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뮤지컬 <셜록홈즈> 배우 이주광 윤형렬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압구정 BBC아트센터 BBC홀에서 공연 중인 창작뮤지컬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은 최초의 시즌제 뮤지컬로 주목을 받은 작품. 2011년 초연 시즌1<앤더슨가의 비밀>에 이어 시즌2는 세련된 영상과 세트, 매혹적인 스토리, 피 튀기고 숨 막히는 추격전을 도입해 스릴감을 더했다.

<셜록홈즈2: 블러디 게임>은 세기의 미스터리 잭 더 리퍼의 연쇄살인사건을 쫓는 셜록홈즈의 추적을 그린 작품이다. 노우성 연출, 최종윤 작곡가 등 전편 창작진들이 그대로 합류 해 그 어떤 사건보다도 홈즈가 난관에 부딪히는 장면들을 보여 줘, 이 모든 게 두 사람이 벌이는 게임임을 확인시킨다.

셜록홈즈 역은 시즌1에서 셜록을 연기한 송용진과 김도현이, 셜록홈즈의 친구이자 조수 제인 왓슨 역은 이영미가 분해 열연을 펼친다. 이밖에 배우 정명은, 이정한, 이정화, 김기순, 김형묵, 정종훈 등 존재감 강한 실력파 배우들이 출연한다.

범죄 현장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정체 불명의 사내 애드거 역 배우 이주광, 셜록홈즈를 도와 잭을 쫓는 경찰 클라이브 역 배우 윤형렬을 만나 애드거와 클라이브의 숨겨진 아픔과 비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 배우와 관객이 함께 희열을 느끼는 뮤지컬 <셜록홈즈>

-<셜록홈즈2: 블러디게임>작품에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이주광 : 이 작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어 오디션에 지원을 했어요. 다행히 하게 됐고, 반응도 좋아서 기분 좋게 하고 있어요. (시즌2 쇼케이스 공연을 보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건가?) 시즌1도 보지 못했고, 공연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약간 앞길을 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요. 공연 제목을 보거나 시놉시스를 보거나 음악을 접하기만 해도 ‘이건 해야겠구나’ 이게 결정이 돼요, 그리고선 ‘전 작품은 이걸 했으니 이번엔 이걸 해야겠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구요. <셜록홈즈>도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 됐어요.

윤형렬 : <셜록홈즈>시즌1도 공연이 오픈 되자마자 재미있게 봤어요. 시즌2에 대한 준비가 들어간 그 때부터 함께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직접 들은 건 아니고 미팅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들어왔거든요. 그렇게 이야기가 오가면서 대본을 받았는데 대본만 읽어도 셜록홈즈 원작을 읽은 것처럼 흥미가 생겼어요. 그래서 하고 싶었고 이렇게 무대에 서게 됐어요.

-직접 작품 속에 들어가 보니 어땠나. 더 재미있는 걸 발견하게 됐나
이주광 : 대본만 봤을 때랑 다른 것은 정말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창작자들이 많은 고민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요. 추리하는 과정만 봐도 단순히 ‘그럴 것이다’란 추측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정말 근접한 추리과정을 거쳤어요. 개인적으로 추리물을 좋아해 더 깊이 다가온 점도 있고, 재미있었어요. 창작뮤지컬로 만들어졌다는 점 또한 고무적이라 봤어요. 그래서 제 장면이 아니더라도 계속 옆에서 보면서 동료 배우들이 그걸 완성해 나갔을 때 함께 희열을 느끼게 돼요.

윤형렬 : 주광 형이 이야기 한 것처럼, 대본 자체가 빈틈이 없어요. 연습을 하면서도 ‘이것까지 생각했다니!’ 라며 감탄 할 정도거든요. 연출이 오랜 시간 준비한 작업을 배우가 함께 연습하고 공연 하면서 느끼는 짜릿함이 대단해요. 마치 시계 태엽이 착착 맞아 들어가는 것 처럼요. 개인적으로 연습하면서 이 작품은 감정의 기복이나 에너지가 이 정도 되겠구나 란 예상을 해요. 막상 공연에 들어가니 처음에 생각했던 에너지의 폭은 말도 안 된 거였어요. 엄청 깊이 들어가 분출해야 하는 역이라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배우로서는 점점 익어가면서 재미를 찾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공연입니다.

