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프리오, 위험수준 도달한 아카데미만을 위한 연기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사람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다. 그가 시상식에서 특별히 대단한 일을 했던 것도 아니다. 상도 못 받았고, 유명한 엘렌의 트위터 셀카에도 들어가지 못 했다. 들어가기 전에 예의바르게 인터뷰를 하고, 중간에 피자 한 조각 먹고, 남우주연상 발표 때 다른 후보들과 함께 화면에 얼굴이 잡힌 것. 그게 전부였다.

그가 상을 타지 못한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열성적인 디카프리오 팬이라고 해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를 모두 봤다면, 매튜 매커너헤이가 상을 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그가 매커너헤이의 경쟁자였던 것도 아니다. 올해 그나마 매커너헤이의 경쟁자로 여겨졌던 인물은 <노예 12년>의 치웨텔 에지오포였다. 디카프리오의 수상 가능성은 한참 낮았다.

하지만 이 지루하고 심심한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시상식 이전부터 SNS에서는 디카프리오가 이번에도 아카데미 상을 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고 놀려대는 움짤과 농담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가 상을 타지 못하자 농담들은 폭발했다. 지금도 Dicaprio를 검색하면 정말 온갖 종류의 오스카 움짤과 합성 사진들을 찾을 수 있는데, 몇 개는 걸작이고, 몇 개는 치사하고 잔인하다. 가끔 둘 다인 것도 있지만.

하지만 왜 디카프리오가 상을 타지 못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었던 걸까? 아카데미 상 후보에 꾸준히 오르면서도 상을 타지 못하는 배우들은 많다. 에이미 애덤스는 어떤가. 애덤스는 이번에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이전에 조연상 후보로 네 번이나 올랐다가 떨어졌다. 경력이 훨씬 긴 디카프리오는 조연상까지 포함해서 아직 네 번이다. 네 번은 많지만 할리우드에서 그 정도 후보 지명은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다. 그 중엔 정말 쟁쟁한 배우들도 많다. 얼마 전에 작고한 피터 오툴은 여덟 번이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가 모두 떨어졌다. 하지만 에이미 애덤스가 떨어진 게 웃기지 않은 것처럼 피터 오툴이 여덟 번 떨어진 것도 웃기지 않다. 다른 동료들은 어떤가. 여러분은 조니 뎁이 세 번 후보에 올랐다가 떨어진 게 재미있는가? 아니다. 사람들은 오직 디카프리오가 떨어진 것만 재미있어한다.



간단한 설명이 몇 개 있다. 우선 밴드웨건 효과가 있다.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 상을 받지 못한 것이 우습다!라는 것 자체가 유행이 되자 유행이라는 이유로 더 웃겨지고 그 때문에 더 요란한 유행이 된 것이다. 최근에 나온 움짤들을 만든 사람들 중 상당수는 이번 시상식 이전엔 디카프리오엔 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유행이라니까 그 흐름에 편승한 것이다.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디카프리오가 이번에 상을 타지 못한 것에는 실제로 우스꽝스러운 구석이 있다.

디카프리오의 경력을 보자. 초창기에 그는 테크닉이 거칠긴 했어도 재능이 있어 보이는 아역 출신의 인디 배우였다. 여기까지는 우스꽝스러운 게 전혀 없다. 그러다가 <로미오와 줄리엣>과 <타이타닉>으로 십대 여성 팬들을 거느리기 시작하면서 안티 팬들을 만들게 된다. 물론 남성 안티들은 여성 안티만큼 부지런하지 않기 때문에 극단적인 이미지 손상은 없지만 그래도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이후 슬럼프 때 조금씩 우스꽝스러움이 쌓인다. 그 뒤로 그는 스콜세지 밑으로 들어가 그에게 기합을 받아가며 영화를 찍고 진지한 배우로 인정을 받고 아카데미 후보에도 오르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그 순간부터 진짜로 웃기기 시작한다. 그냥은 그렇게 웃기지 않고 아카데미와 연결해야 본격적으로 웃긴다.



한마디로 그의 문제점은 그가 아카데미를 받고 진지한 배우로 인정받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갱스 오브 뉴욕> 이후 그가 찍은 영화들을 보라. 그는 오직 아카데미 연기만 하고 있다. 명감독이 찍는 아카데미 표 대작에만 집중적으로 나와 중요하고 진지한 캐릭터를 죽어라고 열심히 연기한다. 한마디로 속이 보인다. 위에서 예로 든 조니 뎁에겐 그런 면이 없다. 그도 아카데미 표 영화에 나와 진지한 연기를 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가두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그가 후보로 올랐다가 떨어지는 과정은 그냥 자연스러운 배우 경력의 일부처럼 보인다. 디카프리오처럼 조급해보이지 않는 것이다. 에이미 애덤스도 마찬가지다. 애덤스는 비중을 따지지 않고 그냥 좋은 영화에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로 수상여부는 부수적이다. 오로지 디카프리오만이 필사적으로 아카데미를 노리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에게 간절함이 들통나면 어떻게 되나? 그 순간부터 그는 약자가 되고 조리돌림이 시작된다.

아카데미 상을 잊고 보면 이게 영화나 배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적어도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디카프리오가 보여준 연기는 영화에 완벽하게 맞았다. 그 영화 속 연기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도 이상할 건 전혀 없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그건 레이 리오타가 <좋은 친구들>에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디카프리오가 이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는 내면이 없는 인물이다. 이 종이 한 장 깊이도 안 되는 인물을 얄팍하고 요란하게 연기하는 건 완벽하게 정당화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영화에 정확하게 맞는 연기를 하는 것이 배우에게 늘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아카데미 상과 같은 외부의 목적을 두고 그런 연기를 한다면 그는 그 목적에 사로잡히고 만다. 여기서부터 배우의 경직이 시작된다. 여전히 꾸준히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겠지만, 연기 근육을 조금씩 잃어가는 것이다. 그는 지금 아주 위험한 단계이다. 이번 디카프리오 오스카 농담은 바로 그런 경직성을 배우에게 경고해주는 유익한 신호인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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