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돈 조반니> 기자간담회 현장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국립오페라단은 2014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모차르트 사이클’의 첫 번째 작품으로 오페라 <돈조반니>를 선정, 3월 12일부터 16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린다.

1787년 프라하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여성을 정복하는 것을 일생의 낙으로 삼고 살아가는 돈조반니가 초자연적인 감성과 악마 같은 마성으로 여성들을 유혹하며 그녀들과 얽힌 남성들을 조롱하나 결국 벌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페라 <돈조반니>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 증오, 복수, 연민 등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감정이 달콤한 아리아에서부터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앙상블의 음악으로 표현 된다는 점.

이번 프로덕션의 연출을 맡은 정선영 연출가는 “가장 솔직한 거짓말쟁이 돈조반니는 사회 규범의 관점에서 보면 범죄자이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주관적 의지와 실천을 굽히지 않은 영웅”이라며 “초자연적 자유 감성을 가진 돈조반니라는 인물을 통해 ‘잃어버린 자유감성 구출 대작전’을 펼칠 예정이다”고 연출 콘셉트를 밝혔다.

바리톤 공병우ㆍ차정철이 ‘돈조반니’ 역을, 베이스 장성일ㆍ김대영이 레포렐로 역을, 테너 김세일ㆍ김유중이 ‘돈 오타비오’ 역을, 소프라노 노정애ㆍ홍주영이 ‘돈나 안나’ 역을, 소프라노 이윤아ㆍ김라희(김상희)가 ‘돈나엘비라’ 역을, 소프라노 양지영ㆍ정혜욱이 ‘체를리나’ 역을, 베이스 바리톤 김종표ㆍ 박경태가 ‘마제토 ’역을, 베이스 전준한이 ‘코멘다토레’ 역을 맡는다

지난 25일 연출가 정선영, 지휘자 마르코 잠벨리, 주역 가수 바리톤 공병우, 차정철, 소프라노 이윤아, 양지영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다음은 출연진과의 일문일답.



■ 모차르트가 질문한다. “당신은 과연 알고 있는 것을 행하는 인물인가?”

-연출가가 분석한 <돈 조반니> 작품 방향을 설명해달라.
정선영: 조반니는 표면적으로 보면, 방탕한 바람둥이이자 범죄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보면 개인의 내적 진실 실현과 그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품이 달랐기 때문이다. 조반니가 하고 싶은 일을 직접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하인 레포렐로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안나는 진정한 감정이 아닌 필요에 의해 진심을 숨기고 타인을 이용, 혹은 의지하는 인물이다. 안나가 오타비오에 대해 가지는 마음은 정서적 사랑보다 아버지의 복수를 실행하려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오타비오는 상대방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이라는 이상적 관념에 대한 맹신으로 결국 자신의 바람을 희생하는 인물이다.

체를리나와 마제토의 사랑은 동물적으로 변화하는 다변성을 가지고 있다. 상대를 놔두고 멋진 남성이 눈 앞에 나타나자 빠지기도 하지만 금방 화해하고 다시 원래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 여기서 하나의 축을 발견했다. 즉 ‘알고 있는 것을 행하는가?’란 질문이다. 마치 모차르트에게 직접 질문을 받은 느낌이었다. ‘정선영 너는 내적 감정과 진실에 대해 알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내 자신에게 미안함, 위로, 결국 화해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런 시간을 통해서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이젠 저의 경험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질문을 던질 때 인 것 같다.

-무대 연출 방향은 어떻게 되나
정선영: 김희재 무대 디자이너는 ‘현대 산업사회와 도시화를 상징하는 Under Construction’ 즉 ‘공사 중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고 했다. 무대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기중기는 돈조반니의 자유의지와 창조성을, 그리고 고철에 둘러싸여 있는 탐스러운 사과는 우리시대에 폐기처분되고 있는 소중한 가치 혹은 지켜야 할 무엇으로 표현되었다. 그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사과를 건져 올리는 커다란 기중기가 조반니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이런 오브제 들이 계속 변화하면서 배경이 되어 준다. 3시간 동안 익숙하게 자리했던 사과는 돈 조반니의 파멸과 함께 사라진다. 어찌보면 사과의 상실과 아쉬움이 될 수도 있는데, 결국 ‘나 자신에게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나의 사고는 어디쯤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함이다.