이주광 : 극과 극의 에너지가 필요한 작품이죠. 정말 내가 가지고 있는 선을 넘어선 극적인 걸 필요로 하는 역인데 그게 실현이 됐을 때 기분이 대단해요. 또 모든 관객의 에너지가 느껴질 때, 그럴 땐 배우인 저도 보는 관객 분도 큰 에너지를 주고 받는 엄청난 쾌감이 있어요.

■ ‘누가 살인마 잭일까’보다 중요한 건 ‘셜록과 잭이 어떤 대결을 벌이느냐’

-미스터리한 인물 애드거가 이 작품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이주광 : 셜록홈즈는 살인마 잭이란 인물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고, 잭은 홈즈를 바닥까지 내려가도록 해 좌절감을 안겨주는 존재입니다. 홈즈가 거의 잡았다고 생각 하는 순간에도 살인 사건은 일어나고 사건은 미궁 속에 빠지게 돼요. 사람들은 ‘홈즈는 이젠 우리를 구원해줄 사람이 아니다’고 생각을 하게 되겠죠. 잭은 자신을 대신할 인물이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브와 에드거란 인물이 거의 동등 하다시피한 에너지로 등장하게 돼요. 관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그 정도 레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차피 진실은 2막에 밝혀져요. 관객들이 봤을 때 ‘누가 잭더리퍼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보여지는 부분은 확실히 보여줘요.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는 그 선을 유지하며 연기를 하고 있어요.

-예상외로 많은 관객들이 잭이 누구인지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되나?
윤형렬 : 애드거가 극적인 사건의 중심에 있고, 애드거와 마리아(정명은)의 관계도 많이 보여지니 ‘애드거가 살인마 잭이 된 이유가 뭘까?’ 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지인들이 공연 보러 와서는 인터미션 시간에 전화를 해요. “공연 보니, 넌 그냥 셜록홈즈를 이용해서 명예를 얻으려는 얍삽한 형사로 나와서 되게 재수없던데‘ 란 식으로 말해요.” 그러면 전 일부러 뒷이야기를 안 해주고 웃어요. 공연 끝나고 다시 연락해선 “어쩐지 1막에서 너무 조금 나오지 싶었어”란 말을 하기도 했어요.

이주광 : 제 친구들도 ‘너지? 답답하게 하지 말고 빨리 누가 잭인지 말해줘’ 란 말을 했어요. 그런 게 재미있기도 했어요. 너무 처음에 나오니까 장치로 깔아놨겠지라고 생각 할 수는 있는데, 많은 분들이 초반 장면에서 물음표가 생기면서 속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1막에서 너무 태연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클라이브는 진짜 형사인가?’로 생각할 수 있어요. 홈즈랑도 같이 어울려서 수사를 같이 할 정도니까요. 그 점이 무척 신기했어요.

윤형렬 : 초반에 장치적으로 보여주는 건 애드거가 다해요. 2막에선 클라이브가 지시한 일을 수행 했던 것 뿐인데, 보고 있으면 내가 관객이라도 속겠어요.

-‘잭더리퍼가 누구인가?’가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작가나 연출은 그걸 노리진 않았을 것 같다. <셜록홈즈>에서 애드거와 클라이브 이렇게 핵심인물 두 명을 등장시킨 이유는 뭐라고 생각했나
이주광 : ‘누가 살인마 잭일까’가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셜록과 어떤 대결을 벌이느냐도 중요해요. 잭이 누구인지 그 사실을 미리 알게 되든 나중에 알게 되든 상관없이, 셜록과의 대결에서 한동안은 위에서 내려다 볼 정도로의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봤어요. 애드거와 클라이브가 다양한 살인을 저지르기 위한 것들을 마련한 거죠. 물론 더 많은 재미를 위해서는 누가 잭인지 알고 보는 것보다는 극을 보면서 ‘잭이 누굴까? 잭이 어떤 일을 벌였구나. 셜록은 이 정도의 데미지를 입었구나. 저렇게 될 수 밖에 없었나. ’ 등의 감정을 따라가는 게 좋죠. 이게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거거든요.



