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극 <나와 할아버지> 배우 진선규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나와 할아버지>는 멋진 멜로드라마를 쓰고 싶은 공연대본작가 ‘준희’가 외할아버지가 전쟁 통에 헤어진 옛 연인을 찾아 나서는데 동행하게 되면서, 외할아버지의 삶을 대면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극 중 화자 역할을 하는 ‘작가’는 ‘준희’의 미래 모습인 동시에 극을 해설하며 관객과 무대 그 중간을 계속 오간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나와 할아버지>의 작가와 준희, 할아버지 역이 더블 혹은 트리플 캐스팅 됐다. 배우 김승욱 오용 진선규(할아버지), 이희준 홍우진 오의식(준희), 정선아 손지윤(할머니), 양경원 이석(작가)이 함께한다. 낭독공연 때부터 할아버지 역을 함께 해온 배우 진선규를 만났다. 연극 속 선규 할아버지의 모습에 동화된 걸까. 마늘과 된장 냄새 나는 ‘진선규 내비게이션’은 좋고 빠른 길이 아닌 주변도 보고 천천히 갈 것을 주문했다.

■ ‘나와 할아버지’의 살아있는 말을 담아낸 연극

-<나와 할아버지> 작품을 언제 접했나?
“5~6년 전 처음 접한 초고 제목이 ‘춘천에 가면’ 이었어요. 준호는 글을 쓰면 선생님들 혹은 저에게 보여주면서 괜찮은지 확인도 받고 수정도 하고 그래요. 그렇게 먼저 반응을 보고 ‘하겠다’ 마음먹으면 배우들에게 보여줍니다. 그러다 배우들한테 제목을 공모 했어요. 이상우 선생님이 ‘나와 할아버지’가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괜찮다’란 반응이 나왔어요. 연습을 하다보면, ‘나와 할아버지가 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서 배우들이 다 괜찮다고 했거든요. 어감상 장난스럽게 ‘나와! 할아버지’ 이렇게 들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긴 했지만 다른 제목들은 와 닿지 않았어요.”

-대본을 읽고는 민준호 작가 겸 연출에게 뭐라고 이야기 했나?
“늘 준호 작품을 좋아해요. 진짜 잘 써요.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란 작품을 보면 ‘지금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이런 말(대사)들이 그냥 보면 무슨 말이야.’란 생각이 들어요. 대본에 담긴 일상적인 호흡들이 너무 좋아요. <나와 할아버지>도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해야 대본의 맛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준호는 저에게 ‘네가 할 역할이 없어, 할아버지는 나이가 있어야 하고 준희는 좀 잘 생겨야 하고, 할머니는 네가 할 수 없으니 정말 할 역할이 없어’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남산예술센터에서 낭독공연을 하게 됐어요. 준호가 ‘하루 공연하니 선규 네가 낭독공연을 해봐’ 말했죠. 그때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낭독하지 말고 공연하는 걸로 하자고 의견을 모아 대사도 다 외우고, 2주 동안 다 만들었어요. 하다 보니 너무 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할아버지 꼭 시켜줘.’ 라고 말했는데, 그 때 보신 분들 반응이 너무 좋아 할 수 있게 됐네요.”

-극단 간다는 그 안에서 오디션을 봐서 배역을 결정한다고 들었다.
“극단 배우들끼리 엠티(MT)를 가서 저희들끼리 오디션을 해요. 같은 역을 ‘나도 하고 싶은데’라고 하면 ‘같이 한번 붙어보지’ 그런 연기 싸움도 있어요. <올모스트 메인>이랑 <나와 할아버지>는 오디션을 하지 않고 진행 됐어요.”

-정보소극장 초연에서 아트원씨어터로 극장이 바뀌었다.
“지난 공연이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부담감도 있어요. 이번 공연은 객석도 더 넓어졌어요. 정보극장이 90석 가량이라면, 여기는 150석입니다. 초연도 재연도 많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입니다. 준호가 최대한 편하게 하고 입에 붙지 않으면 어미 같은 건 바꿔도 된다고 했는데, 이 작품은 정말 편한 말들을 많이 써서 안 바꿨어요. 준호는 직접 말을 하면서 대본을 쓰는데, 작가 역이나 준희 역 대사들은 준호 말들이 많아요. 할아버지 대사는 녹취본의 80퍼센트 이상을 따랐기 때문에 배역이 하는 말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대본 그대로 하면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이요.”