-이번 작품의 지휘를 맡은 마르코 잠벨리는 이탈리아 토리노 왕립극장을 비롯하여 프랑스 메츠 오페라극장, 니스 오페라, 모나코 몬테카를로 오페라 등 세계 오페라 극장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휘자이다. 이번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하는 <돈 조반니> 음악에 있어서 중요 포인트가 있다면?
마르코 잠벨리: 이번 <돈 조반니>는 엘비라의 아리아인 ‘마음의 평안을 위하여’가 추가 된 마지막 판본을 가지고 연주할 것이다. 음악은 역사적인 부분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18세기 원전 악기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출이 생각한 부분을 모차르트의 음악 안에서 어떻게 하나로 표현 할 것인가?’ 그 부분이 중요한 관건이 될 것 같다.

-지휘자 보기에 한국 성악가들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말 할 수 있겠나
마르코 잠벨리: 한국 성악가들이 세계 무대에서 뛰어난 가수로 인정받고 활동하고 있다. 타고난 점도 있겠지만, 끝까지 헌신적으로 해내는 한국의 문화에서 나오지 않나?란 생각도 든다. 지휘자로서 한국 성악가들과 일하다 보면 요구할 필요조차 느낄 수 없게 최선을 다한다. 그런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최근 이태리는 오페라의 위기가 왔다는 말이 들리기도 하지만 한국에선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 차정철 “공연이 끝날 때쯤 1000명의 조반니가 극장을 나서게 될 것”

-베이스 바리톤 차정철은 2014년 <아라벨라>와 <나비부인>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다. 이번 작품이 한국에서 데뷔작이다. 주인공 조반니 역에 임하는 자세가 있다면?
차정철: 처음에 조반니 역을 제안 받았을 땐 흔히 생각하는 귀족적이고 다크한 면이 있으면서도 안하무인의 성격을 지닌 인물을 상상했다. 막상 연출님의 아이디어를 듣고는 고민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졌다. <돈 조반니>란 작품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매년 공연되지만, 매년 매회 매진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에서도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대중적인 작품인데 과연 ‘사람들이 왜 좋아할까?’란 질문을 하게 됐다. 그 중에서도 조반니는 본인은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이 갈망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캐릭터이다.

조반니는 어찌 보면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어린 아이 같은 면이 있다. 극단적인 사람이라고도 볼 수도 있는데, ‘지금 우리 시대에 좋고 싫음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연출님은 ‘레포렐로가 현재 우리의 모습이라면 조반니는 워너비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레포렐로에게 ’넌 나같이 되고 싶지 않니?‘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비단 레포렐로에게만 그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닌 관객들에게 ’당신은 왜 나처럼 솔직하지 못하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보여줄 조반니는 갈망하는 조반니가 아니라, ‘여러분이 충분히 될 수 있는 조반니’이다. 그래서 만약 1000명 관객이 이 공연을 보게 된다면, 공연이 끝날 때쯤엔 1000명의 조반니가 극장을 나서게 될 것이다. 저에겐 도전적인 작품이 될 것 같다.

-노르웨이 오슬로 극장에서 돈조반니 역을 맡아 호평을 받은 바리톤 공병우는 수 차례 이 작품을 했다. 이번 작품을 위해 10kg 체중 감량을 하기도 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차별화된 무대를 보여 줄 예정인가
공병우: 늘 하고 싶은 캐릭터가 두 가지가 있는데 <돈 조반니>의 조반니와 <오텔로>의 이아고가 그렇다. 하나는 이뤘는데, 이아고 역은 아직 해보지 못했다. 두 역할 모두 오페라 가수가 쉽게 해 낼 수 없는 매력적인 역할이다. <돈 조반니>에 참여할 때마다 드라마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춘다. 그동안 경험한 게 있기 때문에 다폰테가 만들어 낸 대사 하나 하나들이 저에게 주는 게 많다. 체중을 감량한 것은 조그마한 노력이지만, 그만큼 조반니를 더 잘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가 가진 경험과 음악적인 해석 부분에서 조금 더 도움을 받아서, ‘더 조반니 다운 조반니’를 표현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오페라 가수는 단순히 성악가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무대에 서려고 한다.

