천히 오래 가는 배우 주민진

-배우 몇 년 차인가?
“2006년에 처음 공연 일을 시작하긴 했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방송 단역으로 데뷔했어요. 우연치 않게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란 프로그램에서 일반인 출연자를 구한다고 해서 들어가게 된 거였어요. 그 쪽 피디님이 이쪽 일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6~7년 방송 3사 단역으로 왔다 갔다 했어요. 군대를 갔다와선 공연 일만 했구요. 2006년부터 치면, 횟수로는 9년 차인데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배우로 잘 버티고 있다는 의미는?
“스승님처럼 모시는 좋아하는 배우가 해준 이야기인데, ‘잘 버텨야 한다. 열심히 잘한 친구들이 그만두고 또 그만두고 하다보니 내가 잘 하는 배우가 됐어. 네 나이가 50세 60세 되면 배우 몇 명 없어. 그 때는 네가 할 수 있는 거 할 수 있어’ 이렇게 장난스럽게 말 했는데 이제 와서 나이 31세가 되니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물론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요. 주위 친한 배우들이 잘 됐을 때 가끔 배가 아플 때도 있고 난 왜 속도가 더딜까란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눈 앞의 짧은 목표가 아니라 천천히 오래 오래 갈 걸 생각해야 하는 거였죠.”

-보도 자료에 조연들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 주민진 배우가 <해품달>에 출연하는지는 프레스 콜 현장에 와서 알았다. 자료에 배우 이름과 얼굴 정보가 없어 포토 기사에 이름이 잘못 나오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럴 땐 서운하지 않나
“마음 상하기보단 그 사건을 재미있게 받아들였어요. 보도자료에 조연들 이름이 나오지 않는 점에 대해 마음 상한 게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지만 아쉬울 건 없다고 봐요. 냉정하게 말해 더 유명해지면 되겠죠.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전 주연급 배우 조연급 배우 구분보다는 제가 좋아하던 배우들이 지금도 무대에 오르고. 또 그 무대에 제가 같이 서게 되면 너무 좋은 마음이 커요. 그 분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게 잘 해야지 라는 생각도 들고요. 전 배우가 되고 싶었지 주연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요.”

-역할의 크기 보다는 작업이 즐거웠으면 한다는 의미인가
“2인극 <극적인 하룻밤>을 하면서 주연의 위치가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눈앞에서 봤고 많은 걸 느꼈어요. 그걸 버티면서 주연으로 사는 것도 멋지겠다. 한 명의 주연이 돼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도 좋겠지만... 저에게도 앞으로 없진 않겠지만 조연의 위치도 나쁘지 않아요. 친구가 주연하고 저는 조연을 한다고 해도 저는 작업이 즐거웠으면 좋겠지. 위화감, 불안함, 조급함, 그런 고민을 하기엔 시간이 아까울 것 같아요. 그런 걸 느끼기에는 인생이 짧잖아요.”

-배우로 살면서 힘들다고 느낄 땐 언제인가?
“‘연기적으로 내가 잘 못하는구나’ 라고 느끼는 순간 힘들어요. 극단 연우무대는 감사하게도 공연 끝나는 날 공연 영상 DVD를 주세요. 그러면 막공 끝난 다음 날 입에 깨물 것들을 준비하고 영상을 봐요.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듣고 연기를 보게 되면 힘들어요. 너무 아쉽고 성에 차지 않는 제 모습을 보며 쥐어뜯게 되는거죠. ‘이 일을 계속 해도 되나?’란 생각도 들고 ‘주위 분들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겠다’ 란 생각도 가끔 들어요. 그러다 ‘버티다 보면 앞으로 잘 할 수 있겠지’, ‘옛날보다 더 낫네’ 그 희망으로 살고 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우로서 제가 뭘 잘 하는지는 몰라도 뭘 못하는지 아니까요. 이것만 더 공부하면 잘 하겠다. 하루하루 더 열심히 하면 되겠다고 마음먹어요. 배우 생활 중에 연우무대와 함께 한 2년을 정말 잊을 수 없어요. 공부도 많이 하게 됐고, 배우로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연우무대가 좋은 창작 작품을 많이 하는데 다음에도 꼭 참여하고 싶어요.(<인디아 블로그>에 출연해도 좋겠다.)써 주신다면 당연히 좋죠 “

-연우무대의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로 다시 돌아오나?
“주화 역으로 이야기 중인 걸로만 말씀 드릴게요. 소극장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추후 일정은 아직 확정 된 게 없어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계속 하고 싶은데 이왕이면 연극이면 좋겠어요.”

주민진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공연이 좋다’고 말했다. “공연은 정말 살아있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줘요. 공연을 통해 평소 느낄 수 없었던 걸 느끼고 은연중에 살아있다고 몸이 반응하게 돼요. 한마디 더 하자면, 창작 작품에 대한 관심 꼭 좀 부탁드립니다. 작품 하나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작 작품은 재연 삼연이 올라오게 되면 작품의 변천사도 즐길 수 있지 않나요. 그게 질타가 됐든 칭찬이 됐든 관심이라면 감사해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쇼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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