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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경은 곧 박찬욱을 뛰어 넘을 것이다
기사입력 :[ 2014-03-14 17:16 ]


<만신> 박찬경, 본격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서다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이 영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박찬경은 형인 박찬욱 감독을 뛰어 넘을 것이다. 이런 얘기 하면 박찬욱이 기분 나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뻐할지 모른다. 박찬경은 이번 신작 <만신>을 통해 자신이 새로운 감독의 길로 들어섰음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지금껏 설치화가이자 미디어 아트 작가 겸 영화감독이었다. 이제 앞의 수식어는 싹 없어질 것이다. 물론 그의 DNA는 계속해서 미술에서 나오는 것이긴 해도 이제부터 그는 진정 영화감독으로서 전업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상업영화권에서 그에게 러브 콜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이번 <만신>은 그가 이제 장르 영화마저 찍을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줬다. 마침 그는 진작부터 호러 영화를 찍고 싶어 했다.

<만신>은 그만큼 재미있고, 이색적이며, 유니크(unique)하고, 충분히 실험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작품이다. 심지어 박찬경이 갖고 있는 영화와 세상에 대한 위험한 상상까지 슬쩍 엿볼 수 있다. <만신>은 만신 김금화에 대한 얘기다. ‘만신’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김금화는 ‘나라 무당’으로 불릴 만큼 무속인들 사이에 명망이 높다. 일반 사이에서도 유명인이다. 그녀가 작두를 타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올해로 83세인 만신 김금화는 일찌감치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한 무속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만신 김금화의 일생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정리하려는 사회적 야망이 강한 작품도 아니다. 물론 박찬경 본인은 겉으론 그렇게 얘기한다. 만신을 통해 우리의 지난 사회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박찬경은 김금화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영화감독 혹은 예술가와 무당을 등치시킨다. 무당이 이 사회 속에서 천대받고 핍박받아 왔듯이 어쩌면 영화든 다른 예술이든 무당처럼 소외 되고 오해 받으며 여전히 한 구석에 밀려 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박찬경은 두 가지를 감행한다. 하나는 무속신앙을 우리사회의 중앙무대에 바짝 끌어 올려 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 모두 살짝 잊고 살아가는 영화예술이 갖는 존재적 의의를 당당하게 밝혀 낸다. 영화가 어떤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어떤 이들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는 지를 강조한다.

그렇게 주변과 중심의 변증법적 결합이 영화 속을 횡행한다. 그 이념과 실천이 기막히다. 그뿐이 아니다. 박찬경은 이번 영화를 통해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뛰어 넘는다. 다큐와 극 영화의 경계도 자유자재로 뛰어 넘는다. 그 융합의 질감이 뛰어나다. 특히 다큐와 극 영화를 결합해 나가는데 있어서 결코 1대1 병치의 구조나 기계적인 결합의 모습이 아니다. 실제로 다큐가 극 영화로 걸어 들어가고 극 영화가 다큐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그 같은 감독의 의도는, 줄곧 다큐멘터리 인터뷰어로서만 영화에 나오던 만신 김금화가 갑자기 김새론과 류현경, 문소리가 연기하는 드라마 안으로 슬쩍 들어 오는 엔딩 장면에서 알 수 있다. 그녀는 거기서 기웃대고 흘깃대며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지나친다. 마치 자신도 배우인 것처럼.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최근 2~3년 사이에 만들어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감정의 우물이 깊어 짙은 인상을 남긴다.



화가 출신답게 영화의 조형감, 채색감이 남다르다. 김새론이 담당한 김금화의 어린 시절 부분은 이 영화가 결코 녹록한 작품이 아님을, 꽤나 가슴을 울리는 만연체의 서사를 가슴 속에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 김금화가 신기(神氣)에 시달리다 낫과 솥뚜껑으로 무당의 제기(祭器)를 대신하는데 그것을 그림자로 처리하는 장면은 심지어 아름다우면서도 키치적인 느낌마저 준다. 영리한 구성이다. 장면 하나하나에 감독이 얼마나 고민과 사유를 병행시켰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박찬경에게 영화의 모든 장면은 마치 설치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번 영화의 소도구 전부는 그에겐 예전 같으면 꽤 그럴 듯한 오브제들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점들이야말로 그가 무속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이유일 것이다. 박찬경이 무속에 천착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데뷔작 격인 <비행> 이후 <신도안> <파란만장> <다시 태고나고 싶어요, 안양에>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았던 단편 <청출어람>에 이르기까지 줄곧 우리 전통신앙인 무속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아마도 그건 예술작가로서 그가 갖는 주체성, 아이덴터티에 대한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그는 현대미술을 전공했다. 자꾸 서양적인 것을 추구하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꼈을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아 가면서까지 자꾸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은 자기만의 예술언어를 발견하겠다는 눈물 겨운 의지의 소산이다. <만신>은 그런 의미에서 무속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발굴해 오던, 일련의 박찬경 작업의 마침표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로 변곡점을 넘어섰다. 아마 그는 이제 자기만의 대중영화, 자기만의 상업영화를 추구할 것이다.



<만신>은 심지어 매우 재미있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듯이 이야기가 쑥쑥 앞으로 잘 나간다. 다큐와 극 영화적 요소를 리드미컬하게 이어 나간 것이 주효했다. 그건 가능한 한 이 영화를 친절하게 만들려고 했던 감독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간중간 내레이션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각각 어린 시절과 20대, 중년의 김금화를 연기했던 김새론과 류현경, 문소리의 연기가 실로 영화의 정점을 찍는다. 김새론은 역시 발군이다. 류현경도 역시 좋은 배우다. 문소리는 실제 무당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다. 사람들은 어쩌면 지금 무당을 찾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난세에는 늘 구복(求福)의 마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박찬경이 영화계의 무당이 됐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까. 그럴 것이다. 그래서 그가 영화계를 다시 한번 구원할 것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ohdjin@hanmail.net

[사진=영화 <만신> 스틸컷 메이킹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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