-민준호 연출의 할아버지를 10~15년간 옆에서 봐왔다. 어떤 할아버지인가?
“준호랑 2000년 그 때 부터 같이 있었으니 14~15년 동안 할아버지를 봤어요. 대학교 때부터 준호 집에서 자고 놀았거든요. 할아버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셔서 인천 집에 계시고, 할머니는 거기 있으면 답답하니까 정릉 (준호)어머니 집으로 왕래하셨는데 그 때부터 다 지켜봤어요. 그때 준호랑 같이 인천 가서 할아버지도 보고 (연극에서 나오는)사골 물냉면도 먹고 돌아왔어요.”

-전형적인 무뚝뚝한 할아버지인가?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기 보다는 남에게 피해가 안 가려고 하시는 거죠. ‘애들 바쁘니 피해주지 말라’는 대사도 나오죠. 말을 걸지 않은 이상 말을 잘 안하시는 편인데 그게 무뚝뚝하게 보일 수 있어요. 아픈 거 티내지 않으시고, 늘 걸어다니세요. (의족 푸는 걸 본 적 있나) 저는 못 봤어요. 지금까지도요. 할머니 장례식장에서도 보지 못했는데 혼자 계실 때 푸는 것 같아요. 누군가 온다 하면 (의족인지 보이지 않는) 기지바지를 바로 챙겨 입으세요.”

-진선규 배우가 보여주는 할아버지 모습이 실제 할아버지와 닮은 점이 많나
“처음에는 만약 할아버지가 와서 봤는데 ‘내가 왜 저래?’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서 많이 보고 따라했어요. 흉내 내고 싶었던 것도 있었어요. 그런데 준호가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말씀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더 많이 생각해보라’고 했어요. 10년 이상 할아버지를 봐왔기 때문에 향수가 묻어나오는 것도 있다고 봐요. 배우로서 하다 보니 똑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할아버지 정서를 더 많이 가져오려고 했어요. 제가 맨 처음에 입고 나오는 내복이랑 바지, 허리띠, 신고 있는 신발 모두 진짜 할아버지가 쓰시던 것들입니다. 지퍼달린 신발이요? 그 스타일대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오래 된 신발을 가지고 와서 쓰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잘 안 신는 신발이요.”

-민 연출 할아버님이 직접 공연을 보셨나? 보고 무슨 말을 했나?
“제가 할아버지로 나올 때 보셨어요. 그런데 소변 때문에 끝까지 다 못 보시고 중간에 나가셨어요. 할아버지 나이가 여든 중반이 돼서 기운이 많이 떨어지셨어요. 정보소극장 입구 계단 내려오는 것도 힘들어하셨어요. 나갔다 소변 보고 다시 들어오려고 했는데, 소극장을 들어 왔다 나갔다 하는 것도 힘들기도 해서 30~40분 가량 보고 가셨어요. ‘잘 봤다’ 그 말만 하시고 가셨다고 들었어요. 준호는 연극 끝나고 ‘차탈 때 묘하게 아련함을 주더라’ 그런 말을 했어요. 끝까지 다 보셨으면 화 내셨을 것도 같아요. 엄마가 자꾸 임수임 할머니를 찾는 할아버지를 보고 ‘할아버지 왜 그러시니?’ 라고 말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신기했던 건 할아버지랑 제 자세랑 똑같았다는 점이요. 의족이니 지팡이를 세우고 꼿꼿이 서 있으시거든요.”

