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은총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활한 박명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2007년은 <무한도전>의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해다. 강변북로 가요제, 응원단의 프로토타입이었던 하나마나 연세대 공연 등이 있었던 그 해에 유재석의 말처럼 무정형의 쇼, 국내최초로 리얼버라이어티가 완성됐다. 시청자들은 유니크한 새로운 시대의 예능에 바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하면 특징적인 대표문화가 없었던 당시 젊은 세대들은 기존 예능 버라이어티쇼들의 ‘쇼’를 벗어버리고 ‘가면’ 같은 기존 방송의 태도를 벗어난 코미디에 열광했다. 그리곤 어느새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응답하라 1994>의 서태지와 아이들나 농구처럼 먼 훗날 2000년대 후반에서 오늘날까지의 대중문화를 규정할 수 있는 한 시대의 단면을 닮은 대표 콘텐츠가 된 것이다. 그 강렬함은 그 어떤 아이돌보다 두툼하고 실천적인 팬층을 거느리게 했다. 그 시절에 대한 애착은 애증의 증상으로 드러난다. 매주 방송 직후 시청률과 재미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박명수는 그 시절의 주인공이었다. ‘멍충이’ ‘안녕갑쎄요’ ‘소년명수’ 등의 수많은 유행어와 숱한 별명을 남기며 2007년으로 상징되는 항상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을 이끈 엔진이었다. 박명수는 ‘X맨’에서 호통개그와 제8의 전성기라는 뻔뻔함으로 상종가를 올리다가 <무한도전>에서 스스로를 거성이라 칭하며 요즘말로 ‘근자감’으로 무장한 맥락을 비튼 루저 코미디를 국내 최초로 완성했다.

정서의 근간은 시기, 질투, 욕망과 주로 호통으로 발현되는 화다. 참견이 많고, 기능이 뛰어나지 않으며 급우들과 충돌이 많다고 명시된 그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는 정확했다. 공중파 방송에서 이런 반사회적 성향의 캐릭터를 가지고 범국민적인 인기를 얻은 개그맨은 없었다. 박명수의 각이 살아 있는 캐릭터는 캐릭터들이 모여 스토리를 만들고, 그런 스토리가 층층이 쌓여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리얼버라이어티에 모티프를 제공했다.



역사가 주는 교훈 중 한 가지는 영원한 주인공이란 없다는 것이다. 오르막 다음엔 내리막이 예외 없이 기다린다. 다른 방송의 차별화, 새로운 대안으로 출발했던 헝그리한 예능은 국가대표 예능이 됐다. 성공 다음의 성공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그들의 시대를 더 창대하게 끌고 나갔다. 정상의 자리에 걸맞은 더 큰 담론을 프로그램 안으로 가져왔다.

김태호 PD는 낄낄거리고 웃고 떠드는 캐릭터들을 의미 있고 멋있는 일을 하는 친구들로 격상시켰다. 이미 정서적 유대가 돈독해진 시청자들도 우리 시대의 대변자이자 예능을 넘어서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있어 함께하는 시대의 동반자로 받아들였다. 리얼한 코미디는 어떤 게 멋있는지 아는 오빠들의 자기애적 감동코드로 진화했다.

2007년에는 노원구의 한 백화점을 찾아 말도 안 되는 행사를 뛰던 이들은 이제 국가적 규모의 행사인 월드컵 출정식을 준비하고 있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박명수의 캐릭터다. 본인의 상황도 제8의 전성기를 외칠 때와 달라졌고, 조금 낯간지러울 수 있는 감동 코드는 박명수 캐릭터와 전면 위배됐다. 그는 점점 프로그램 내에서 영향력을 잃어갔다.



체력적인 문제도 대두되고 동기부여도 잘 되지 않아 보였다. 최근에는 하하의 눈치를 보고 길에게 ‘멘트에 돈 좀 들여야 겠다’ 는 말을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주 방송에서는 개인사정상 스토리라인을 그렇게 짠 것이겠지만 중간에 사라지기도 했다. 자신의 집에서 직접 의전차량을 몰고 오는 게 아니라 사막의 롤스로이스로 출근한 뒤 유 단장을 모시려고 꼼수를 쓴 박 단원을 호되게 꾸짖는 장면은 유재석이 만든 상황극이지만 박명수의 떨어진 의욕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박명수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그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도 딱히 본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지금도 유재석의 깨방정과 은총 아래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물꼬가 트이고 있다. 지난주 방송된 응원단 특집은 장기 프로젝트이자 국가 브랜드 차원의 프로젝트였다. <무도>가 지금껏 해왔던 감성, 감동 코드의 연장선상에 있는 큰 이야기의 서막이었다. 그런데 정작 웃음은 이야기와는 큰 상관 없는, 늘 큰소리치며 사람 불편하게 하던 박명수가 편의점 심부름 등 간부회의의 잡무를 도맡으며 방송에서 소외되는 데서 나왔다. 특히 주요 분량이었던 오디션보다 자리를 옮겨 멤버들끼리 수다를 떤 막판 9분가량의 자투리 시간에 빵 터졌다. 무협만화의 철학처럼 비우자 비로소 얻은 것이다.



그 수다를 지배한 인물이 아직 원터치로는 져본 적이 없다는 a.k.a ‘군산몽키스패너’ 박명수(45세)의 아버님이었다. 지난주 유재석이 SBS뉴스에 박명수 아버님이 등장했다며 이른바 객장사건을 언급한 이후, 군산몽키스패너라는 파일과 게시물이 해일처럼 인터넷 세상을 덮쳤다. 유재석은 분위기를 식히는 척하면서 개미투자자로 등장하셨다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고, 하하는 개미로 이행시를 부탁하는가 하면, 아버님 속마음이 어떠신지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형돈은 미국 레이블과 거래를 텄다는 박명수의 근황보고에 아버님과 상의된 거냐고 물었다. 이런 집중포화에 박명수는 마치 단말마와 같은 ‘뭐, 어?’라는 외마디 이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곤혹스러워하다가 네티즌들에게 ‘일들 안 해요?’라는 일갈을 내던지며 작은 행패를 부렸다.

이런 해프닝 속에서 45세의 박명수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다시 한 번 반짝이게 됐다. 아버님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2009년쯤부터 박명수가 언급한 군산몽키스패너의 전설을 조우한 반가움의 표현이었다. <무한도전>이라는 캐릭터쇼가 긴 역사를 이어오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호통을 쳐도 애잔하고 남에게 당해도 불쌍하지 않는 스쿠루지 같은 그 특유의 포지션이 다시 한 번 박명수의 캐릭터에 생기를 가져왔다.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깔아놓은 역사의 연속이라는 것을 박명수가 얼떨결에 날린 럭키펀치가 원터치로 맞아떨어졌다. 기회는 박명수에게 왔다. 시청률 논란, 불성실 논란을 잠재울 원투 펀치 콤비네이션이 들어갈 차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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