-연출이 보기에 두 조반니가 어떻게 다른가
정선영: 두 분이 너무 달라 연습 자체가 즐겁다. 우선 공병우 선생님은 제가 손 댈 부분이 없을 정도로 조반니 그 자체이다. 자기가 원하는 걸 명확하게 말하는 것은 물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재치있고 자유 분방하다. 차정철 씨는 일단 힘이 느껴진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열정적인 자세도 좋다. 모두에게 새로운 자각들이 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줘서 다들 즐기면서 작업하고 있다.



■ 이윤아 “모차르트 작품은 좋은 비타민을 먹고 있는 기분 느끼게 해”

-소프라노 이윤아는 뉴욕 시티오페라, 보스톤 리릭오페라, 달라스 오페라 등과 함께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리릭 소프라노이다. 오랜만에 국립오페라단과 작업하니 어떤가
이윤아: 1992년에 미국으로 가서 22년만에 돌아왔다. 이번에 국립오페라단과 작업한 건 <라보엠> 이후 두 번째이다. 그동안 푸치니 오페라를 많이 했다. 음악의 스코어를 떠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에 비해 모차르트 작품을 하게 되면 몸에 좋은 비타민을 먹고 있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가급적 모차르트 작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려고 한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는 7번째 프로덕션으로 하게 됐다. 체를리나로 2번, 엘비라 4번 작업을 한 적 있다. 아직 안나는 못 해봐서 개인적으로 해 보고 싶은 역이다. 이번에도 엘비라 역을 맡았다. 지금까지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즐겁게 하고 있다.

-소프라노 양지영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와 보스턴 리릭오페라의 주역으로 애들러 펠로우쉽에 한국인 최초 최종 멤버로 발탁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국내 무대에 데뷔하는 소감은?
양지영: 국립오페라단과 모차르트 작품을 함께 하게 돼 기쁘다. 게다가 그 시대 500석 이하 1000석 그 정도 극장 크기에서 했던 작품을 1000석 가량의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처음 하게 돼 영광이다. 너무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될 거란 생각이 든다. 디테일은 물론 음악연습도 일찍부터 만나서 했다. 체를리나 혹은 레포렐로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딕션도 다 통일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

체를리나는 극 중 등장하는 세 명의 여자 중 한명이다. 본능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인물로 그런 촉각들이 살아있다. 가변성 혹은 유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인물의 생각만 그런 게 아니라 피지컬적인 것 또한 그렇다. 그래서 댄스 쪽으로도 많이 준비하고 있다. 체를리나의 신분자체가 패전트 걸로 나와서 음악적인 부분은 사실 단순하다. 보다 높은 신분인 돈나랑 엘비라와 비교 할 때 음악적인 구조가 단순하다. 모차르트 음악이 훌륭한 이유는 캐릭터별 상세 조성까지 고려해서 쓴 작품이기 때문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한국에서 여성 오페라 연출가로 살아가기가 어떤지?
정선영: 말 그대로 쉽지 않다. 연출가로서 내가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모차르트가 정말 그러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한다. <돈 조반니>란 작품이 저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현실적인 혜택을 위해 감정을 숨기고 타인이 원하는 것을 실천하느라 레포렐로처럼 눈치보고 동분서주 하여 왔다. 상징이라는 필터를 끼우고 나는 이제 스스로 돈조반니의 구만 일곱 번째 여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돈조반니교(敎)의 첫 번째 신도가 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돈 조반니>는 나에게 그 정도로 중요한 지표가 될 작품이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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