-할아버지는 다정한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선규 배우는 어떤 남편인가?
“저는 와이프(배우 박보경) 말 잘 듣고 다정 한 남편에 가깝죠. 저에겐 과분한 와이프입니다. 얼굴도 예쁘고 생각이 곧은 사람입니다. ‘오빠가 생각한 바른 마음으로 하다보면 돈이야 따라주겠지’ 이렇게 내 선택을 믿어주는 여자라서 좋아요. 현실이 조금 힘들더라도 내 능력을 믿어줘요. 절 믿어주는 와이프인데 전 더 잘 해 줘야죠. 같은 배우인데 배우 일이 얼마나 하고 싶겠어요. 지금은 아이를 더 열심히 키워하는 시기라고 말해주는 데 전 미안하죠. 11개월 된 딸 아이가 있어요. 절 닮은 딸인데 점점 엄마를 닮아가면서 조금씩 예뻐지고 있어요, 공연 없는 날은 집에서 아이를 보는데 정말 행복해요.”



■ “내비가 알려주는 좋고 빠른 길과 할아버지가 걸어 온 길이 대비가 돼요.”

-할아버지는 손자의 운전에 훈수를 두는 데 실제 할아버지는 운전을 하실 수 있나
“운전은 못하세요. 운전 못하면서 그렇게 잔소리 하는 분 있잖아요. 옆에서 ‘직진, 우회전’ 이렇게 말하는 인간 내비게이션이죠. 그 모습을 옆에서 보면 고집스러워 보이는 게 있죠.”

-<나와 할아버지> 작품 안에서 ‘내비게이션’이 상징하는 게 많다.
“맨 마지막 장면이 특히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죠.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좋고 빠른 길 과 할아버지가 걸어 온 길이 대비가 돼요. 그 추억 속에 크게 동화된 느낌이랄까. 마지막엔 준희가 내비게이션을 끄게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좋은 소품이자 오브제가 되는 것 같아요. 실제 준호가 길치라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어딜 못가요. 내비게이션만 보고 가거든요. 수백 번 가야 그 길을 알 정도로요.”

-‘받아야지. 가봐야지, 여깄습니다’ 같은 말장난 같은 대사들이 중간 중간 나온다.
“준호는 계산해서 나오는 말장난은 픽스 안 시키고, 진짜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것을 넣어요. 말의 리듬이나 호흡을 맞춰서 나오는 말이라면 재미있기 때문에 자주 쓰고 있어요.”

-할아버지 대사 중 어떤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나 왔어’ 하고 소리를 팍 질러요. 슬프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러는데 실제론 슬프셨겠죠. 실제로 그 날 부상전우회 친구들이랑 밤새 술만 드시지 슬프다는 표현은 안하시드라고요. 대사 중에 버릴 대사들은 없는 것 같고, 대사보다는 장면장면 마다 할아버지의 느낌들이 좋아요. 손자한테 ‘빨리 가’라고 짜증내는 것도 좋고, 옛날 이야기하면서 술잔 들었나 놨다 하는 것도 좋아요. ‘니 할머니가 고생 제일 많이 했어’ 하며 인정할 때도 좋아요. ‘그래 맞다’ 선포하듯이 두 번 이야기 하는 그 대사, 할머니를 인정하는 그 때 많은 감정이 생각나요. 손자를 위해서 인정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찾는 춘천의 임수임 할머니는 사랑하는 사람인가. 은인인가?
“사랑은 아닌 것 같고 힘들 때 도와준 생명의 은인 아닐까요. 정확히는 모르는데 그때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 같은거요. (작가 역 배우 대사에서 할 수 있듯) 치매 할머니 이야기는 픽션이구요.”

-그 픽션이 들어온 게 작가의 대사에 나오는 <사랑을 포기한 남자> 이야기와 할아버지 사이에 어떤 함축적 의미가 있는 건가? 거꾸로 돌아갔던 시간이 자신을 치료하고, 제목은 유치한데 비급, 언더 그런 느낌도 나게 한다는 대사의 서브 텍스트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지 않을까.
“할아버지 이야기를 위해 들어온 건 아니라고 봤어요. 그 당시 이상우 선생님이 술자리에서 했던 말들이 들어온 것도 있고, 실제 준호의 <사랑을 포기한 남자>란 작품도 있어서 전 작품 이름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이해했어요. 준호가 글을 쓸 때 그런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어요. 준호를 한번 만나서 인터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제 대본은 정말 깨끗해요. 연습실에 그냥 있어요. 전 상대랑 이야기하면서 외우는 편이라 대본에 뭘 빽빽하게 적는 배우는 아닙니다. 상대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더 낫다는 식으로 직감이 오거나 준호가 ‘이럴 때 이런 마음이야. 이렇게 흘러가야 돼’ 란 그 말을 듣고 찾아가고 또 찾아나가요. 배우들 중에도 공연 들어가기 직전에 대본 읽는 배우들이 있는데 전 그렇지 않아요. (김)수용 형이랑 (박)인배는 들어가기 전에 대본을 봐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봐야 하나? 이렇게 있어도 되나?’ 남들이 보면 그런 느낌도 받을 것 같긴 해요.”

