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필3’ 그녀들에게 스캔들은 오점이 아닌 경력이다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찬(贊)△.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은 tvN에서 방송하는 16부작 로맨스 드라마이다. 2011년에 방송되었던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1>에 이어, 2012년에는 시즌2가 방송되었고, 2014년에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이 방송되어 현재 종영을 앞두고 있다. <로맨스가 필요해> 시리즈는 도시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로, 시즌2부터는 주인공들의 연령을 30대로 높여, 변화된 여성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 결혼은 NO. 섹스는 YES

나이뿐이 아니다. 드라마는 기존의 공중파 로맨스물에 비해 진전된 성의식을 보여준다. 기존의 공중파 로맨스물이 연애를 다루면서도 드라마나 주인공의 궁극적인 관심은 결혼에 있었던 경우가 많으며, 연애를 그리면서도 성관계를 갖느냐 마느냐가 마치 중대한 고비인양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로맨스가 필요해3>의 주인공들은 개방적인 성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연하남과 애매한 상태로 동거를 하면서 직장상사와 연애를 하거나, 금요일 밤마다 호텔에서 ‘썸 타는’ 남자와 섹스를 즐기기도 한다. 가난한 커플은 고시원에라도 숨어들어 ‘야동 찍냐’는 힐난을 듣는다. 그중 진짜 ‘난 년’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한껏 활용하여 사회적 재원을 얻는다. 그녀에게 스캔들은 오점이 아니라 경력이다. 그녀들에게 섹스는 금기가 아니라 놀이이며, 자신의 재능과 매력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이 학생 때 혼전 순결 서약을 했었던 일이나, 첫사랑과 결혼할 줄 알았다는 것을 웃으며 말할 정도로 보수적인 성의식과 결별하였다. 이들은 서른을 훌쩍 넘겼지만 결혼을 갈망하지도 않는다. ‘썸’을 타다 덜컥 임신하게 된 30대 중반 여성은 출산을 결심하지만 결혼을 원하진 않는다.

성적 금기도 없고 결혼에 갇히지도 않는다면, 이제 이들의 연애는 무한히 자유로워질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성적 금기나 결혼이 더 이상 문제시되지 않는 그 시점부터 감정의 문제가 가장 크게 대두된다. 드라마는 바로 이 감정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연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드라마는 고시생을 뒷바라지하다가 합격과 동시에 깨진 전형적인 커플을 보여주면서도, 이들 사이에 어긋난 감정의 문제에 집중한다. 이 드라마에서 결혼이란 여러 상대를 만나왔지만 한 사람과 끝까지 가보고 싶어 하는 순수한 감정의 국면일 뿐 사회경제적인 것이 아니다. 부모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연애가 오묘한 감정의 게임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진지하게 몰입함으로써 나아갈 수 있는 인격의 성장임을 일깨운다.



◆ 감정에 미숙한 여성과 멘토 역할을 하는 남성의 구도

홈쇼핑 MD인 신주연(김소연)은 33살에 국장이 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자기 감정을 잘 돌보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을 가르쳐주었던 강선배(남궁민)에게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며, 어느덧 사랑하고 있었지만, 자기 감정을 알지 못한다.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자가 17년 만에 그녀 앞에 나타난 6살 연하의 주완(성준)이다. 주완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었던 주연에게 품었던 연정을 간직한 채 돌아와, 자신의 기억과는 달리 강퍅해진 주연의 일상을 보듬으며,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의 남성들은 기존의 드라마 속 남성들과는 달리 감정이 매우 발달된 주체로 그려진다. 이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결혼상대자로서 훌륭한 스펙을 가져서가 아니라, 감정의 측면에서 여성을 리드해 나가기 때문이다. 강선배는 냉철하면서도 다정한 남자로, 주연이 항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다. 주완은 마치 스크루우지 앞에 나타난 ‘과거의 령’처럼, 주연에게 잊고 살았던 따뜻한 마음을 일깨워주며 사랑이라는 순연한 감정을 가르쳐준다.

고시생과 헤어진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불어넣는 직장동료 역시 멘토급이다. 그는 실연당한 여성을 위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취향과 감각과 욕망의 가치를 일깨운다. 수많은 드라마와 코미디에서 여성은 매우 감정이 발달해 있고, 남성은 이를 잘 알지 못해 난처해하던 것을 감안하면, 아주 특이한 구도이다. 감정에 탁월한 이성애자 남성이 현실에서 극히 드문 것을 생각하면, 일단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로맨스 드라마에서 현실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그보다 드라마가 반영하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 잘나가지 못해도....30대 싱글여성들의 욕망과 결핍

신주연은 일중독자로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출근하고, 집에 와서도 홈쇼핑 방송을 보다 잠든다. 집은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고, 밥은 거의 해먹지 않는 ‘건어물녀’에 가깝다. 후배나 동료들에게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혹독하게 대하여 직장에선 '갑각류'로 불린다. 신주연의 캐릭터는 다소 과장되어 있긴 하지만, 30대 싱글여성들의 ‘주관적 진실’을 반영한다. 이는 실제로 저런 종류의 여성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는’ 욕망과 결핍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주연은 현실의 30대 싱글 여성들의 욕망과 결핍을 대변한다. 먼저 욕망편. 그녀는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해 고속승진 한 캐리어우먼으로, 소비자본주의의 꽃이자 가장 민감하게 성패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홈쇼핑업계에서, 최고의 트랜디한 감각으로 승부하는 패션 MD로 일한다. 다음 결핍 편. 그녀는 인간관계에 미숙하며, 자신의 감정과 일상을 잘 돌보지 못한다. 이는 그녀처럼 성공한 캐리어우먼은 아닐지라도, 하루하루 직장에 다니며 인격의 피폐함을 겪는 여성들의 콤플렉스를 짚어주는 설정이다.

드라마는 단지 그녀의 결핍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고, 주완이라는 ‘과거의 령’을 통해 그녀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며, 각박하고 경쟁적인 사회생활과 ‘나쁜 남자들’과의 연애를 겪으며 점점 그리 된 것임을 말해준다. 즉 그녀의 결핍에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정당성과 면죄부를 부여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주연을 통해 30대 여성들이 선망할 만한 직업세계에서의 성공을 대리만족으로 보여주면서, 주완이라는 존재를 통해 그녀들이 느끼는 결핍은 그녀들의 탓이 아니며, 당신들의 천성은 더없이 아름답다는 위로를 수행한다.



젊고 잘생긴 예술가가 어린 시절 나에 대한 가장 좋은 기억을 갖고 찾아와 오매불망 나를 진지하게 사랑하는 것도 놀라운데, 한집에 살면서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출근도 시켜주면서 엄마처럼 살뜰하게 내 일상을 챙겨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재잘대는 나에게 귀 기울이며 차분히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상담가의 역할까지 수행한다니, 이건 뭐 ‘별에서 온 외계인’ 못지않은 판타지이다.

잘나가는 캐리어우먼이지만 감정에는 서툰 여성들과 그녀들을 리드하는 다정한 멘토 남성이라는 드라마의 구도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잘나가지도 못하지만 나날이 감정이 피폐해져 감을 느끼는 30대 싱글여성들에게, 제목이 말해주듯 로맨스는 필요로서 요청된다. 무지막지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팍팍한 불모의 일상을 견디는 그녀들에게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은 한 대 맞고 벌떡 일어나서 다시 일해야 하는 일종의 링거액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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