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는 어떻게 우주에서 음향상을 받았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작품상은 <노예 12년>이 가져갔지만 올해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수확을 거둔 영화는 <그래비티>였다. 어쩔 수 없이 <노예 12년>에 작품상을 넘겨줄 수밖에 없는 해였지만 감독상을 포함해 7개의 상을 가져갔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그런데 <그래비티>가 받은 상들은 신기한 구석이 있다. 모두 재능 있는 사람들이 피땀을 흘려가며 필사적으로 노력해 멋진 결과물을 내어서 받은 상이니 왈가왈부할 구석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대부분은 우리가 익숙해져있는 상식에서 조금씩 벗어나 있다.

가장 놀려먹기 쉬운 건 '우주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라고 시작한 영화가 음향상과 음향편집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 논리는 쉬운 만큼 격파하기도 쉽다. 만약 이 영화의 무대가 우주라고 정말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면 큰일 났을 것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 살아남으려면 공기가 가득 차 있는 밀폐된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비티>의 세계는 있을 법한 이유로 충분히 시끄럽다. 단지 이런 영화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특정 소음들은 과학적인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데, 그 자리를 교활하게 채우는 것은 음악이다. 고로 이 영화에서 스티븐 프라이스가 받은 상은 반쯤은 음향상에 걸치고 있다.

촬영상으로 넘어가면 더 이상해진다. 이번에 상을 받은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츠키는 감독 알폰소 쿠아론만큼이나 <그래비티>의 완성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작업을 보면 우리가 촬영기사 또는 촬영감독이 할 법한 일은 별로 들어있지 않다. 영화를 봐도 카메라로 찍은 실제 영상은 산드라 불록의 얼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몽땅 CG인 장면이 절반에 가깝다. 심지어 그 얼굴마저도 CG인 헬멧 유리에 가려져 있으며 그 조금 나오는 얼굴도 로봇이 찍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보는 <그래비티>의 영상은 루베츠키의 작품이다. 카메라로 직접 찍지 않았을 뿐, 그는 화면 구도에서부터 화면의 자잘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들을 책임진다. 심지어 그는 이 영화의 촬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라이트 박스의 실질적인 발명가다. 단지 그는 이 작업의 대부분을 카메라 없이 한다. 이 정도면 촬영감독이라는 이름이 좀 민망할 지경이다. 뭔가 멋진 일을 하긴 했지만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는 작업이 이렇게 빈약하다면 그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편집상도 마찬가지다. 이미 찍은 필름을 잘라 붙이는 것이 편집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래비티>의 메이킹을 보면 당황할 것이다. 영화의 편집은 실제 영화가 촬영되기 이전의 프리 비주얼 작업 때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작업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편집을 따른다. 보통 맨 뒤여야 할 작업이 이 영화에서는 앞으로 간다.

영화가 필름으로 찍은 영상을 잘라붙여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우리가 보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장르의 정의에 필수적이었던 필름은 이미 반쯤 관속으로 들어갔다. 영화관과 영사라는 중간 단계 역시 언젠가는 의미를 잃을 것이다. 아직은 필름만의 질감이 가끔 그립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같이 보는 경험에 대해 사람들이 미신적인 감상을 갖고 있지만 이게 얼마나 갈까? 촬영과 편집이 지금과 전혀 다른 무언가를 의미한다면 배우나 연기는 어떨까?

<그래비티>는 그런 변화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영화라는 매체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된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영화는 우리가 아직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방향을 향해 갈 것이다. 그 고민이 이런 롤러코스터의 질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랄 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그래비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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