■ 살인을 계획하는 자 잭, 살인을 수행하는 자 애드거

-1편이 <셜록홈즈: 앤더스가의 비밀>이었다면, 2편은 <셜록홈즈: 애드거의 비밀>이란 부제가 붙어도 될 만큼 잭의 과거에 비해 애드거의 과거는 극 안에서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애드거는 어떤 삶을 살아왔나
이주광 : 연출님과 그런 대화를 한 적이 있어요. 애드거는 원래 귀족 집안의 자제였는데 집안이 몰락하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전 길거리에 나 앉게 됐어요. 그 당시만 해도 여자는 대부분 창녀이고 남자는 도박을 하면서 살았대요. 살아서 돌아다니기 힘든 거리의 아이가 된 거죠. 밥이라도 얻어먹으려고 하지만 어린 아이는 계속 못된 어른들에게 짓밟히기만 해요. 그러다 우연히 니콜라스가 애드거를 보게 돼요.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고 ‘내가 이 아이를 이용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란 생각으로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게 해요. 전 거기에 맞춰서 애드거란 인물을 구축했어요.

윤형렬 : 그 이야기는 저도 기억이 나는데, 니콜라스가 애드거에게 사냥개의 눈빛을 보게 돼요. ‘이 아이를 데려가면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하는 눈빛이요. 잭의 원래 이름인 가브리엘인데, 가브리엘은 동생 마리아를 원하는 니콜라스 집에 함께 딸려오게 돼요.

-귀족의 아들 애드거와 창녀의 아들 가브리엘은 둘 다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다. 차이점은 뭔가
윤형렬 : 애드거는 귀족 집안이지만 가브리엘은 아빠가 누군지도 몰라요. 엄마가 창녀이기 때문에 동생 마리아와 배는 같고 씨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죠. 가브리엘은 어릴 때 에밀리 원장에게 되게 많이 맞았어요. 가브리엘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엄마에게 버림받으면서도 ‘네가 정말 싫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모두가 날 버리지만 엄마만은 버리지 말아야 하는데, 엄마까지 자신을 버린 거잖아요. 원장에게 맞은 이유도 ‘넌 너무 더러워’란 이유였어요. 이런 가브리엘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마리아란 존재가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피붙이라 생각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사람이자, 제가 없으면 기절까지 하는 날 의지하는 단 하나의 존재이죠.

이주광 : 제가 생각하는 같은 부분은 둘 다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겁니다. 버림을 받았든 길가에 나 앉게 생겼던 구체적인 사실은 다르겠지만, 애드거와 가브리엘은 니콜라스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모이게 돼요. 그런데 우리를 돌봐주는 분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악인이었고, 거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통을 겪어야 했어요. 다른 점이라면 애드거는 자라면서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는 점입니다. 어릴 때 니콜라스의 계략을 수행하는 심부름꾼이 된 거죠. 애드거는 니콜라스가 명령을 내리면 따라야했고, 더 나아가서 니콜라스가 그렇게 된 뒤에는 마리아가 자길 유일하게 아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유일한 존재로 다가왔다는 점입니다.

-살인을 수행하는 애드거는 잭이자 가브리엘을 믿는가?
이주광 : 애드거와 가브리엘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왔어요. 가브리엘이 어릴 땐 분명 이런 친구가 아니라 바른 아이었다고 생각해요.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지키고 저도 마리아를 지키려고 해요. 서로 마리아를 지키고 싶어 한 건데,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요. 마리아를 지키기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죠. 그 방향이 안 좋은 방향인지는 알지만, 잭을 믿든 안 믿든 마리아를 살릴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윤형렬 : 가브리엘이 잭이 될 수 있었던 건 애드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드거는 철저히 수행자의 삶을 살아요. 니콜라스에게 입양 됐을 때도 애드거는 음지에서 필요한 일을 수행하면서 살아왔어요. 이후엔 잭의 일을 수행하게 돼요.

