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세월호 참사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우리는 그동안 이야기에 취해 있었다. 드라마는 장르적 도전에 성공했고, 어쨌든 연애라는 도식을 버리면서 훨씬 정교해졌다. 관찰형 예능과 서바이벌 쇼는 우리 주변의 삶을, 바라보는 입장이 아닌 공감의 자세로 TV를 즐기게 했다. TV 시청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의견 개진과 수다의 영역을 포함하는 행위로 넓어졌고 그러다보니 일상이 되었다. TV 또한 우리의 이야기를 카메라 안으로 데려갔다. 현실과 TV는 뫼비우스 띠처럼 얽히면서 웃고 떠들고 위로를 받는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럴수록 극장은 판타지의 공간이 되어갔다. DC코믹스와 마블의 영웅들은 존재론적인 고뇌에 빠지지만 어김없이 정의와 세상을 구원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도저히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이 모든 건 가상 세계의 영역으로 다시 떠밀려 내려갔다. 세월호 침몰은 미국인들에게 9.11과 같은 사회적 트라우마를 우리 사회에 깊게 새기고 있다. 이 재난은 그 자체로도 비통한 비극일 뿐만 아니라 비극의 하부 구조에서 우리 사회가 감춰둔 경악할 만한 진짜 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나게 됐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어른, 국가 시스템의 부재, 제대로 된 매뉴얼과 의식이 없는 사회의식, 밥그릇을 위한 관례, 사고 당시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관계 당국의 무능, 정부 고위관계자들의 부적절한 처사와 역시나 무능, 정의가 전혀 구현되지 않았던 역사, 이단 기독교 문제, 공감능력을 상실한 사이코패스들의 집단 출현, 자기 입으로 유가족이 언론을 불신하고 있다고 말하는 뻔뻔한 언론, 책임 대신 이 모든 죄를 벌하겠다는 파라오의 위치에 선 대통령까지 국민들은 이 사건에서 염세적 절망을 보고 말았다.

<정도전>을 보면서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을 상쇄하고 <추적자><신의 선물><골든타임> 등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정의의 부재, 현실적 영웅에 대한 기대를 품었던 마음이 다시 한 번 좌절된 것이다. 이제 더 정교하고 불합리한 세상과 맞서는 영웅이 필요해졌다. 다 때려 부수는 영웅이 아니라 현실 상황을 타개할 가능성을 보여줄 영웅 말이다.

2011년 일본 원전 사태 때 일본인들은 극단적으로 감정을 절제했다. 책임자들은 목숨을 걸고 원전에 뛰어들었다. 그 이후 엉망이라고 알고 있지만 대체로 억누르고 참는 듯했다. 그런데 2013년 일본에서 시청률 40%가 넘는 드라마가 나타났다. 우리나라보다 다매체, 다채널을 가진 일본에서 <홍백가합전>이나 월드컵을 제외하면 나타나기 힘든 시청률이 <한자와 나오키>라는 드라마에 쏠렸다. 초호화 캐스팅이긴 했지만 현상이라 일컬어질 만한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오른 이유를 제작진도 좀처럼 찾지 못하는 이 드라마에는 분명 종전과 다른 일본의 얼굴이 나타난다.



조직의 불합리를 떠안은 은행원의 고군분투기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라마는 ‘당한 만큼 갚아준다’라는 명대사로 요약할 수 있다. 불만을 참지 않고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조직과 시스템, 상사 등 자신을 짓누르는 부조리한 거악에 치열하게 맞서서 되갚아 나가는 주인공에 일본인들은 시청률로 알 수 있듯 광범위하게 감정이입을 했다. 너무나도 큰일을 겪었기 때문일까. 인내와 절제가 미덕이던 기존 풍토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고 해석할 여지가 다분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9.11을 맞은 지 십 여 년이 지난 미국에서는 한방에 해결을 보는 슈퍼 히어로들에 응원을 보내는 한편에서 정의, 사람, 삶에 대한 끝없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빅뱅이론>의 천재 물리학자 쉘든의 대사처럼 미국은 지금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TV전성시대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미국 방송 콘테츠들은 매번 신기록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그 주인공 겪인 <워킹데드> <하우스 오브 카드> <왕좌의 게임> <브레이킹 배드> <홈랜드> <뉴스룸> 등은 각자 다른 장르물이지만 영웅담이나 주인공의 서사가 아닌 사람의 본성을 탐구하는 이야기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방송 역사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우리나라에도 현재 미국과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홀드백 편성 중인 <왕좌의 게임>은 진실과 정의, 선과 악의 대립, 주인공의 서사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던패밀리>의 사춘기 소년 루크는 이 드라마를 통해 역사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은 허구의 세계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왕국의 통치권을 차지하기 위해 얽히고설켜 싸우는 7개 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조지 R.R.마틴의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를 원작으로 한 판타지 중세물이다.



이 드라마의 특징은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의 편에서도 서사를 써내려가지 않는다. 자신들을 도와준 선량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어가고, 손주와 아들의 죽음에도 자신의 안위를 도모한다. 각자의 입장이 있을 뿐 정의나 진실이 밝혀지는 것도 없고 존재하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특히나 선의는 지켜지는 법이 없고, 백성을 위한 왕은 살아남는 꼴이 없다. 기대를 품지 못하게 하는 이 지독한 비선형의 서사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오히려 가까워 보인다.

국가적 재난을 겪은 우리의 이야기도 이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즐기는 이야기가 현실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때마다 현실은 다시 멀리 도망가고 믿고 있던 이야기는 늘 좌절된다. 막장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봐왔던 막장 이야기는 말끔히 쓸어내 버린다. 이런 시대에 단순무식한 영웅담은 맥 빠질 수밖에 없다. 봄바람 같은 말랑한 로맨틱 코미디에 설레고, 함께 웃고 즐기며 여행을 다니고 게임은 부질없게 느껴질 수 있다.

이제 어떻게 추스를 것인가. 우리가 이번에 깨달은 건 늘 현실이 우리가 들어온 이야기를 배신한다는 거다. 이번 재앙도 그렇듯 결국 사람이 문제였다. 현실에선 국가도 없고, 선장도 없고 영웅도 없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건 그 현실을 만든 ‘사람’을 다시 뜯어보는 거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이 트라우마를 풀어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티캐스트, Sc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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