-공연 막이 오르기 전에 뭘 하나?
“시작하기 전이 더 긴장되고 떨려요. 어마 어마하게 떨어요. 공연을 올린 지 한 달이 지나도 달달 떨거든요. 신기한 건 상대방에게 대사를 하면 긴장감이 풀어져요. 그래서 전 상대 배우랑 이야기하거나 ‘파이팅’ 하고 들어가요.”



■ 마늘과 된장, 그리고 라면 냄새나는 남자

-뮤지컬 <아가사>로 김수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어떤 작품을 보고 콜이 들어 온건가?
“김수로 선배는 절 몰랐어요. 김태형 연출이 먼저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고, 제 이름을 제작팀에게 넘겼는데 수로 선배가 주변 배우들에게 저에 대해 물어봤나봐요. 10명한테 물어보면 다들 칭찬을 해서 왜 그렇게 칭찬을 해? 궁금했나봐요. 비평가나 기자들의 기사 이전에 배우들의 칭찬, 배우가 인정한 배우라면 믿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절 선택 하셨나봐요. 제가 관객에게 크게 이슈가 되는 배우는 아닌 데 인복이 있어요. 동료들이 절 좋아하는 데 그게 행운이죠.”

-처음부터 로이 역으로 콜이 온 건가?
“연출이 로이로 절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리고 ‘형은 폴 역을 해도 잘 할 것 같은데 일단은 생각해볼게’ 말했는데 끝내는 저보다 더 웃긴 (오)의식이랑 (홍)우진이로 결정됐어요. 그래서 전 그랬죠. ‘뮤지컬에서 이런 역을 나에게? 너 실수한 걸지도 몰라’ 라고 받아쳤어요(웃음)”

-로이는 진선규 배우 인생의 최대 매력남 역인가?
"그 동안 제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든 역할을 많이 했는데 그런 역이 조금 편해요. 향수가 있는 그런 역이 좋기도 하구요. 저란 사람이 젊지 않게 다가갈 수 있어서 그런지 그런 역을 많이 맡았어요. <늘근도둑이야기>, <너와 함께라면>,<우리 노래방가서 얘기 좀 할까>,<나와 할아버지>가 그랬죠. 지금의 제 나이 또래로 나온 작품은 뮤지컬 <리걸리 블론드>, <칠수와 만수>요. 만수는 제가 처음에 출연 했을 때 비슷한 나이였죠. 최근에 제 또래 역으로 출연 한 건 <선녀씨 이야기>요.

그랬는데 <아가사>의 로이는 외모적인 것도 있지만, 멋진 말 자체가 매혹적인 역입니다. 잘 생긴 사람 냄새가 나야 하는 역이죠. 수용이 형은 이국적인 냄새, 인배는 남미 이탈리아 그 쪽의 진한 느낌, 치즈 느낌도 살짝 나서 잘 어울려요. 저요? 저는 마늘 냄새, 된장 냄새, 라면 냄새가 나죠. 영국과는 안 어울리는 냄새요.(웃음) 다행히 큰 극장이라 관객들도 멀리 있고, 분장으로 느껴지는 냄새가 있어요.”
-<아가사>작업을 하면서는 어떤 노력을 많이 했나?
“뮤지컬은 어떤 연기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노래 랑 안무 이런 게 많이 들어와요. 그 중에서도 전 노래가 약하다고 생각해서 노래 연습을 많이 했어요. 물론 캐릭터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 했어요. ‘대사를 어떻게 치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어떤 사람한테 매력을 느끼나?’ 란 생각이요.”