-클라이브와 에드거에게 있어 중요한 존재는 마리아이다.
윤형렬 : 이 모든 사건은 마리아를 지키기 위해 벌어진 일입니다. 극 안에서 가브리엘은 굉장히 영리한 아이로 그려져요. 눈치 본다고 하죠. ‘어디에 서 있어야 안 맞을 수 있을까? 안 혼날 수 있을까?’ 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촉각이 곤두서 있는 사람이죠. 그렇게 두뇌가 돌아가기 때문에 애드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애드거를 이용하게 돼요. 애드거에겐 마리아밖에 없다는 약점을 잡고 살인을 계획하게 돼요. 연습할 때도 연출은 가브리엘은 ‘소신 있게 미친 놈’이란 말을 했어요.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타 죽는 걸 보고 이 외에도 온갖 정서적으로 안 좋은 걸 다 겪고 난 가브리엘은 도망갈 곳이 없게 된 상황에서 뭐라도 믿게 돼요. 이 모든 걸 타파할 수 있는 건 예수의 다섯 가지 계명이라 여기고, 그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겠다’란 마음을 먹게 돼요. 그 계획 안에 애드거가 수행원으로 있게 되죠.

이주광 : 애드거는 마리아를 지키지 위해서 잭의 살인 계획에 투입 돼요. 잭이 ‘네가 마리아를 살리기 위해서는 함께 하자, 내가 마리아랑 행복하게 해줄테니 내 일을 도와달라’고 했겠죠. 저는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할 수 밖에 없는... 억지로 악해질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돼요. 점점 마리아가 천사, 성녀가 되기 위해선 전 악인이 되어가는거죠. 마지막에 애드거는 마리아에게 ‘나의 하느님은 너다’라고 말해요. 애드거는 자신의 하느님인 마리아를 위해 사는 존재라고 볼 수 있어요. 어찌보면 잘못된 신념과 신앙이 만든 인물이죠.



■ “잭은 자기가 믿고 있는 기준에서 심판을 하는 소시오패스”

-살인 장면에서 잭의 여러 가지 디테일이 섬뜩하다. 어떤 식으로 인물의 특성을 구축해 간 건가?
윤형렬 : 잭을 사이코패스로 보기도 하는데 소시오패스에 가까운거죠. 사이코패스의 정의가 뭔지 아세요? 단순히 사이코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감정을 교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말해요. 그런 말도 들었어요. 사이코패스는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 차이점을 구별 하지 못한대요. 다 똑같은 얼굴로 보이니까요. 감정 교감을 못한다는 거죠. 상대의 ‘살려주세요’란 말도 슬프게 느껴지지 않아요. 동정이 없으니까. 살인에 대한 죄책감도 못 느끼겠죠. 사이코패스는 아무나 죽일 수 있어요. 반면에 소시오패스는 아무나 죽이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걸 보고 놀랐어요.

이주광 : 소시오패스는 어떤 의미 있는 목적을 위해선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위해서 누군가 없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살인을 실행하면서는 죄책감 보다는 ‘당연한 일을 했어’라고 여기구요.

윤형렬 : 노우성 연출님은 섹스에 비유해서 설명해준 적이 있어요. 가브리엘은 지금 이 순간 만족스런 섹스를 끝낸 뒤의 상태라고요. 또 다른 예로는 진수성찬을 먹고 난 뒤 기분이다고 했어요. 이렇게 설명하면 연출님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나요? 그런데 저는 그 설명이 와 닿았어요. 그런 거라면 이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가브리엘은 여자만 죽여요. 어릴 때부터 워낙 여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강해요. 자기가 믿고 있는 기준에서 심판을 하는 거죠.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되면서 지배했다는 정신적 쾌락을 느끼는 걸로 인물을 구축했어요.

