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해를 품은 달> 배우 강필석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한편의 움직이는 수묵화를 보는 듯한 창작뮤지컬 <해를 품은 달>이 다시 돌아왔다. 뮤지컬 <해를 품은 달>은 2013년 6월 3주간의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 공식 초청작, 7월 예술의전당 초연, 10월 한국뮤지컬 대상 9개 부문 최다 노미네이트, 작곡상(원미솔), 남우신인상(전동석)수상, 12월 일본 동경공연까지 6개월간의 짧은 기간 동안 국내를 넘어서 해외까지 인정받는 창작뮤지컬로 자리매김 했다.

훤의 배다른 형 ‘양명’ 역을 맡은 배우 강필석을 만났다. 훤과 연우의 사랑을 지켜 준 ‘양명의 슬픔’을 주제로 진한 이야기를 나눴다.

■ 해에 가려져 슬프지만...아름다운 별 ‘양명’

-작품 속 인물 마다 이름에 함축적인 뜻이 있다. 훤(김다현 전동석 슈퍼주니어 규현)은 태양, 연우(소녀시대 서현, 린아, 정재은)는 달, 양명은 별로 상징화됐다.
“양명은 별로 지칭되고 있어요. 양명의 마지막 넘버 ‘더 이상 이제는’을 보면, ‘달을 품은 마음 접고 한 태양이 사라졌네. 깊고 깊은 암흑으로 어둠 끌고 암흑으로’ 란 가사가 나와요. 양명이 ‘달’ 연우 곁에서 물러나겠다는거죠. 태초에 두 개의 태양이 있었는데 이젠 하나의 태양만이 남았다고 하는데,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로 남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어요.”

-제목이 왜 <해를 품은 달>일까.
“해가 훨씬 강력한데 그걸 품은 달이라면... 훤을 위해 희생하는 연우가 그만큼 큰 사람이란 걸 표현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태양을 품은 달이라는 게 그걸 뜻하지 않을까요? (질문을 추가적으로 던지려고 하자 미소를 짓더니) 또 어려운 질문 할 것 같아요.”

-양명은 해에 가려진 슬픈 별이다. 그런데 달은 별을 품을 순 없나.
“양명은 해와 달을 이어주는 운명의 열쇠로 나와요. 왜 별은 품을 수 없나?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어려운 질문인데, 답을 하자면 ‘달을 품은 해’가 아니니까요. 또 너무 머니까 가까워질 수 없죠. 하늘 높이 떠오른 달이 나 아닌 다른 곳만 비추고 있으니...양명은 오로지 저 달만을 원하며 너만의 태양이고 싶어해요. 현실은 달빛 한 조각도 내 것이 되지 못하죠. 그렇게 달을 품은 해, 해에 가려진 슬픈 별로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별도 예쁜데... 오히려 달이 슬픔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양명은 ‘연우라면, 이 삶의 위로가 되리. 연우라면, 내 운명 받아들이리’, 훤은 연우만이, 이 나의 모든 것이며 연우만이, 내 삶의 꿈과 빛인데‘라고 노래 부른다. ‘연우라면’, ‘연우만이’란 이렇게 미묘하게 다른 조사로 각 인물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양명이 생각하는 ‘연우라면’에 대한 의미는?
“양명과 훤이 연우를 바라보는 마음을 핵심 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가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 크게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나 노래를 부르는 사람 입장에서 다르다면 달라요. 하지만 똑같아요. 사랑이란 게 그렇잖아요. 수치로 잴 수 없는 것. 네. 그렇게 사랑을 바라본다고 했을 때 전 양명과 훤의 사랑은 똑같다고 봤어요.”

-재연에서 양명의 비중이 훨씬 커졌다.
“잘 모르겠어요. 초연 대본이 3고였다면, 지금은 12고입니다. 초연 공연을 보지 못했고, 어떤 분은 비중이 줄었다는 말도 해서 그 때랑 지금이랑 비중이 늘어난 건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양명의 ‘오로지 저 달만을’(‘나눈 정이 만리’ 리프라이즈) 넘버는 추가 된 것으로 알고 있어요.”



