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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음악과 무용수의 몸이 일체가 될 때”
기사입력 :[ 2014-04-22 18:32 ]


안무가 나초 두아토가 발레로 그려낸 음악가 ‘바흐’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유니버설발레단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오는 25~27일 LG아트센터에서 스페인 안무가 나초 두아토(Nacho Duato)의 전막 모던 발레 '멀티플리시티'(Multiplicity)를 무대에 올린다.

1999년 스페인 국립무용단에 의해 초연 된 이후, 2000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Prix Benois de la Danse) 최고 안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프롤로그와 열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1부는 바흐로부터 받은 영감을 다채로운 춤으로 형상화했다. 2부는 바흐의 말년과 죽음에 초점을 맞춰 대가의 삶을 깊이 있고 비장하게 이끌어간다.

지난 2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은 “2004년 <멀티플리시티>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너무 사랑했던 작품이다”며 “무용수라면 꼭 하고 싶고, 관객이라면 꼭 보고 싶은 전막발레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세계적인 수준의 발레단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이 작품을 공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작품 선택의 배경을 밝혔다.

문 단장은 “천재적인 안무가 나초 두아토를 모실 수 있게 돼 영광이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나초를 가까이서 보면서 정말 겸손하고 대단한 예술가란 생각이 들었다. ‘더러운 손으로 바흐의 음악을 건드린다’는 표현에 이어 ‘바흐가 화를 내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연출자들이 가까이에서 나초의 안무 현장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을 하고 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전했다. “음악을 (움직임으로)시각화하고 음악이 보이게 하는 이 작품을 보면, 바흐의 음악을 이전과 똑같이 들을 수 없을 정도다. 바흐의 음악은 고요하다 생각했는데, 격정적 안무를 집어넣은 이 분의 상상력에 매번 놀라고 있다”

아울러 ‘나초는 바흐의 음악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 미완성의 ‘푸가의 기법’ 마지막 곡을 그대로 사용했음‘을 전했다. “2막은 두 눈의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바흐의 말년을 그리고 있다. 어떤 안무가들은 미완성 곡을 완성해서 안무 음악으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나초는 음이 끊기는 상태 그대로 마지막 곡을 사용했다.”

나초 안무의 특징으론 ‘모든 동작이 몸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꼽았다. “클래식 발레는 손끝과 발끝에서 시작한다. 반면 나초의 모든 동작은 몸에서 시작한다. 무너지는 동작도, 앉는 동작 모두 내추럴하게 하길 원했다. 클래식 발레는 정확하게 잡아주는 동작이 기본이라면, 나초의 발레는 정확하게 끝 부분을 풀어주는 동작을 중요시한다. 오늘도 무용수들에게 ‘나초의 안무를 하며 바흐 음악을 좇아가선 안 된다. 음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자간담회에 앞서 열린 연습실 공개 현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 단원들에게 열정적으로 안무를 지도하는 모습을 보여 준 나초 두아토는 문단장과 함께 간담회에 참석해 <멀티플리시티>가 탄생한 배경, 자신의 안무 철학 등을 들려줬다.

■ 인간 바흐 그리고 예술가 바흐를 무대 위에 그려내다

-나초 두아토의 간단한 인사말을 듣고 싶다.
“이 작품을 연출 하는 것은 물론 공연권을 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4단체만 하고 있다. 유니버설 발레단이 다섯 번째로 공연권을 갖고, 무용수들이 만족스럽게 잘하고 있어 행복하다. 2003년과 2005년 이미 '나 플로레스타'와 '두엔데'를 공연한 바 있는 유니버설발레단과 계속적으로 콜라보레이션 할 수 있어 좋다. 한번 연출하고 끝나는 관계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기쁘다.”

-1999년 스페인 국립무용단에서 초연한 이래 독일 뮌헨 바바리안 국립발레단, 노르웨이 국립발레단, 러시아 미하일롭스키 발레단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국립발레단이 공연권을 갖게 됐다. 유니버설발레단에게 공연권을 준 이유를 구체적으로 물어본다면? 유니버설발레단만의 장점이 있었나?
“여러 발레단들과 작품을 하게 되면, 그들 문화에 따라 다른 퀄리티나 다른 특성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춤이라는 것은 그림이나 영화를 복사하는 것과 달리 살아있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있는 예술을 좋아해서 항상 뭔가를 재 창조하는 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한다. 모든 컴퍼니와의 작업이 다 다른 작업이었고 다 다른 호흡을 가지고 했다. 유니버설발레단 무용수는 훌륭하고 움직임이 좋고, 집중력이 높다. 아티스트로서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으면서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멀티플리시티>란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뭔지 이야기 해 달라.
“<멀티플리시티>는 1999년 독일 바이마르시의 의뢰를 받아 만든 작품이다. 작품을 준비하며, 바흐 가 바이마르에서 10년을 살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바흐에 대한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원래는 20분짜리 작품을 하기로 했는데, 5분을 늘리고, 이어 30분을 늘려 나가다 결국 새로운 막을 만들어 2막짜리 전막 발레 공연이 됐다.

1부가 바흐가 살던 바로크 시대의 음악, 미술, 건축, 무용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과 인간 바흐의 삶을 그리고 있어 유머 와 재치가 있다. 뒷부분은 예술가로서, 창작자로서의 고뇌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예술가로서의 바흐를 표현하는 막이다. 바흐는 삶이 어려워지면서, 부인과는 사별하게 되고, 20명의 자녀들 중 10명이 영아 때 죽은 슬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제목인 ‘멀티플리시티, 폼스 오브 사일런스 앤드 엠프트니스’ (Multiplicity, Forms of Silence and Emptiness)처럼 1부는 다양성에 대해, 2부는 ‘침묵과 공허의 형상’을 보여준다. 2부는 음악도 바흐의 음악 중 에서 무거운 걸로 선택 했다.”