이주광 : 제가 생각했을 때, 가브리엘에게 제일 궁금했던 건 첫 살인이에요. 항상 처음이 힘든거잖아요. 처음 누구를 죽였을 때 그 때가 가장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요. 두 번째는 더 쉬워지고, 세 번째, 네 번째 살인이 이어지면서 거기에 명분이 생기게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의도적으로 죽인거든, 갑작스러운 살인이든, 순간적인 감정을 이기지 못한 살인이었든 간에 처음엔 괴로워하겠지만, 다음 살인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신을 위해서든, 의를 위해서든 하겠다. 세상에 보여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윤형렬 : 첫 살인은 마리아 때문에 한 거고 우발적으로 죽였을 거라 생각해요. 첫 살인이 있고 난 뒤 정서적으로 힘들었을텐데 그걸 감당하지 못해 의미를 부여한 살인을 하게 된 거로 봤어요. 형 말대로 처음이 어렵지, 한 대 때리면 두 대 때리고 싶고, 두 대 대리면 나중엔 무자비하게 상대를 밟고 있는 자신을 보게 돼요. 물리적인 행위의 반복으로 인해 카타르시를 느끼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이주광 : 쾌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지.

윤형렬 : 흔히 우리도 화가 날 때, 내 손이 아프지 않은 한 계속 뭔가를 치게 돼요. 물리적인 행위로 해소되는 게 있거든요. 가브리엘에게도 그게 있어요. 특히 올리비아를 죽이는 장면이 가브리엘로서 감정을 표출하고 해소할 수 있는 장면이거든요.

이주광 : 일반 주부들도 스트레스가 막 쌓이면 빨래를 두들기면서 빨며 스트레스를 풀어요. 잭의 살인은 좀 더 심해진 행동이긴 해요. 어떤 인터뷰를 봤는데, 심지어 학교 교사분들도 처음엔 아이들이 잘못 했으니 때렸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을 때리는 강도가 세지는 걸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단순한 체벌이 분풀이가 되고, 나도 모르는 쾌락 같은 게 생긴다는 말이죠. 손바닥만 때리던 게 엉덩이를 때린다거나, 이렇게 점점 사람을 치면서 쾌락처럼 오는 게 있었겠죠. 아마 그런 부분이 잭의 살인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물론 체벌과 살인의 의미는 분명 다르지만, 그 세부로 들어가면 비슷한 게 있어요. 상대를 한번 칼로 찌르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보면, 두 번 찔렀을 때도 보고 싶은 마음이요. 사람의 여러 가지 면 중에 못 된 면들이 이렇게 표출 되는 것 같아요.

윤형렬 : 누구나 그런 면이 있어요. 우리가 귀여운 아이를 보면 깨물어 주고 싶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런 본능이 내재해 있는데, 그걸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에 따라 범죄자가 되기도 하고 정상인이 되기도 하죠.

-살인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는 게 배우로서 분명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주광 : 무대에선 수위가 한정 돼 있고, 배우들의 상상력이 가미되어야 해요. 이 친구가 매번 다르게 느껴지고 물이 오르고 있구나란 그런 생각도 들지만 형렬이를 보며 걱정되는 점도 있어요. 올리비아 살인 장면이 길어지고 있거든요.

윤형렬 : 잭에게 죽는 역할로 나오는 올리비아 역 배우가 어느 날은 공연 시작 전, 땀을 흘리더군요. 언제부터인가 오빠가 너무 무섭다면서요. 초반보다 점점 변해가는 게 느껴지나봐요. 무대에 오르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더 몰입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껴요.



■ 세상이 낳은 괴물...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뷰티플 몬스터’ 애드거

윤형렬 배우의 분장 콜 타임이 임박해 먼저 자리를 뜬 뒤, 나머지 인터뷰는 이주광 배우 단독으로 진행됐다.

-애드거의 살인은 잭의 살인과는 다를 것 같다. 어떤 감정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나
이주광 : 애드거 역시도 첫 살인을 하면서 괴로워했을 것 같아요. 첫 장면에서 애드거가 굉장히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걸 보여줘요. 마리아한테도 ‘내가 무서워? 짐승같아? 역겨워? 이 피는 내 피가 아니고 그 사람 머리통이 깨져서 그런거다’고 말해요. 그런데 마리아는 날 안아줬고 그래서 유일하게 마리아를 믿게 돼요.