■ “훤과 양명의 사랑의 크기는 다르지 않아요.”

-양명은 복잡한 내면을 가진 어려운 역할이다. 양명의 성격을 어떻게 잡았나?
“일단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훤과 양명의 사랑이 어떻게 하면 대등하게 갈 수 있을까? ’였어요. 노래 가사에도 ‘그래 사랑이다’고 나오지만, 사실 이 작품은 사랑 이야기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양명이 갖고 있는 연우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을까?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훤에 비해서 양명은 분량이 적어요. 그러나 훤과 양명의 사랑의 크기는 다르지 않아요. 사랑의 힘은 똑같아요. 물론 연우가 양명을 오빠로 좋아하지만 연인으론 좋아하지 않는 점은 가슴 아파요. 이 저울질을 어떻게 할까? 맨 마지막에 저울이 한 쪽으로 확 기울어져요. 그 부분에 대해 초점을 맞추려고 했어요. 그게 작품의 포인트라면, 캐릭터는 그 다음 문제라 생각했어요.”

-초연 양명 역 배우(성두섭 조강현)들의 이미지가 선입견처럼 작용한 점도 있겠지만, 강필석 양명의 느낌이 많이 달랐다. 더블 배우인 조휘 양명과도 캐릭터적인 색이 많이 달랐다. 내면을 감춘 채 애써 밝게 보이려는 양명이 아닌 서정적인 양명으로 다가왔다.
“배우가 다르다보니 초연과 재연 배우들 느낌이 다르겠죠. 제가 표현하는 양명도 지어지지 않는 웃음을 보이며 애써 밝은 척을 하긴 하는데, 그것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건 위험한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있긴 했어요. 밝음과 어두움 두 개를 같이 가져가야 하는데,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어떤 재미난 코드로 비춰질 것 같아요. 사실 이것이 농도의 차이라고 해야 하나? 전 ‘밝음’이 밝지 않고 쓸쓸함으로 비춰지고 쓸쓸함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명이 ‘아무렇지 않아’. 그렇게 표현 하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니까요. 그런 양명의 마음이 느껴져야 하니까요. 두 인물 훤과 양명이 잡고 있는 밸런스 적인 부분에서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훤이 철이 없고 재미난 코드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똑같이 양명이 표현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봤어요.”

-양명은 배 다른 동생 훤이 ‘순수하지만 그렇다고 순진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양명은 동생 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너무 좋아하는 동생이기도 하지만, 사실 어떤 순간엔 너무 화가 날 수도 있고, 또 어느 순간엔 질투가 났겠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형제인거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미워하지만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런 생각들을 계속 가지고 있지만 순간순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화가 날 때가 많은 관계죠.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자인 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이 들 때가 많아요. ‘순수와 순진’ 그 대사는 양명이 여태까지 봐 왔던 동생 모습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조크라고 생각해요. 17세 아이들이 나눌 수 있는 농담 같은거요.”

-양명과 훤은 연우를 동시에 사랑한다. 초반 장면에서 양명은 훤이 연우를 사랑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나
“훤이 연우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그때까지는 크게 인식하지 않고 있어요. 그 이후부터 확실해지죠. ‘훤의 숨바꼭질 놀이가 끝나고 난 뒤 그 장면을 어떻게 볼까?’ 박인선 연출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양명이 연우와 훤이 눈이 맞은 걸 알고 있으면 삼중창 부르기가 힘들어지거든요. 사실 양명은 그 장면에서 교묘히 시선을 피해요. 연우가 훤을 볼 때 양명이 시선을 피하는거죠. (연우가 훤에게 마음이 쏠리고 있는 것을 모른 체) 온전히 연우만을 바라봐요. 연습할 때 그 노래하기가 힘들었어요. 아직 엇갈리는 마음에 대해 쌓인 게 없는데, 삼중창을 양명이 부른 다는 게 힘들잖아요.