-민준호 연출이 여자들의 심리는 물론 인물 분석을 잘 할 것 같다. 직접 조언을 들었나
“조언을 들었어요. ‘시간을 갖고 오래 객석을 쳐다 봐. 흔히 나쁜 남자처럼 멋있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뭔가를 구하듯’이요. 중요한 건 내가 여자를 편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거죠. ‘자신의 일을 열심히 딱 부러지게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네가 하고 있는 일의 의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요. 관객들이 보는 로이를 의식한다기 보다는, 아가사란 사람이 생전 처음 만난 로이에게 끌렸는데, 그렇다면 지금껏 만났던 사람과는 달라야 하지 않나. 신사 혹은 백작이 아니라. ‘뭐야??’ 그렇게 툭 던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계속 아가사에게 접근하고 있어요. 로이가 초반에 ‘죽을 뻔 했다’고 말 하고, 아가사 옆에서 한 없이 착하고 유쾌한 남자로 알았던 그 사람이,,, 아가사 옆에 있으면서 계속 신경 쓰이고 뭔가를 던져주는데 그런 흐름들이 마음에 들어요.”

-3월부터는 극장을 바꿔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에서 공연된다.
“창작 초연이라 힘들게 만들었는데 대학로로 넘어오면 대폭 수정 될 것 같아요. 객석은 비슷한데 이해랑 극장보다 무대 크기가 너무 작아요. 그래서 무대 전환이 아닌 픽스해서 진행 시킬 것도 같고 왈츠나 큰 것들은 수정 될 확률이 커요. 무대 세팅을 다시 해서 배우들도 새로운 극장에 맞춰 연습해야겠죠.”



■ 돌아온 탕아-치명남-킬러로 이어지는 진선규의 기대되는 행보

-그 동안 좋은 작품들을 많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연극 <선녀씨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가사>의 로이가 제가 했던 역할 중 가장 반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선녀씨 이야기>의 아들 역할 역시 저에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돌아온 탕아’ 느낌이죠. 거칠고 엄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는. 그 작품을 보시고 처음 보는 감독님이 절 드라마에 캐스팅 하셨어요. 그것도 킬러 역할입니다. SBS <별에서 온 그대> 후속 수목 드라마인 <쓰리데이즈>에 출연하게 됐어요. 배우 손현주 윤제문 박유천 등이 출연해요. 전 6부에 등장하게 돼서 3월 중순 정도에나 나올 것 같아요. 킬러라 언제 죽을지는 몰라요.(웃음)감독님 말로는 ‘죽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 몸 만들고 있어’ 라고 해서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

-드라마 감독이 선규 배우의 매력을 발견했나보다.
“배우들이 공연하고 나오면, 흔히 ‘잘 봤습니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수십 번 들어도 같이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흔치 않는데, 처음 본 분이 ‘좋았다’고 하면서 ‘킬러’ 역을 제안했어요.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해 왔던 역할과 다르기 때문에 난 다른 마음으로 서 있는데 사람들이 멋있다고 하는구나. 의아하기도 했지만 원래 나에게 그런 모습이 있었던 걸까. 그래 내 이미지가 웃으면 사람 좋은 인상이지만 가만히 있으면 무뚝뚝 해 보이는 복싱 선수 같은 느낌도 줄 수 있어. 재미있고, 늘 웃고, 배려했던 역이 나랑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나쁜 쪽도 이런 매력이 있구나. 이 나쁜 역이란 것도 나쁘게 생각하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내 역할을 하기 위해 말 하는 거죠. 그러는 것도 처음 해 보는 거라 되게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선녀씨 이야기>가 다시 드라마를 할 수 있게 해줬고, <아가사> 역시 배우로서 좋은 기회였던 같아요.”

-할아버지랑 로이 역을 번갈아 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도 전혀 다르지만 배우 개인적으로도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두 역할 모두 해야 할 게 많아 쉽지 않아요. 주변에선 <아가사> 작품을 하고나서 제 눈빛이 달라졌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래서 뭐?’ 이렇게 받아 칠 것 같은 도도하고 차가운 느낌이요. 계속 부드럽고 착하고 그런 느낌의 것들을 많이 해서 더 달라 보인다는 느낌을 받나 봐요.”

