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셜리 템플 블랙이 지난 2월 10일이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성인 시절의 상당부분을 공화당 정치인과 외교가로 경력을 쌓아왔지만, 우리는 셜리 템플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아역배우로 기억한다. 적어도 셜리 템플의 전성기였던 30년대 중후반에 누렸던 인기는 지금의 쟁쟁한 아역배우들의 영향력을 모두 합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셜리 템플은 단순히 한 명의 연예인이 아니라 당시 대공황을 겪고 있던 미국인들이 극장료 15센트로 얻을 수 있는 안식처였으며 앞으로 미래가 더 나아질 것임을 보여주고 그들을 위로하는 국가적인 상징이었다.

성인이 되어서까지 영화 경력을 이어가지는 않았고, 한 차례의 이혼을 겪긴 했지만, 셜리 템플은 무사히 성인으로 진입한 아역배우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악명 높은 소문과는 달리, 이 리스트는 결코 짧지 않다. 요새 배우들만 골라도 조디 포스터, 안나 파퀸, 나탈리 포트먼, 키어스틴 던스트, 크리스티나 리치, 사라 폴리와 같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리스트가 아무리 길다고 해도 그 전환기를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낙오한 희생자들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들 중 저스틴 비버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그 모범적인 경력에도 불구하고 셜리 템플이 살았던 30년대 할리우드 연예계는 결코 어린이 연예인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심지어 셜리 템플이 초창기에 출연했던 단편 영화들을 보면 과연 이래도 되나,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노골적인 성적 착취의 흔적이 보인다. 다섯 살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가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을 상대로 거리의 여자를 연기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템플은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명성과 타고난 밝은 천성을 갖고 있었지만 그만큼 운이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 셜리 템플과 맞먹는 할리우드의 전설이었던 주디 갈란드만 해도 노동력 착취를 위해 회사에서 먹인 약물 때문에 평생을 애를 먹었다. 채플린의 <키드>에 출연했던 아역배우 재키 쿠건처럼 자신이 번 돈을 몽땅 탕진한 부모를 고소하는 일도 있었다. 쿠건은 그 돈을 거의 돌려받지 못했지만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재키 쿠건 법이 어린이 연예인들을 보호해주고 있다. 물론 이것은 법적, 경제적인 보호일 뿐, 이들이 연예계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위험에 대해 방패가 되어주지는 못한다.

어린이 다섯 명 중 한 명이 장래의 희망이 연예인이라고 말하는 한국에서 어린이와 청소년 연예인 보호는 더욱 빈약하다. 이 빈약함은 법적인 장치의 결여보다 노동과 인권에 대한 우리들의 일상적인 무신경함과 그에 따른 폭력성향에 기인한다. 어린이 연예인의 보호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음에도 성과없이 쳇바퀴만 돌고 있는 것은 이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올바로 인식하는 데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알고 있다고 해도 그들 자신이 그 쳇바퀴의 일부인 이상 시스템을 손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이니 한국어 인터넷 환경의 부작용인 인터넷 언어 폭력과 집단 따돌림 같은 문제까지 해결하려면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이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소리없이 희생될 것인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브라이트 아이즈>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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