사실 초연 때 갑자기 양명이 노래를 불러서 ‘뭐지?’ 관객들에게 물음표가 떴다고 들었어요. 훤과 연우는 눈이 맞고 사랑하고 있다는 게 비춰지지만 양명은 세자를 찾으러 와서 노래를 부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재연 하면서 ‘그 노래를 뺐으면 좋겠다’고 계속 말했어요. 배우들도 그게 깔끔할 것 같다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는데 결국 그대로 가는 걸로 결정됐어요. 좋은 의미로 그 장면이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면이 될 수도 있다고 해서 설득됐어요. 그래서 그 전까진 양명은 모르고 있지만 그 장면에서 암시를 해 주고 그 이후 연서 장면에서 마음이 엇갈리고 있는 걸 알게 돼요.”



■ 훤과 연우 둘의 사랑을 지켜 준 ‘양명의 슬픔’에 대하여

-대본을 읽고 ‘양명’이란 캐릭터에 끌렸나?
“대본을 봤을 땐 훤 역할도 매력적이지만, 양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소재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워 기대를 많이 했었고 양명이란 인물 자체에 대해선 내적으로 가장 고민이 많은 역할이라 매력적이었죠. 양명은 형제애도 같이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사랑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어요. 요소요소마다 강력한 등장을 해줘야 극을 전반적으로 끌고 가는 밸런스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쉬운 건 연우가 사랑해주지 않는 거지만요.”

-연우에게 양명은 단지 좋은 오빠일 뿐인가?
“처음에 연습할 때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양명은 연우와의 첫 장면에서 걸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연우에 대한 사랑의 깊이가 딱 걸리지 않으면, 스토커처럼 끝나는 인물로 비춰질 수 있겠다’ 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연우가 보기에 양명은 좋아하는 오빠로서 호감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봤어요. 연우가 양명을 너무 밀어내게 되면 양명은 스토커 밖에 안 되잖아요. ‘오빠도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나에겐 세자 훤 이 사람 밖에 없다. 오빠 미안해요’ 이 마음이 없으면 양명은 낙동강 오리알처럼 되는 거죠. 그게 걸리지 않으면 양명이란 캐릭터 자체가 애매모호해 질 뿐 아니라, 연우와 양명의 관계도 애매 해 진다고 봤어요. 그래서 첫 장면을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만들었어요. 그 감정이 잘 걸리면 이후론 쭉 갈 수 있어요.”

-2막에서 양명은 ‘지워야 하겠지’라고 노래한다. 그 장면에서 양명의 사랑은 바람 앞에 촛불처럼 꺼져가고 있는 건가?
“꺼져가고 있진 않아요. 가사 속에선 훤과 양명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촛불과 불길로 언급하고 있지만, 양명은 연우에 대한 사랑을 계속 품고 살아가요. 그 장면에서 애써 밝게 부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사실 밝게 가면 갈수록 쓸쓸함이 느껴져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잊어야지 잊어야지 생각하지만 못 잊겠는 거죠. 잊기 위해 그리워한다고 노래하는데 결국은 계속 그리워하는 거죠.”

-양명은 연우와 무녀 월 에게 각각 거절당한다. 결국은 한 여인에게 두 번이나 거절당한 건데 그 때 기분은?
“(쓸쓸한 웃음을 짓더니)창피해요... 두 번이나 거절당해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그 뒤론 양명의 사랑이 훨씬 커졌을 거라 생각해요.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연우가 죽었다고 생각한 연우를 어느 날 발견한 건데, 그 사랑의 깊이는 훨씬 더 커졌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나오게 되죠. 처음에 연우에게 떠나자고 했을 땐 포기하고 가지만, 두 번째는 악에 받친 사람이 돼 버려요. 그 하나만 욕심 부리면 안 되는 건지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양명이 두 번 다 거절 당 했을 땐 참 그렇죠. 하지만 양명의 마지막 판단은 그렇게 하지 않죠.”