-영화 <관능의 법칙>에도 나온다. 냉정하게 말하면 단역인데 그럴 바에 연극 작업에 매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저는 잠깐 나와요. 잠깐 나오는 역인데 배우들에게 여러 가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은 역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연극 무대와 영화의 매커니즘이 달라요. 영화만의 매력이 분명 있어요. 영화 그 잠깐 나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배우로선 집중력이 필요해요. 어떻게 내가 스크린에 비춰지는지 봐야죠.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부분도 조금씩 익숙해지고, 더 많이 보여 질 수 있는 부분도 생긴다고 봐요. 그 때는 더 나아지겠죠. 현재로선 역할의 크기를 따지기보다 경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제 10년 차 배우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배우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극단 간다가 10년 됐는데 저 역시 10년 차 배우입니다. 배우로서 더 재미있어졌어요. 그런데 연기한다는 것, 배우가 되어 간다는 것, 그거에 대해서는 변화가 없지 않나 싶어요. 저에게 부족한 점이라면? 카리스마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배우에게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 그런 건 조금 약하죠. 부족한 점이라고 말하기엔 그런가요. 좋은 배우가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계속 그런 걸 채워 나가다 보면 나중에 좋은 배우라고 이야기를 듣겠죠.”

-혹시 가만히 있어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배우가 있었나?
“글쎄요. 모르겠어요. 아! 지금 <나쁜자석> 하고 있는 이동하요. <올모스트 메인>을 같이 공연 할 때 동하 배우가 계단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어요. 그걸 본 저는 ‘무슨 생각을 저렇게 깊게 하고 있을까?’ 그런 게 확 느껴졌어요. 뭔지 알겠죠. 저에겐 안 나오는 분위기죠. 그래서 ‘동하야 넌 정말 대단하다’고 했더니 ‘가만히 핸드폰 보고 있는데 뭐가 매력적이야’라고 답하던데요. (웃음)”

-극단 간다의 이희준 배우는 스타가 됐다. 본인도 좀 더 유명해지고 싶지 않나?
“희준이가 빛을 발해야 할 때 빛을 발 한 거라 생각해요. ‘나는 언제 꽃이 피지?’ 이런 생각보다는 희준이가 정말 잘 돼서 좋아요. 희준이가 조금 유명세를 내 세웠다면 다른 마음이 들 수 도 있었을텐데, 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살갑게 하니까 달라진 것 없어요. 늘 예전처럼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 이야기하고 도와줘요. 그게 일상이죠.”

-10년을 넘게 민준호와 동거동락했다. 진선규에게 민준호란 어떤 존재인가?
“음, 연기 라이벌이요.(웃음) 준호는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하던데. 진짜 친구, 페르소나죠. 제가 여기까지 오게 한 사람? 제가 연기 잘 하는 배우로 듣게끔 만들어 준 사람? 그만큼 준호가 연기를 잘 해요. 사람을 ‘섬뜩’ 하게 만드는 준호만의 연기들이 있어요. 제가 ‘너 없으면 죽어도 안 돼’ 이런 말들을 싫어해요. 오히려 ‘병신아 꺼져’라고 표현하죠. 마음 속 안에는 그런 친구로 그려져 있는데, 절대 달달한 형용사를 못 붙여요. 저희 극단의 우상욱(우지순)이 형은 정말 성실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형입니다. 우리에게 늘 큰 웃음을 줘요. 한 우물을 계속 파는 형으로 같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내내 본인의 얼굴이 잘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겸손인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제가 ‘연기’에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대에서는 배우가 잘 생겨 보일 수 있어요. 연기를 잘 하면 잘 생겨보이잖아요. 무대에서는 어떻게든 매력 있게 보일 수 있겠는데, 얼굴이나 외모적인 것은 딱 보면 알지 않나요. (성형에 대한 생각도 있는 건가) 수술에 대한 의견이 반반으로 갈렸어요. 시간이 있으면 하고 싶은 생각도 들긴 했는데 어떨까요? 저의 이미지 결이 깨질 것 같다고요. 그렇다면 이 모습으로 계속 가겠습니다.(웃음)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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