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왜 갤럭시에서 스마트폰밖에 떠올리지 못하나

[엔터미디어=정덕현] 악동뮤지션의 신곡 ‘갤럭시(galaxy)’가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제목과 가사에서 특정상표와 동일한 ‘갤럭시’가 반복되어 스마트폰 광고로 오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노래를 들어보면 ‘Tap the galaxy oh-’라는 가사는 듣기에 따라서는 그런 연상 작용을 만들기도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갤럭시’라는 가사를 스마트폰으로 일단 떠올린 후 들었을 때나 그런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갤럭시’는 그저 일반명사일 뿐이다. 특정상표가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일반명사의 의미가 사라지고 대신 특정상표의 기표만 남는다면 그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일 것이다. 꽤 오랜 역사를 갖기 마련인 언어가 상표에 의해 대치된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있어도 ‘현대’라는 상표를 우리는 일반명사로 사용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또 ‘소나타’라는 차 브랜드가 있어도 그것을 클래식에서 쓰는 소나타와 구분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갤럭시’도 마찬가지다. ‘갤럭시’를 은하로 사용하는 것에 우리는 더 익숙하다. 물론 갤럭시라는 말보다 우리는 은하나 우주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아티스트라면 쓰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권리이자 의무다.

하지만 KBS의 방송 판정을 하시는 분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혹 ‘갤럭시’라는 단어를 듣고 먼저 삼성 스마트폰을 떠올린다는 것인가. 그것은 삼성 스마트폰의 위력이 그토록 강하다는 걸 얘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저 은하보다는 눈앞에 있는 스마트폰이 우선 보인다는 얘기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그건 참으로 비극적인 일일 게다. 별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떠올리는 세태라니.

물론 ‘오해할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갤럭시’의 본 뜻을 그 분들이 몰랐을 리 없고 그토록 메마른 분들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오해할 우려’라는 말은 대중들이 그럴 거라는 지레 짐작도 들어 있다. 그런데 과연 대중들은 이런 단어가 노래에 들어가 있다고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오해할까. 이런 이야기는 대중들을 너무 간단히 일반화 하는 얘기 아닌가.

최근 들어 KBS의 방송 판정의 잣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최근 <슈퍼스타K> 출신 가수인 에디킴의 데뷔 앨범 중 ‘슬로우 댄스’라는 곡이 KBS로부터 방송부적격 판정을 받은 것은 노랫말 중에 프랑스산 보드카 브랜드 ‘그레이 구스(gray goose)’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보드카 브랜드는 대중들에게 익숙하지도 않고 또 곡에서 이를 홍보하려는 의도는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노래의 분위기와 라임을 맞추기 위해 사용됐을 뿐이다.

이러한 PPL을 우려하는 방송 부적격 판정에 대해 지나친 이중 잣대라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즉 KBS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너무 자주 등장하는 간접광고 상품 노출은 엄격한 잣대가 무색할 정도로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나온 자료에 따르면 ‘KBS는 간접광고가 허용된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계약실적이 7건에서 101건으로 14.4배, 계약금액은 3억1천만 원에서 72억4천만 원으로 23.3배 증가했다’고 한다. 지상파 3사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이밖에도 일본어 표현을 사용했다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낸 크레용팝의 ‘어이’의 경우도 논란의 불씨가 남아있다. 가사 중 들어가는 ‘삐카뻔적’이라는 단어는 일본어로 ‘반짝’을 뜻하는 ‘삐카’와 우리식의 ‘번쩍’이 붙여져 만들어진 조어다. 사실 인터넷에서 이 단어를 치면 언론이고 어디고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이 단어가 이미 우리식으로 뉘앙스를 확실히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을 ‘번쩍번쩍’으로 고치면 그 맛을 내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언어란 것이 이런 속성을 가진다. 전혀 다른 이종이나 이국의 언어도 하나로 겹쳐지면서 새로운 쓰임새가 생긴다. 그것이 계속 사용된다면 그것은 언어로 남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사라져버릴 테고. 항간에는 크레용팝의 ‘삐카뻔적’이 문제가 된다면 ‘피카추’는 ‘번쩍추’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웃지못할 농담도 나온다.

물론 크레용팝의 경우는 대중정서가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줄지 알 수 없다. 그건 대단히 민감하게도 대중정서가 유독 좋지 않은 일본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를 차치하고라도 악동뮤지션의 ‘갤럭시’에 대한 방송 부적합 판정은 대중들로서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진짜 KBS 심의실은 대중들이 ‘갤럭시’라는 단어에 스마트폰만 떠올릴 거라 믿는 걸까. 아니 거꾸로 심의실의 이런 발표와 논란은 이제 갤럭시라는 단어에 스마트폰 이미지를 덧붙여준 꼴이 되지 않았는가.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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