-마지막 양명의 선택은 정인보다는 형제애인가?
“훤 만이 아닌 연우까지 이렇게 두 사람을 지켜준 거라 생각해요. 내가 반역을 도모해서 연우를 얻게 되는 건 아니에요. 양명이 바보도 아니니 적군인 윤대형 대감의 말로도 쉽게 예상될 수 있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원작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객들은 그 장면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관객들이 보실지 모르겠지만, 양명으로서 열심히 작품의 포인트를 찍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작당을 계획하고 명부를 한참 바라보는데 그것이 사실 그런 의미로 볼 수 있어요. ‘진짜 양명이 그 마음을 먹었구나’란 의미로 보일수도 있는데, 양명이 명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건 왜 그럴까요? 이 지점에서 관객들이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요. 그 장면에 조금 더 시간을 들였으면 하는 욕심도 있는데, 양명의 복잡한 마음이 보여질거라 생각해요.”



■ “강필석과 전미도는 뮤지컬 계 최불암과 김혜자”

-전미도 배우랑 유독 인연이 맞은데, 이번엔 함께 출연하지 않았다.
“초연 때도 <해품달>제의가 있었는데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못했어요. 초연 때 미도가 같이 하자고 했는데 그땐 제가 못했고, 이번엔 제가 같이 하자고 했는데 미도가 같이 못하게 됐네요. 미도가 계속 여러 작품을 하면서 남편에게도 미안해 하는 것 같고, 조금 지친 것 같기도 해서 미도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어요.”

-강필석과 전미도는 뮤지컬 계 최불암과 김혜자로 불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연이고 또 어떻게 보면 매칭이 잘 된 거겠죠. <닥터지바고>,<번지점프를하다>,<로미오와 줄리엣> 등 여러 작품을 함께 했죠. 이 작품들 말고도 제안이 왔는데 같이 못 했던 작품도 여럿 있어요. 작품 제의 전화가 와서는 ‘여배우는 전미도입니다’ 라고 말하면 서로 웃어요. 모르시는 분들은 ‘상대 배우가 안 좋으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러면 전 ‘아뇨 웃겨서요.’라고 답해요.

미도는 참 좋은 배우죠. 성별이 다른데 또 하나의 가족처럼 거리낌 없이 되게 친해졌어요. 연기 스타일도 비슷한 게 있고, 미도랑 작품을 하면 편하죠. 둘이 연습할 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아요. 그냥 새롭게 들어가요. 서로를 편하게 해주니까요. 서로에 대해 ‘툭툭’ 이야기 하면서 친해졌어요. 장난을 잘 쳐요. 미도가 연습 중에 집중하고 있으면 ‘그런 거 하지 마. 혼자 뭐 잘 할라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집중하지 말라고 말해요. 또 제가 뭘 하고 있으면 ‘오빠 뭐 하려고? 연기하려고?’ 고 장난을 걸어요. 그러면 전 ‘아니야 몸 푼거야’라고 능청스럽게 답하죠.(미도 배우가 재연 <해품달>도 보러왔다) 아.. 트위터에 사진 올라온 거요? 서로의 <해품달>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아요. ‘서로 무대는 보지 않은 걸로 하자. 서로 보호해주자.’고 말했어요.(웃음)”

-원작 소설과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아, 뮤지컬화 시키는 작업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소설만 해도 책이 2권 분량이고, 드라마도 20부작이 넘게 나왔어요. 그런데 뮤지컬은 2시간 혹은 3시간 안에 함축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해요. 사랑 이야기가 너무 얽히고설켜 있어서 그 이야기는 들어가야 되고, 이 이야기가 빠져 있으면 안 되고... 이런 고민들이 분명 있었죠. 하지만 곁가지가 너무 많으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돼요. 다이렉트로 3시간 동안 이야기가 시원하게 흘러갔으면 하는데 쉽지 않죠.”

