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알기는 아까운 야채스튜의 일석삼조 효과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청국장 가루나 환(丸), 또는 효모가 얼마나 장(腸) 건강에 좋은지 말하고 나서, 게다가 이런 유익균을 평소에 섭취하면 아침에 ‘큰 일’을 치르는 데 어떤 도움을 받는지,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매일 아침 적당한 크기와 굵기, 단단함으로 떨어지는 결과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걸 내 체험을 바탕으로 얘기하려는 참에, 말 허리가 뎅강 잘렸다.

“그러지 마시고, 야채를 많이 드세요.”

그 분 말을 따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목적에서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지난 몇 주 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 저녁을 야채 위주로 먹게 됐다.

계기는 봄 마라톤 준비였다. 마라톤에 입문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내 기록은 대개 4시간을 중심으로 앞으로 13분, 뒤로 13분을 오간다. 첫 기록이 4시간 13분이었고 가장 최근 기록이 4시간 13분 전, 그러니까 3시간 47분이었다. 기록은 변변치 않지만 그래도 10년 동안 26분을 단축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1년에 2분30여초씩 단축한 셈이다.

이건 마라톤을 한다고 자랑하지 못할 실적이라고 자책한 뒤 올해 봄 마라톤에서는 기록을 가능한 한 큰 폭 줄여보겠노라고 결심했다. 이번에는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기록이 제자리를 맴돌았다면 이전처럼 뛰어서는 전과 비슷한 시간에 피니시라인에 들어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럼 무엇을 바꿀 것인가. 짧은 궁리 끝에 나는 타고나거나 주어진 제약을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제약은 현재 근무하는 환경에서 연습량을 전보다 뚜렷이 늘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동안에도 대개 주말에 이틀, 토요일에 14㎞, 일요일에는 21㎞를 거의 어김없이 달렸고 주중에 10㎞씩 3번 달렸는데, 이렇게 하면 65㎞다. 주말 훈련을 더 강화하기도, 주중에 하루 더 시간을 내기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연습량을 목표로 삼는 건 미련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마라톤을 하기에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 전에는 많이 뛰어 체중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렵다는 걸 마라톤 대회를 대비하면서 매번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다시 ‘혹시’할 것이 아니라 그걸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이어트로 몸무게를 빼기로 했다.

약속이 없는 날 저녁 식사를 겨냥했다. 저녁을 건너뛰거나 조금 먹으면서 몸을 가볍게 하기는 쉽지 않다. 저녁을 먹지 않는 듯 때우면 자꾸만 간식거리로 배를 채워, 결국은 저녁식사를 잘 먹은 때나 다름없게 되곤 했다.

배를 가득 채우면서도 칼로리가 적은 식단이 뭐가 있을까. 전에 몇 번 저녁식사 대신 양배추를 쪄서 된장에 찍어먹었다. 하지만 이 식단은 여러 차례 이어가기엔 맛이 없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를 쓴 베른트 하인리히라는 생물학자가 오두막에서 지내면서 냄비에 야채 위주로 끓여 먹는 장면이 떠올랐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다. ‘바로 그거다!’

칼로리를 최저로 낮추되 배를 불리는 식사로 ‘야채스튜’를 생각해냈다. 찜도 아니고 국도 아니고 찌개도 아니다. 국물이 있되 야채가 냄비에 가득해 국물 위로 보이는 그런 음식이다. 야채스튜의 재료는 그날그날 달라진다. 공통점은 멸치와 다시마와 표고버섯으로 국물 맛을 낸다는 정도뿐이다. 냉장고에 있는 대로, 감자, 당근, 양파, 가지, 피망, 콩나물, 토란대, 무청 시래기 등을 넣고 끓인다. 이 모든 야채를 다 넣는 건 물론 아니다. 조합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열량이 높아지지 않게끔 감자는 언제나 한 알만 넣는다.

그날그날 입맛 당기는 데 따라 어떤 때에는 카레를 국물에 풀었고, 어떤 날에는 된장을, 다른 저녁엔 고추장을 넣어 끓였다. 먹을 만했다.

이렇게 지난 4주 동안 일주일에 서너 번 야채스튜 저녁을 먹었다. 체중이 ㎏ 기준으로 일주일에 한 눈금가까이 내려갔다. 몸이 3㎏ 가벼워졌다. 앞으로 1㎏ 더 감량할 계획이다. 체중이 1㎏ 줄면 풀코스 기록이 3분 정도 단축된다고 한다. 4㎏이면 12분이다. 기대된다.

야채스튜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줬다. 체중 감소가 첫째요, 장 건강이 둘째다. 장 건강부터 설명하겠다. 우리 내장에는 1㎏에 달하는 수백 종의 미생물이 100조마리(?)나 서식한다. 미생물은 우리 편의에 따라 유익균과 유해균으로 나눌 수 있다. 유산균과 청국장균, 효모 등이 유익균이다. 장내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기 쉬운 환경에 노출된 현대인은 유익균을 섭취하는 게 좋다. 이런 얘기를 지인의 경험과 책으로 접한 나는 2012년 여름 무렵부터 청국장 가루에 이어 청국장 환, 그 다음에는 맥주효모를 구해 먹었다.

하지만 일정 기간 복용해 장내 생태계에 유익균이 자리잡은 뒤에는 계속 보충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번에 야채스튜를 먹으면서 깨달았다. 유익균 섭취를 중단한 이후에도 아침에 개운하게 장을 비워낼 수 있었다. 야채스튜 덕분이다. 유익균은 섬유소를 좋아한다. 추가로 유익균을 보충해주지 않아도 야채를 충분히 먹어 섬유소를 많이 제공하면 유익균이 섬유소를 맛있게 먹고 왕성하게 번식한다.

야채스튜의 셋째 이점은 청국장과 효모에 비해 저렴하다는 것이다. 저녁식사를 하는 비용도 덜 든다.

체중이 부담스럽고 뱃속도 편안하지 않은 분들께 야채스튜를 권한다. 청국장 가루에서 환으로, 환에서 맥주효모로, 짧지 않은 길을 돌아서 얻게 된, 저렴하지만 값진 처방이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메뉴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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