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이 영화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개봉예정영화를 시사회로 미리 보고 짧은 인상 비평을 남기는 것이 작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별점과 상대평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예술작품에 의미 있는 상대평가가 가능한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좋은 두 영화를 평가하는 것도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예술적인 결점으로 지적되는 것들이 과연 결점이기만 할까?

SF나 호러 같은 장르물을 다룰 때는 더 까다롭다. 얼마 전 일 때문에 몇몇 고전 SF를 선정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작성한 리스트에 속한 영화 상당수가 보통 때 같았다면 별 두 개 반 정도만 주고 그쳤을 작품들이었다.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이중사고를 하게 된다. 이런 영화들의 부인할 수 없는 매력들이 사실은 초라하고 투박하기 짝이 없는 재료와 테크닉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인정해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덜 매력적이 되는 것도, 덜 중요한 영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영화가 예술적 완성 이상의 목표를 갖고 있다면 사정은 더 복잡해진다. 최근 개봉한 <변호인>과 <또 하나의 약속>은 단순히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 이상의 정치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실제로 ‘더 좋은 영화’가 될 기회를 날린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은 극도로 통속적이지만 접근성이 높은 멜로드라마이다.

정치적 목표를 위해 이런 멜로드라마의 접근을 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다. 예술적 완성도를 건드리는 의견도 있지만 이런 식의 영화들이 현실정치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다. (<변호사>의 흥행성공으로 바뀐 게 있는가?) 하지만 일단 영화를 도구로 삼았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목표이고 이를 위해 그들이 대중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것 자체를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이런 영화들의 완성도를 비판하는 것은 예상외로 어렵다. <또 하나의 약속>이 거칠고 통속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인 건 분명하다. 아마 캐릭터는 평면화되었을 것이며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그려 보여주었을 수도 있다. 꼼꼼하게 따진다면 음악사용과 화면비율의 선택의 문제점 같은 기술적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단점으로 보이는 것들이 정치성을 위해 예술성을 포기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보기만큼 단점이 아닐 수도 있다.



예술적 완성도라는 것들이 정확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부터 생각해보자. 지금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동네 사람들을 캐스팅해 마을 영화를 찍고 있는 신지승 감독이 언젠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영화 속에서 할머니가 죽은 고양이 때문에 우는 장면을 보고 관객들이 연기가 서툴다고 웃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시 할머니가 그 연기를 할 때 어머니 없이 자란 과거와 죽은 아들을 생각하고 실제로 울었다는 것을 알고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프로페셔널한 작가와 배우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적으로 세련된 결과물은 오히려 그 세련됨 때문에 현실 세계를 놓치고 지나갈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인위적이고 유치하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진짜에 가까운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세련된 세계를 살고 있는가? <또 하나의 약속>이 그리는 폭력이 그렇게 세련된 세계의 폭력인가?

이렇게 따지다보면 예술성과 정치성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점점 허망하게 들린다. 메시지가 스타일을 결정한다면 이를 분리하는 것은 그냥 불가능하다. 많이들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이야기를 하는데, 리펜슈탈의 영화도 보기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리펜슈탈의 작품은 편집과 촬영은 좋지만 끔찍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아니라 (사실 그 중 몇 편은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불필요하게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정치성이 스타일과 떨어질 수 없게 밀접하게 결합된 영화이다. 별점 위주로 생각해서 별 넷을 주는 것은 선택의 자유겠지만 그 평가 역시 영화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여줄 뿐이다.

다시 <또 하나의 약속>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 영화가 선입견보다는 훨씬 영리하게 만들어진 멜로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박철민, 윤유선 등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감정 과잉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야기하고 싶은 이슈를 성급하지 않게 꼼꼼하게 던지는 페이스가 뛰어났다. 하지만 이 작품의 목표가 영화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 영화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평가하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 감독이 일을 마치고 영화가 개봉되었다고 해서 작품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영화를 완성하는 일은 영화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간 관객들의 몫이다. 그들이 영화의 완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또 하나의 약속> 스틸컷]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