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언셀러’ 소통에 대한 강박이 부른 참사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 예능국이 준비한 파일럿 <밀리언셀러>는 먹을 게 없는 소문난 잔치였다. 박명수가 작곡가로 활약한다고 해서 이슈가 됐고, 매 회마다 새로운 곡들을 선보인다는 이른바 ‘작곡 콘셉트’가 <무한도전>의 ‘가요제’ 시리즈와 겹친다는 논란도 있었다. 베끼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KBS예능국의 오늘과 맞물리면서 억울한 면도 분명 있겠지만 어쨌든 화제가 됐다. 제작진이 밝힌 변론의 핵심은 ‘국민’이었다. <무한도전>은 연예인들이 팀을 맞춘 시즌제 이벤트라면, <밀리언셀러>는 국민들의 사연을 받아 곡을 만드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예능이란 것이다.

<밀리언셀러>는 ‘국민작사가’의 가사에 전문 작곡가들이 곡을 써서 ‘국민가수(파일럿에는 주현미가 참여했다)’가 부르면 또 ‘국민’들이 그 가운데서 한 곡을 ‘국민가요’로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다. 정재형, 박명수, 돈스파이크, B1A4의 멤버 진영이 작곡가로 참여했고, 예능의 분량을 담보하기 위해 장기하, 김준현, 은지원, 박수홍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작곡가들과 팀을 이룬다.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음원 수익 중 작사료는 사연의 주인공에게 돌아가니 국민을 굽어 살피고, 소통을 중시하는 콘셉트가 실천적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정작 제작진과 MC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국민’들은 이 프로그램을 외면하고 말았다.

<밀리언셀러>의 총체적 난국은 ‘국민’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된다. 국민이 참여해 국민들이 만드는 국민가요에 전혀 동의나 공감이 일어나지 않는 가장 일차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연을 받아 작곡한다는 콘셉트가 도전적이긴 하지만 국민에 천착하는 방송 태도는 고루했다. MC들은 한마디 할 때마다 ‘국민’이란 접두사가 붙은 단어를 언급한다. 국민가요, 국민가수, 국민작사가 등등 준비되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기보다 스스로를 국민적인 위치에 놓고 시작한다.



국민이란 단어의 남용이라든지 사회문화사적 맥락의 논란과 국가주의적 뉘앙스를 차치하더라도 ‘국민’은 일단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다. 국민적이란 수식어는 타인의 인정이 쌓여야 의미를 갖는다. 시청자와 방송이 함께 호흡하면서 공감대를 만드는 요즘 예능과 달리 시청자들에게 이것이 국민가요고 국민작사가고 국민가수니까 느껴보라고 통보한다. 리메이크는 차라리 원전의 아우라라도 있는데 <밀리언셀러>는 완벽한 무에서 시작하니 정서적 접근이 더 어렵다. 또한 <밀리언셀러>가 국민 사연을 소비하는 방식은 예능화란 당의정으로 감싼 감동의 전달이다. 낮은 곳을 찾아가 방송이 마법처럼 도와준다는 스토리다. 리얼 버라이어티 이전 시대의 정서와 방송 문법을 기단 삼아 국민과의 소통을 위에 얹은 형국이라 괴리감이 발생한다.

게다가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국민이고, 국민작곡가, 국민가수가 함께한다고 설정하고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가 모든 것에게 칭찬하고 덕담하기 바쁘다. 모든 게 국민적인 것이니까 나쁠 수가 없는 거다. 여기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문제가 발생한다. 내용은 <여성시대>에 등장할 법한 사연인데, 그 틀은 기존의 음악예능과 같은 순위제다. 순위 경쟁이란 서바이벌의 냉혹함과 국민 사연의 공감대라는 따뜻함은 물과 기름과 같다. 노래를 통해 국민들을 어루만져주겠다면서 결국 <안녕하세요>처럼 사연간의 대결로 몰고 간다. 당연히 어려움이 따른다. 성격이 안 맞는 틀에 담으려니 직관적이지 않는 선정 절차가 만들어지고 왜 이들이 순위 경쟁을 벌여야 하는지도 와 닿지 않는다. 기대했던 긴장감은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자 그 뒤도 줄줄이 문제다. 자칫 감동 소비 때문에 처질 분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구색이 갖췄는데 사실 다른 프로그램에서 봤던 장면들의 조합이었다. <나는 가수다>처럼 국민가수의 노래가 있고, 감동하는 관객이 있다. <불후의 명곡>처럼 스튜디오에서 MC들끼리 주고받는 토크가 있다. 그리고 <유희열의 스케치북>과 같은 음악토크쇼처럼 국민 사연 낭독을 하고, 서바이벌 쇼의 그것처럼 사연을 보낸 이들의 삶을 스케치한 영상을 보여준다. <나는 가수다>와 <무한도전>처럼 작곡하는 과정에서의 회의와 작업, 노래 연습 등의 장면 스케치와 인터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반합의 변증법은 없었고 오히려 도전 과제였던 노래를 잘 들려주는 데는 미흡했다. 기존 쇼의 틀은 가져왔지만 핵심을 놓고 왔기 때문이다.

<불후의 명곡>이나 <나는 가수다>는 기존 가수들이 여럿 출연해 익숙한 노래를 편곡해 프로 가수들끼리 경쟁을 펼친다. 시청자들은 가수가 다른 가수의 노래를 얼마나 자기화해서 들려줄지에 대한 기대를 증폭시키는 장치가 경쟁이다. 이게 <나는 가수다>가 가져온 인식의 혁명이었다. 작곡은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무도>의 가요제처럼 긴 호흡으로 관심도를 끌어올릴 수도 없이 노래로만 승부를 보는 것은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신곡을 단 한 명의 가수가 부르기 때문에 무대는 더욱 단조로워졌다.

이번 개편을 맞아 KBS 예능국은 타사보다 훨씬 많은 파일럿을 마련했다. 그 기조에는 시청자와의 소통이 깔려 있는 듯하다. 시청자(KBS는 주로 국민이라고 부른다)와 방송의 접점을 방송 내외적으로 많이 마련한 프로그램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관찰형 예능의 시대에 접어든 이때 일방향적이고, 일차원적인 접근이라 아쉽다. 예능에서 시청자들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것을 이해는 했지만 그 정서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대변인들>의 통닭 ‘먹방’이나 <밀리언셀러>가 보여준 ‘국민 사연’을 보면 소통에 대한 강박이 너무 쉬운 방식을 취하게 만든 것 같다. 쉽게 말해 시청자들이 바라는 예능과의 소통이란 방송국이 정해준 정서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고 친구 같은 자세를 낮춘 프로그램을 원하는 것이다. <밀리언셀러>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노래를 내세웠지만 애국가 시청률에 그친 참사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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