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결여’ 채린, 이렇게 기막힌 새엄마를 봤나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재혼’으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들을 심도 있게,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여주인공 은수(이지아)의 시어머니(김자옥) 말마따나 불행은 손잡고 온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줄을 이어 터지는 상황이지만 그중 가장 시청자의 관심을 받고 있는 건 불륜도 아닌 고부간의 대립도 아닌, 새엄마 채린(손여은)과 어린 딸 슬기(김지영)와의 갈등이다. 결혼 전 ‘어떻게든 결혼만 하면 전처에게 이기는 것’이라고 선언할 때 짐작은 했지만 채린이 그녀가 설마 이 정도로 천지분간을 못할 줄이야.

사실 외가에서 친가로 거처를 옮기겠다며 부득부득 고집을 부리는 슬기를 보며 어째 불안 불안한 마음이었다. 친할머니(김용림)와 채린이가 작당을 해 엄마 은수는 물론이고 외가와도 생이별을 시키려 들 것이 불을 보듯 빤했기 때문이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원하는 건 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에게 전처소생이 안중에나 있었을지 싶다. 필경 친정집에 한 가득 모아놨다는 인형처럼, 아마 태원(송창의)도 갖고 싶으나 손에 들어오지 않는 장난감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예고편을 보니 이미 한 차례 뺨을 때리는 등 학대한 전력이 있는 그녀가 또 다시 슬기에게 손을 대는 통에 한 바탕 파란이 이는 모양이다. 점입가경에 달한 채린의 언행이 기막히기만 한데, 이 모든 것이 다 부모가 될 준비 없이 부모 노릇을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알고 보면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는 일찌감치 부터 ‘새어머니’가 종종 등장했다. 아예 제목이 <새엄마>인 1972년 작 일일드라마가 있었는데 전양자가 맡았던 새어머니는 그간의 편견을 속 시원히 깨주는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다. 같은 해 방송된 KBS <여로>의 ‘영구’(장욱제)의 못된 새어머니(박주아)처럼 우리네 드라마 속 새어머니들이 흔히 동화 <신데렐라>나 <콩쥐 팥쥐> 속 ‘계모’와 똑 닮았다면 <새엄마>의 새어머니는 배려 깊고 따뜻한, 새로운 타입이었으니까.

그런가하면 <사랑과 야망>의 끝없이 자식에게 헌신했던 은환(김청, 이민영)이며 냉랭하니 허울만 그럴듯했던 홍조 모(김애경. 박준금)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드라마에 나란히 등장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두 새어머니가 흥미로웠었는데 그러다 세월이 흘러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딸을 데리고 재혼을 한 여성이 등장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다른 두 아이와 재혼을 통해 낳은 아들. 겉으론 화목하기 그지없는 가정이었으나 나중에 전처소생의 아들 태섭(송창의)이 성적 소수자로 밝혀지자 새어머니인 민재 여사(김해숙)가 혹시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웠을 어린 시절이 빌미가 된 건 아닐까 홀로 고뇌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이제 급기야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새엄마가 탄생한 것이다. 그녀는 앞서 전처소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노력하던 캐릭터들과는 달리 즉흥적이고 자제를 모르는 인물이다. 태원과 결혼하기 위해 슬기를 데려오자고 시어머니를 부추겼던 게 바로 자신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솔직히 자업자득이긴 해도 여전히 전처를 못 잊는 남편 태원은 ‘이럴 줄 몰랐느냐‘며 나무라고, 예민한 아이는 도무지 곁을 안 주고, 믿었던 시어머니는 하루아침에 본색을 드러내고, 그렇게 차차 고립무원 신세가 되어가는 채린이가 딱하긴 하다.

게다가 은수가 딸에게 녹음해준 동화가 하필 계모인 왕비가 백설공주를 괴롭히는 내용이다 보니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하지만 아이가 아닌 어른이기에 자제를 했어야 옳다. 울분을 토하려면 아이가 아닌 은수에게 했어야지. 무엇보다 그녀가 동정조차 받지 못하는 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따지고 보면 은수나 태원도 책임을 면키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부모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고민 한번 해보지 않은 채 겁 없이 이 자리를 택한 벌로 그녀는 결국 두 번째 이혼의 기로에 서게 됐다.

한편 JTBC 월화극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에도 채린과 비슷한 인물이 나온다. 정완(유진)의 전 남편 준모(심형탁)와 결혼 예정이었던 경주(장준유) 역시 정완의 아들 태극(전준혁)에게 ‘너도 내가 싫겠지만 나는 이 자리가 좋겠니?’라며 아이와 한판 붙을 기세였으니까.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라서 채린이의 언행보다는 훨씬 덜 불편하게 다가왔지만 경주라는 여성 또한 어린애 같기는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다. 어째 앞으로 드라마에서 이런 여성들을 꽤 많이 접하게 되지 싶은데 자신의 아이를 낳을 때도 부모 될 준비가 필요하지만 더구나 남의 소생을 맡아 기르려면 반드시 몇 배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혼과 재혼이 예사로워진 요즘, 우리 모두가 깊이 고민해봐야 옳을 문제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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