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보다 나을 것 없는 영화관의 존재가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이번 아카데미 후보작 리스트에서 가장 실속있는 성과를 낸 후보작은 에이즈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 마르크 발레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다. 이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은 못하겠다. 예고편과 보도자료 밖에 본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얼마 전 아카데미 기획전에서 조금 수상쩍은 상황에서 상영됐다는 점은 밝혀야겠다.

간단히 말해 화면 비율의 문제이다. 예고편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영화의 화면 비율은 2.35:1이다. 하지만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에 따르면 이 영화는 1.85:1로 상영되었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는 작품에 화면 손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2.35:1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비율의 영화들은 1.85:1로 촬영되어 영상소스의 위아래 영상정보를 잘라내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감독의 의도에서 벗어난 그림임이 분명하고,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당시 상영본이 적당히 화면 양쪽을 잘라낸 팬앤스캔 버전임은 분명한 것 같다. 심지어 멀쩡하게 옆에서 대사를 하는 등장인물이 화면에서 잘려나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다. 조지 클루니의 <킹 메이커>가 국내에서는 1.85:1로 상영되었는데, 알고 봤더니 이 상영본은 2.35:1의 팬앤스캔 버전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아차린 DP 게시판 회원이 원본과 국내 상영본의 차이를 꼼꼼하게 밝히면서 이 차이가 얼마나 다른 영화를 만들었는지 증명했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아무래도 두 경우 모두 처음부터 VOD 상영을 위한 팬앤스캔 파일을 받아 별 생각 없이 틀었던 모양이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막판에 갑자기 다크 호스로 떠오른 영화이기 때문에 갑자기 극장 개봉으로 전환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부분 텔레비전이 4:3 비율의 통통한 브라운관을 갖고 있던 시절에 화면 양쪽을 적절하게 잘라 텔레비전 화면에 맞추는 것은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영화광들은 여전히 레터박스로 원래 비율을 고수하는 걸 선호했지만 그럴 일반 시청자들에게 강요하기는 어렵다. 4:3 텔레비전으로 2.35:1 영화를 위아래 레터박스가 달린 오리지널 버전으로 보면 화면 중간에 있는 가느다란 띠처럼 보인다.

8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들은 팬앤스캔 버전과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었다. 화면 양쪽을 잘라내도 구도가 심하게 망가지지 않게 2.35:1 대신 1.85:1 영화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수퍼 35밀리 필름의 위아래를 잘라 만드는 2.35:1 영화의 경우 제대로 작업한 4:3 화면 버전은 한 영화의 또다른 해석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종종 팬앤스캔 버전이 오리지널보다 더 인기를 얻는 경우도 생긴다. <터미네이터 3>가 그런 괴상한 예로, 여자 터미네이터의 벗은 몸이 오리지널보다 팬앤스캔 버전에서 더 많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지금 텔레비전 화면은 16:9이고 해상도도 높아졌다. 이 화면에서 2.35:1의 레터박스 버전을 튼다고 해서 크게 손해보는 일은 없다. <벤 허>나 <서부개척사>처럼 비정상적으로 긴 영화라면 예외겠지만 웬만한 텔레비전은 그 정도 비율의 레터박스는 무리없이 소화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팬앤스캔 버전은 만들어진다. 멀쩡한 2.35:1 영화들이 새 텔레비전 비율에 맞추어 양쪽이 잘려나간다. 차이가 대단치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1.85:1과 2.35:1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는 화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극장이 마스킹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이 나라에서도 왜 끊임없이 2.35:1의 영화들이 나오겠는가. 둘은 하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하지만 2차판권 시장에서 풀리는 파일들이 화면 비율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해두는 경우는 별로 없다. 얼마전 나는 전에 부천에서 소개되었던 호러 영화 <어웨이크닝>을 VOD로 보았다가 팬앤스캔 버전임을 알아차리고 실망했던 적이 있다. 돈을 내고 화면을 직접 볼 때까지 그 파일이 오리지널 화면비율인지, 팬앤스캔버전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없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포기한다. 하지만 정식으로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에서도 이러면 곤란하다. 어차피 기술적으로는 텔레비전이 오래 전에 영화를 넘어섰다. 지금 영화관은 평범한 텔레비전 화면보다 특별히 나을 것도 없는 화면을 기나긴 광고와 매너없는 관객들 사이에서 보여주는 구닥다리 공간이다. 여기서 최소한의 화면 비율 문제도 신경쓰지 않는다면 영화관에서 우리가 기대해야 할 건 무엇인가. 기대의 하한선이 조금씩 내려갈수록 영화관의 존재가치가 함께 사라져간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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