-재연 <해품달>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초연 이후 재연까지 기간이 짧았는데, 창작 작품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질문들을 많이 던져주셨으면 해요.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것도 좋지만, 냉정하게 바라봐야죠. 초연의 이러 이러한 부분들을 수정 보완해가면서 잘 만들어 놨는데, 또 다른 문제들이 보인다면 좀 더 디벨롭 될 수 있어야 하는거죠. 물음표가 다 지워질 때까지 발전시켜 가야죠. 작품의 흐름으로 봤을 때 어떻게 하면 방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면서 간결하게 갈 수 있을까? 우리한테 주어진 숙제죠.”

-대본 분석은 어떻게 하는 편인가
“처음엔 작품의 의미를 알기 위해 정독을 해요. 연습할 땐 대본을 외워야 하니까 매번 봐요. 공연 중간 쯤엔 가끔 봐요. 공연 진행 되면서 변할 때도 있으니까요. 서브 텍스트에 담긴 의미, 움직이면서 찾아지는 것 두 가지 모두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배우가 많이 움직여 본다고 해서 뭔가가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텍스트를 이해한 그 뒤에 집중해야 에너지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중간 중간 내가 편해진 말들이 대본에 써진 말들과 달라지진 않았을까 체크할 때가 있죠. 대본은 많이 봐야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조금 다른 경우도 있어요. 이미 검증받은 라이선스 작품은 이미 대본에 다 답이 있으니 굉장히 많이 보는 편입니다. 창작 역시 대본을 많이 보지만, 라이선스보단 상황을 더 많이 그리긴 해요. 또 창작은 흐름 상 과한지 부족한지를 판단해 장면을 빼고 넣고 하는 게 있기 때문에 상황을 많이 그려봐요.”

■ “2014년엔 연애를 기필코 하겠어요”

-공연이 없을 땐 주로 어떤 생각을 하나?
“공연이 없을 때 글쎄요? 어디 여행갈까? 생각을 많이 해요.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런 생각도 하죠. 뭘 하면 좀 더 즐거울 수 있을까? 예전부터 좋아했던 무언가를 도전해볼까? 그런 생각들도 많이 해요. 여자 생각도 가끔 하고, 그게 결혼이 될 수도 있고요. 긍정적으로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될 것 같아요. 그때그때 다르긴 한데 여행갈 땐 즐겁고, 또 어느 날은 외롭기도 해요.”

-결혼을 생각할 나이다. 다들 사귀는 사람은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팀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요. 얼마 전이 설날 이었잖아요. 그날 그런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정말 왜 그렇게 질문들을 하는지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생각하나봐요. 제가 연애를 조용히 몰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자 친구 없어. 진짜야’ 라고 말해도 안 믿네요. 연애를 안 한지도 어언 5년 가까이 됐어요.

30대 중반 넘어가면서는 ‘연애와 결혼’ 에 대해 질문들이 쏟아지는데, 그 때마다 ‘내가 알아서 할게’ 그렇게 답했어요. 그런데 이젠 ‘해야겠어요. 할게요. 연애를 기필코 하겠어요.’ 판타지오 소속사 실장이랑도 장난스럽게 ‘올해 목표는 좋은 배역이 아닌 연애’라고 말했다니까요.”

-나이가 있어서 신중하게 연애를 하려고 하는건가
“이젠 결혼을 할 사람을 찾아야 하는 나이이니 은연중에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남자 배우들은 결혼하면 확실히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데 좋죠. 뭐 짝이 나타나겠죠. 올해 연애하겠다는 말은 농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싶진 않아요.”

-양명처럼 한 여자만을 가슴에 품고 있는 순정파인가.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품고 바라만 보는 양명의 마음이 이해는 되죠.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다들 그렇게 되지 않나요. 그런데 전 그냥 순정파라서 문제에요. 어느 순간이 다가오면, 생각하지 말라고 해도 첫 사랑이 떠오르고, 그렇다고 생각 안 나는 걸 일부러 생각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람은 항상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양명의 마음이 더 쓸쓸하게 다가왔나 봐요.”