-<멀티플리시티>는 바흐가 작곡한 23개의 곡으로 만들었다. 바흐 음악에서 어떤 영감을 받았고, 곡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나?
“우선 처음엔 너무 위대하고 아름다운 바흐 음악으로 안무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내 더러운 손으로 바흐의 음악을 건드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23곡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이 작품을 만들 때, 처음과 끝 부분에 제가 무용수로서 등장 해 춤을 추며 바흐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의 음악을 써도 되겠습니까? 저한테 화를 내지 않으시겠죠.’ 란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한 거다. 굉장히 어렵고 조심스럽게 선택 한 바흐 음악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작업했다."



■ “안무가는 이미 만들어진 동작을 끄집어내는 사람”

-네덜란드 댄스시어터(NDT)의 이어리 킬리안에 의해 전격 발탁되어 이리 킬리안과 함께 NDT의 주요 레퍼토리에 참여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3년 첫 안무작인 ‘닫혀진 정원(Jardi Tancat)’이 쾰른 국제안무가 대회에서 1등상을 받았고, 이후 ‘킬리안의 후계자’로 세계 무용계의 주목을 받는다. 이리 킬리안 영향이 <멀티플리시티>에도 있는건가?
“킬리안과 9년 동안 일했지만, (작품적으로)이혼 한지 24년이 됐다. 제 초기 작품에선 그런 느낌을 받았을지 몰라도, 전체적인 작품 흐름 과 캐릭터 색깔을 보면 킬리안과는 독립적인 세계를 가지고 있다. 평생 킬리안의 팬텀이 쫓아다닐거라는 걸 안다. 킬리안을 좋아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싫지는 않지만, 이제는 킬리안과 헤어져 독창적인 색채를 보이고 있다 생각한다. <멀티플리시티>는 내 인생의 후반부에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이리 킬리안의 색채와는 다르다고 본다.”

-<멀티플리시티>는 현대 무용에 가깝나?
“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 나 <호두까기인형> 같이 클래식 발레를 굉장히 사랑하는 안무가이다. <멀티플리시티>는 클래식 발레의 테크닉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현대 무용을 하시는 분은 이 작품을 할 수 없다. 턴 인, 턴 아웃 같은 발레 테크닉을 기초로 하는 작품이자 발레 테크닉이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다.”

-안무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나? 본인만의 안무 철학이 있다면?
“음악을 들으면서 분위기나 감을 잡는다. 난 안무가는 동작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동작을 끄집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움직임 자체가 음악을 보여줄 때, 음악의 에너지가 무용수의 몸과 일체가 됐을 때 안무 작업이 확장되고 완성된다. 연습실 가기 전에 미리 다 알고 들어가지 않고, 연습실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마치 눈먼 장님처럼 더듬 더듬 가다보면, 무용수들과 또 함께 일하는 디자이너들과 일하며 자기 집(안무)이 지어지고, 집을 찾아갈 수 있게 된다. 뭔가를 찾아내야 해서 항상 두렵고, 아마추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작업이 좋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이런 불확실한 부분들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오프닝 장면에서 바흐의 지휘로 연주되는 18명 무용수들의 가볍고 경쾌한 움직임과 바흐와 여성 무용수의 파드되로 묘사된 프렐류드(BWV 1007)는 음악 속에서 악기와 하나 됨을 표현하는 듯 하다.
“첼로 솔로 장면은 바흐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특별하다 생각했다. 잘 알려진 곡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운전 하던 중 ‘바흐가 직접 첼로를 연주하는 걸’로 가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음악을 생각하며 분위기를 잡으며, 무용수들과 안무 작업들을 풀어냈다.”



■ “좋은 안무가가 되기 위해선 스스로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알라”

-10년 전 한국을 방문 해 ‘뼛속까지 느껴져야 훌륭한 무용수가 된다’ 에 이어 ‘무용수는 태어나는 존재이다고 말 했다. 안무가도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무용가나 안무가,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인생 자체가 나를 이렇게 끌고 왔다. 뭔가 소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 그래서 그림도 그려 보고, 뮤지컬 작업도 해봤다. 항상 긴장하고 예민한 사람인지라 8시간 무용 연습을 하고 나면 피곤해져서 좋았다. 무용을 하고나면 피곤한 상태에서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래서 춤을 추게 되었다. 늘 보이지 않는 내면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 마음이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다.”

-좋은 안무가가 되려면 어떤 걸 배워야 하나?
“킬리안은 물론 어떤 안무가와도 ‘안무’에 대해 같이 이야기한 나눈 건 없다. 그 누구도 좋은 안무가가 되는 조언을 해주지 않았고 나도 묻지도 않았다. 뭘 배워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안무가가 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게 뭔가?’ 라고 물어본다면, 안무가가 되기 위해 뭘 배우기 보다는 내가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알고, 그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9형제 집안에서 자랐다. 형제들은 의사나 변호사의 길을 갔고, 난 무용수의 길을 걸었다. 집안에선 내가 춤을 추는 걸 그리 달갑게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 말하고 싶은 걸 춤으로 표현했다. 그게 안무가가 되기 위해 걸어왔던 길이다.”

-이미 계약 된 예술감독 일이 끝나고, 언젠가 한국에서 안무가로 활동할 생각은 없나?
“2010년부터 3년 동안 러시아 미하일롭스키 극장 예술감독으로 활동했고, 올해 7월부터는 독일 베를린슈타츠오퍼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5년간 재직 할 계획이다. 그 이후엔 은퇴를 해서 스페인의 고요한 마을, 조그만 오렌지 나무 밑에서 쉴까 생각한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유니버설발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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