-애드거는 첫 살인 이후엔 어떤 감정으로 살인을 하게 되나
이주광 : 애드거는 자기가 죄를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는 친구입니다. 그래서 죄가 쌓인다는 건 알고 있기 때문에 되게 괴로운 거죠.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은 ‘애드거를 마리아가 가장 성스러운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 그려보자’였어요. 마리아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저는 살인을 저지르는 걸 도우면서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어요. 마리아와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 길은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죠. 자신은 ‘돌이킬 수 없는 악마, 사탄이 됐구나’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악마는 하늘의 신인 천사(마리아)랑 함께 손을 잡고 다닐 수 없어요. 애드거는 그걸 늘 괴로워해요. 하지만 악마가 있음에 천사가 있는 거고 신이 있는 거라 봐요. 결국 마리아가 행복하게 될 수 있다면 난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 생각하는거죠. 마음속으론 늘 괴로워하죠. 애드거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악한 사람이 될지언정, 내가 사랑하는 마리아가 가장 깨끗한 사람,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남을 수 있다면 목숨 바쳐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전 그렇게 분석을 하니까 애드거를 연기하기에 더 괜찮아졌어요.

-<셜록홈즈>에서 애드거가 비주얼을 담당한다는 말이 나왔다. 농담도 섞여있긴 했지만, 확실히 관객의 시선을 잡아 끄는 건 애드거란 인물이다.
이주광 : 그 말은 농담이었어요. 형렬이가 잘 생겨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어요. 다만 에드거가 대본 전체적으로 볼 때, 짧게짧게 토막으로 나와요. 전체적인 분량으로만 따지면 무대에 나와 있는 시간이 20분도 안 돼요. 전체 러닝 160분 동안 그 정도 밖에 안 나오는데 존재감이 있는 인물입니다. 제가 이렇게 짧게 나온다고 하면, ‘아닌데 되게 오래 나왔다’고 말 하는 분도 있어요. 제가 없어도 마치 있는 듯한 기분을 느껴 인물적으로 존재감이 강하다고 느낀거죠. 나왔어도 기억이 안 나는 역이 있는데, 강렬하게 잠깐만 나와도 용의자로 생각할 수 있는 역이라 그 점에서 비주얼 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을 쓴 것 같기도 해요.

짦은 시간이지만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고민을 한 점도 있어요. 대본이 애드거가 보일 수 있게 써져 있고, 그 텍스트 안에서 제가 가능 한 상상을 덧붙여서 하다보면 존재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관객들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또 작품 안에서 유일하게 멜로를 하고 있는 역할이라 외형적으로 마리아와 어울려야 해서 다이어트를 많이 했어요. 애드거의 스타일적인 부분도 회의를 많이 하고 고민도 했어요. 에드거의 날 짐승 같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도록 신경을 썼어요.

-최근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들이 인기인데, <셜록홈즈>의 애드거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따지고 보면, 애드거의 인생도 괴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혹시 애드거도 괴물로 부를 수 있을까.
이주광 :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팬들이 ‘아름다운 짐승’ ‘뷰티플 몬스터’란 별명을 붙여주셨어요. 좋은 뜻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이주광은 “세상이 낳은 괴물 애드거이지만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괴물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블 캐스트면 하루 쉬면서 내 역할을 맡은 다른 배우의 공연도 보고 주변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할 텐데, 이번 작품은 원 캐스트로 무대에 서느라 매일 매일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어요. 몸은 힘든데 정신적으로는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어찌보면 작은 역일 수 있지만 애드거의 존재감을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아 정신적으로 행복해요. 다음에 어떤 작품을 맡을지 모르지만 사랑 받는 배역을 맡으면 좋을 것 같아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허영옥, 설앤컴퍼니, 레히프로덕션, 알앤디웍스]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