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시누이조차 매력 넘치게 만든 김정난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다. 애써 위로하는 척 해도 뒤로는 은근히 싸움 구경을 즐기는 것이 시누이 심리라는 뜻일 게다. 아무리 고약해 빠져도 부모의 정이 동기간의 정보다는 한 수 위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흔히 우리네 드라마 속 시누이들은 더도 덜도 아닌 갈등유발자에 불과했다. 간혹 제 일 제쳐두고 주인공의 삶을 돕느라 동분서주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지간하면 시어머니 곁에서 하릴없이 쏘삭거리며 분란을 조장하는 인물이 태반이었지 싶은데, 생각해보면 심지어 어떤 시누이는 마치 PPL처럼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작사와 기획사의 담합으로 끼워 맞춰졌다고 의심이 되는 캐릭터가 종종 있었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한참을 기억을 더듬어 봐도 지금껏 주인공의 시누이가 마음에 들었던 적은 없다. 그런지라 믿고 보는 연기자 김정난이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에서 주인공 오은수(이지아)의 시누이이자 정태원(송창의)의 누나 ‘정태희’로 분한 걸 처음 본 순간 하나 둘씩 물음표가 생겨날 밖에. 왜 하필 그런 역할을? 왜?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모든 배역에게 골고루 애정을 주는 김수현 작가이기에, 어떤 역할이든 두 배, 세 배로 살려낼 줄 아는 연기자 김정난이기에 기대감이 들기도 했다. 적어도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역할에 머물지는 않으리란 믿음이 있었으니까. 그랬는데 역시! 정태희를 보는 재미에 이 드라마를 본다는 분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더 나아가 최여사(김용림)네 분량이 좀 더 많으면 좋겠다는 분도 여럿 봤다. 그도 그럴 것이 최 여사와 도우미 아주머니(허진), 새며느리 채린(손여은), 부엌과 식탁을 둘러 싼 티격태격 갈등이 여간 흥미진진한 게 아니다.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는 늘 태희가 있다.

정태희란 여자,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속물 기질을 타고나 신상이라면 맥을 못 추는 배냇병이 흠이긴 하지만 조카 슬기(김지영)에겐 더 없이 살뜰하고 다정한 고모가 아니던가. 슬기의 청이라면 한번을 마다하는 것을 못 봤으니까. 또 먹을 만큼 먹은 나이에 어머니 최 여사의 지갑을 자기 지갑으로 여기는 것이 한심하긴 해도 어느 누구보다 최 여사를 잘 파악하고 이해하는 딸이기도 하다. 거기에 얼굴만 마주치면 부딪히는 사이이나 실은 남동생에 대한 정도 깊은 것이, 솔직히 처음엔 태희가 남동생의 이혼에 크게 한 몫 했거니 했다. 어머니와 작당을 해 은수를 못 살게 달달 볶았거니 짐작을 했던 거다.



그러나 슬기가 외가 생활을 청산하고 친가로 들어갈 적에 은수가 태희를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과거 은수의 시집살이에 알게 모르게 태희가 도움을 줬던 모양이다. 가끔 젖먹이 슬기를 챙겨주기도 했고 자신의 어머니가 과하게 어깃장을 놓는다 싶으면 넌지시 가방이며 지갑을 은수에게 건네기도 했다고. 어머니의 성정을 잘 아는 통에 대놓고 편은 못 들어줬어도 우회적으로 어머니를 달래가며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측은한 은수를 도닥였던 것.

이처럼 겉으로는 철딱서니 없고 쌀쌀맞아 보여도 속내만큼은 따뜻한, 지나치게 솔직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곤 하지만 틀린 소리는 결코 하지 않는 그녀, 눈치 빠르고 지혜로운, 이 매력이 넘치는 인물을 다른 누가 맡았다면? 도무지 상상이 아니 된다. SBS <신사의 품격>의 청담마녀 ‘박민숙’으로 다른 연기자가 대체가 아니 되듯 말이다. 박민숙 때도 그랬지만 이번 정태희와도 왠지 친해지고 싶어진다. 내가 어떤 조언을 구하든지 가식 없이 빈 말 않고 제대로 된 방편을 내놓지 싶기 때문이다. 앞머리 절대 자르지마. 요즘 몸무게 늘었지? 치마 기장 한 단만 올려보지! 몰랐어? 걔 너 안 좋아해. 스타일도 삶도, 아리송한 인간관계도 그녀의 머리와 입을 거치면 말끔히 해결될 것만 같다. 이 무한한 신뢰, 친근감. 모든 게 김정난이란 연기자 덕에 가능한 일이 아니겠나.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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