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그대로 믿기도 어려운 뉴스만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며칠 전에 SNS에 올렸던 동영상 클립 하나를 여기에 소개한다. 리스 위더스푼이 호스트로 나왔던 오리지널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의 도입부이다.

그 날은 2001년 9월 29일. 그러니까 9/11 사건이 일어난 직후였다. 아직 사람들은 테러의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했던 때였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코미디를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머리를 싸매고 있었을 작가진의 고민이 상상이 간다. 당연히 시즌 첫 에피소드를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https://screen.yahoo.com/cold-open-9-11-tribute-070000854.html)

그래도 결국 그들은 했다. 당시 뉴욕 시장이었던 루디 줄리아니와 소방관들을 불러 예의를 취했고 폴 사이먼이 노래를 불렀으며, 노래가 끝나자 쇼의 수장인 론 마이클스가 나와 줄리아니 시장에게 정중하게 묻는다. "Can we be funny?" 줄리아니는 "Why start now?"라고 대답했고 새 시즌은 시작했다. 물론 무작정 시작했던 건 아니다. 뒤에 이어진 리스 위더스푼의 등장장면을 보면 여전히 다들 긴장한 것이 보인다. 여기서 그들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북극곰 농담을 호스트에게 준 것도 역시 전략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대 위와 아래 사람들 모두 감정적으로 발동을 걸 여유가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의 그들과 지금의 우리를 1대1로 비교할 수는 없다. 9/11 당시 미국인들은 외부의 적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이 멀쩡하다는 걸 대외적으로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외부의 적은 없다. 세월호의 사망자들은 우리 자신의 무책임함과 부도덕함의 희생자이다. 희생은 9/11 때가 더 컸지만 쉽게 웃을 수 없는 것은 우리들이다.

그래도 기본적인 질문은 남는다. 쇼를 언제 다시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쇼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 질문은 국가적 비극이 우리를 찾아올 때마다 되풀이되지만 우린 아직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 했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연예 프로그램은 분위기가 풀어질 때까지 숨죽이며 기다리다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슬며시 이전처럼 돌아오곤 했다. 그게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하긴 지금 상황에서 <개그 콘서트>나 <무한도전>의 정상적인 녹화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도대체 누가 웃고 웃길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매번 이렇게 몸을 움츠리고 숨는 것은 예능의, 보다 넓게 보면 예술의 영역과 기능을 지나치게 좁게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들은 우리를 웃기고 흥분하게 하는 기능 말고도 우리를 위로하고 일깨우고 자극하는 기능도 있다. 지금처럼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측면이 연달아 드러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개그 콘서트>같은 코미디야 말로 앞장서서 이를 풍자하고 폭로하는 자리에 설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특별히 이상적인 상황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코미디의 기능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었다. 그걸 잊고 있다면 우린 고장난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악은 자극과 흥분뿐만 아니라 애도와 위로의 힘도 함께 갖고 있다. 이 기능을 아이돌 팀의 전용 공간이 되어가는 요새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에 대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음악을 한 가지 의미로만 보는 것 역시 잘못된 것이며 그 때문에 뷰티풀 민트 라이프 취소와 관련된 최근의 소동을 보면 잘못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사고 이후 추모와 애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었다면 그를 인정하며 계속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성숙한 태도였을 것이다. (물론 여기엔 지방선거와 관련된 내부의 사정도 있었을 것이다. 이 소동에서 가장 흉하게 보였던 건 이와 관련된 모 시장 예비후보의 선동적인 공격이다.)

쇼를 언제,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에게 쇼는 무엇인가가 더 중요하다. 아무 일도 없을 때만 슬며시 기어나와 잠시 놀다가 퇴장하는 것이 쇼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는 무엇인가. 만약 그렇게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해도 이런 식의 암묵적인 강요에 의해 중단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노래를 부르는 것, 농담을 던지는 것이 그렇게 쉽게 무시되어야 할 일일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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