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릭은 존경, 김기덕은 환대, 라스 폰 트리에는 축출
-제64회 칸국제영화제 결산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영화로 본 세상]‘영화계의 은둔자’로 유명한 테렌스 맬릭 감독은 제64회 칸국제영화제의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 수상식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05년 <신세계> 이후 6년만의 신작인 <트리 오브 라이프(Tree of Life)>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맬릭감독은 프로듀서 빌 폴래드를 대신 보내 트로피를 받았다. 폴래드 감독은 시상식에서 “오늘 왜 맬릭 감독이 이 자리에 오지 않았는지 묻는다면 아주 쉽게 대답할 수 있다. 맬릭 감독은 개인적으로 무척 겸손하고 수줍음이 많다. 그는 작품으로만 말하고 싶어한다. 자만심이나 명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면서 “그가 사석에서는 만약 상을 받게 된다면 부모님께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우주탄생 때부터 공룡 서식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온 삶과 죽음을 다룬 작품으로 브래드 피트가 강한 부성을 가진 아버지로 등장하며, 션 펜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하는 아들 역을 맡았다. 테렌스 맬릭의 이번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는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에 각각 로버트 드 니로와 우마 써먼이 포진해 있었던 것도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맬릭 감독은 40여년에 걸친 활동기간 동안 불과 5편밖에 발표하지 않은 과작의 작가지만 철학적이며 예술성 강한 작품들로 많은 매니아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73년 <황무지>, 78년 <천국의 나날들>, 98년 <신 레드 라인> 등의 작품이 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위해 홍보에 나선 적도 없고 언론과 인터뷰도 거의 갖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칸영화제 수상은 79년 칸영화제에서 <천국의 나날들>로 감독상을 수상한 이래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는 올해도 칸을 직접 찾지 않았다. 브래드 피트는 기자회견에서 일체의 영화 홍보에 나서지 않는 맬릭 감독에 대해 “그는 진정한 아티스트이다. 그는 스스로를 집을 짓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부동산을 파는 데는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른바 ‘나치’발언으로 올 영화제에서 최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는 커스틴 던스트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 줬다. 던스트는 폰 트리에 감독이 시사회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나는 나치주의자’라고 돌출발언한 것과 관련해 마음 고생이 심했던 듯, 수상식에서 “와우, 정말 내겐 굉장한 한 주였다”고 말했다.

<멜랑콜리아>는 심한 우울증을 겪는 자매를 중심으로 우주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작품. 일부 언론들은 비슷한 주제의 <트리 오브 라이프>와 비교하면서, <트리 오브 라이프>의 음울한 버전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칸영화제 조직위는 지난 20일 덴마크계인 폰 트리에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독일계혈통을 언급하면서 “나는 정말 유대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내가 진짜 나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히틀러를 이해하고 조금은 공감한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킨 데 대해, “라스 폰 트리에가 예술적 자유와 인류애를 추구하는 칸의 정신을 해쳤다”면서 그가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임를 선언했다. 칸의 역사상 경쟁부문에 초청한 감독에게 이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멜랑콜리아>를 취소하지는 않았지만, 폰 트리에에게 일체의 공식행사 참석금지 및 주요 상영관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 것. 사실상 영화제에서 라스 폰 트리에를 축출한 셈이다. 이에 대해 폰 트리에는 “반역자로서 내 명성을 입증해줘서 감사하다. 나에 대한 모든 비난을 환영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심사위원 대상은 <자전거를 가진 소년>을 만든 벨기에의 장-피에르와 뤼크 다르덴 형제감독과 <아나톨리아에서 옛날 옛적에>를 만든 터기의 누리 빌제 세일란감독이 공동 수상했다.

심사위원상은 <폴리스>를 만든 프랑스 메이웬 감독에게 돌아갔고, 감독상은 <드라이브>의 덴마크 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이 받아 갔다. 남우주연상은 미셸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아티스트>에서 열연한 프랑스 배우 장 뒤자르댕에게 돌아갔다. 칸영화제가 경쟁부문 작품을 발표한 이후에 초청돼 눈길을 끌었던 이 작품은 흑백 무성영화다. 192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무성영화에서 토키 영화로 전환되는 시대에 혼란을 겪는 한 배우의 삶을 다룬 내용이다.

각본상은 이스라엘 영화 <각주(Footnote)>의 조지프 세더 감독이 수상했다.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는 보도된 대로 우리의 김기덕 감독과 독일 안드레아스 드레센 감독이 각각 <아리랑>과 <트랙에서 멈춰진>으로 공동수상했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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