■ “강신일 선생님에게 배우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인드에 대해 배웠다”

-연극과 뮤지컬 쪽 모두에서 인정받는 배우다.
“감사하게도 연극과 뮤지컬 작업 둘 다 하고 있어요. 연극을 많이 하고 싶어요. 연극 <레드>를 처음 했을 때, 좋게 봐주셔서 국립극단 <로미오와 줄리엣> 콜이 왔어요. 그리고 이번에 <레드> 재연 무대에 다시 올랐어요. (<레드>삼연도 올라가나)이번에 반응이 좋아서 아마 올라가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은 다시 하고 싶은데 나이 때문에 다시 ‘켄’을 할 수 있을까요? (동안인데 왜 걱정을 하나) 동안이요? 상대적으로 선생님과 있으면 젊어보이는 거라 생각해요. 나이가 상대적인 거라는 그런 희망이 있긴 한데요. 또 한 가지 바람이라면, 20년 뒤엔 로스코 역을 너무 하고 싶어요.”

-강신일 배우와 두 번째 <레드>까지 함께 작업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사실 많이 배웠죠. 저도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선배님들은 선배님들 이름만으로 존경받을 존재이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강신일 선생님 같은 경우는 워낙 연극계에서 존경받는 선생님이고 딕션의 경지에 이른 분이잖아요. <레드> 초연 때 첫 대사를 하는데, 다들 마이크 낀지 알았다고 할 정도로 딕션의 달인이세요. 작품을 보는 관점, 인물에 접근하는 관점, 배우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인드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그렇다고 선생님이 많은 말씀을 하진 않으세요. ‘이렇게 해야 된다.’는 식의 말을 안 해요. 살짝 살짝 지나가듯 던져주는 말씀에 ‘아차!’ 싶은 순간도 몇 번 있었고, ‘아! 내가 생각하지 못한 시점이구나. 이게 맞는 건데 왜 이걸 생각 안했지?’ 그런 깨달음도 많이 얻어갔어요. 그런 면에서만 봐도 좋은 선배님이시죠. 항상 조용히 묵묵하게 챙기시는 선생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이번 <레드> 쫑파티 때 선생님이 기분이 좋으셨어요. 암 치료 받으시고 그 날이 처음으로 술을 드신 날이었는데, 기분 좋게 취하셨어요. 항상 조용한 모습만 보다가 크게 ‘하하하’ 웃으시면서 농담하시는 걸 처음 봤어요. 그 때 저도 정말 기분이 좋았죠. 선생님이 기분 좋아지신 모습을 보니 (한)지상이랑 내가 선생님 서포트를 해드렸구나. 그런 생각도 들면서 좋았어요.”

-강신일 배우를 10년 전에 인터뷰 하고 얼마 전에 다시 한 번 만났다. 배우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달랐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번지점프를 하다>의 아드리안 연출이 사진 책을 가져와서 보여줬던 게 떠올라요. 사진 작가가 분이 한 사람을 10년 혹은 15년 주기로 사진을 찍은 책이었어요. 같은 사람을 기간을 두고 찍고 또 찍은 사진이 세 개 정도 실려 있었어요. 제일 흥미로웠던 건 첫 사진이 아이는 유모차에 있고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아빠 사진이었어요. 맨 마지막 사진은 휠체어에 아빠가 앉아 있고 아들이 훌쩍 자라서 서 있는 사진이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10년을 그 배우를 지켜 보고 다시 인터뷰 하면 기분이 묘 할 것 같아요. 10년 뒤에 저 랑도 만나요. 올해가 배우 데뷔 10년차인데, 되게 흥미로울 것 같아요. 배우 20년 차에 다시 만나면 또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오겠죠. 그 때는 유부남이 돼 있겠죠.”

-‘요정’이란 별명으로 불리던데 본인도 알고 있나
“저도 들었는데 그 이유는 잘 몰라요. ‘덩치가 작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있어요.(요정이란 단어를 들으면 신비한 그런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나?) 그런 의미라면 더 부끄럽네요. 동료 배우들도 가끔 장난스럽게 절 그렇게 부르기도 하는데, 오그라드는 의미면 어떡하죠? 별명의 의미가 뭔지 알게 되면 저에게도 조용히 알려주세요(웃음)”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쇼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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