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공주’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진 못하겠지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밀양집단성폭행 일어난 것이 2004년. 그러니까 10년 전 일이다. 이 사건을 맡은 밀양의 어떤 경찰관은 “밀양의 물을 다 흐려놓았다"다며 피해자들에게 폭언을 했다지만, 진짜로 밀양이라는 지명을 더럽힌 것이 성폭행, 구타, 공갈협박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무사하게 빠져나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 대해 협박을 일삼았던 가해자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 수사과정 중 자신의 정신수준을 노출시킨 그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있을까. 밀양은 이제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비슷비슷한 모습으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을 대표하는 이름이고, 이는 그렇게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얼룩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미성년자 집단 성폭행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한국에서 나왔다. 이들 중 당시 밀양에서 벌어진 사건을 직접 다룬 작품은 없었고 어떤 작품은 심지어 별개의 원작이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밀양을 떠올리고 만드는 사람들 역시 그를 고려하고 작업을 했거나 관객들이 그 사건을 떠올릴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다. 밀양 사건은 이런 종류의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과도 같다.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아마 가해자들은 이런 영화들이 나왔다는 것도 모를 것이고 나왔다는 걸 안다고 해도, 아니, 심지어 극장에서 보았다고 해도 대부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영화들의 존재와 목소리가 가장 고통을 주는 것은 여전히 피해자들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주제를 침묵 속으로 돌려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린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여러 가지 시도가 있다. <돈 크라이 마미>에서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한다. 주인공을 피해자의 어머니로 놓고 복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시도하는 것이다. 일반 대중이 상상을 통해 가장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택하고 여기에 복수라는 가장 원초적인 행동을 하게 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가시꽃>에서는 주인공을 가해자 중 한 명으로 택하고 10년 뒤에 벌어지는 속죄의 과정을 탐구한다. <시>에서는 가해자 중 한 명의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놓고 스스로의 손으로 손자를 단죄하게 한다.



나는 이 영화들을 성취도의 역순으로 나열했는데, 이 '성취도'에는 단죄의 카타르시스도 포함된다. 가장 비폭력적인 아트하우스 영화인 <시>가 가장 만족스러운 단죄를 가한다는 것은 이 상황에서 심지어 단순한 단죄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사회적 공분을 따르는 것도 정답이 아닌 것이다.

이들 중 피해자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가 없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대부분 동기 부여용 도구로 존재하며 우리가 이들을 통해 볼 수 있는 건 고통과 고통의 후유증 뿐이다. 비중이 어느 정도 커지면 이들은 미스터리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만약 이런 영화들이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해도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의심이 나면 성폭행 피해자를 그리는 한국 영화의 오랜 전통을 다시 한 번 돌이켜보면 되겠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은 <그후로도 오랫동안>이다. (그렇다고 <가시꽃>의 장미를 가볍게 다루는 것은 잘못이겠지만 이 캐릭터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가 시도한 가장 크고 의미있는 모험은 바로 그 피해자를 살아 숨쉬는 3차원적 인물로 그리려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영화가 주인공 한공주가 겪은 고통을 축소하거나 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그 이전에도 한공주라는 아이가 있었고 그 끔찍한 일을 겪은 뒤에도 그 아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이는 폭력의 희생자지만 그에 의해 정의되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이미 오래 전에 습관화되어 의미까지 잃어버리기 시작한 기계적인 분노에 빠지는 대신 한공주라는 캐릭터에 몰입하는 순간 이 영화는 이전 영화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선을 넘는다. 이 영화의 열린 결말 역시 단순히 관객의 상상력에 맡기는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인 응원을 유도한다.

<한공주>가 세상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영화를 제대로 본 관객들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있다. 이 영화에는 밀양 사건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분노 유도의 고함 속에 빠져 있는 것, 즉 편견과 피상적 편견의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던 온전한 피해자의 초상이 있다. 우린 실제 사건의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 빈 자리를 채워주며 반복되는 분노를 다음 단계로 옮길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직까지 예술만의 역할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한공주><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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