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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눈’ 비올레타가 바라본 <라트라비아타>
기사입력 :[ 2014-04-29 23:08 ]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국립오페라단 2014년 시즌공연 두 번째,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는 화려하기보단 신선했고, 아름답기보다는 처절한 폭력성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엔 창녀 ‘비올레타’와 ‘비올레타’를 죽게 만든 부르조아가 담겨있지만,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아름다움이 주제보다 우위에 놓이면서 ‘매춘’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라트라비아타>는 부르조아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라트라비아타>였다면, 이번 작품은 '비올레타'의 눈에 비친 폭력적인 <라트라비아타>였다.

​아흐노 베르나르 연출가(협력연출 이어진)가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인 <라트라비아타>는 시작부터 ‘비올레타’의 병명을 각인시키며 시작했다.

아픈 ‘비올레타’의 빨간 피를 받아내는 핏빛 대야와 손수건과 함께 시작된 오페라는 2막에 이르러선 온통 빨간 꽃으로 깔린 무대를 불러왔다. 이 거대한 꽃 길은 언뜻 ‘아름다움’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비올렛타의 희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알프레도의 사랑, 마찬가지로 희생을 강요하는 제르몽의 폭력적 언사의 또 다른 이면을 떠오르게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성을 보여주겠다’는 연출가의 의도는 2막 2장에 이르러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비올레타가 자기를 거의 창부처럼 가지고 놀았다고 여긴 알프레도는 연적 관계가 된 듀폴 백작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분노를 표현한다. 이어 자신이 연인이 아닌 매춘 고객 그 이상도 아니었단 사실에 절망한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의 얼굴에 돈을 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입’에 돈을 구겨 넣는 모욕적인 행동을 보인다.



무대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카메라는 출구 없이 숨막히는 비올레타의 세상을 미니멀하게 창조해냈다. 연출은 음악과 텍스트 안의 폭력성, 그 중에서도 인물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 무대 위 시간을 정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관객들은 마술처럼, 극도의 고통과 직면하는 비올레타의 내면속으로 함께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합창단이 표현하는 군중 심리와 그 시대의 사회적인 시선을 위협적으로 보여주는 군무는 긴장감을 유발시키며 집중력을 높였다. 마치 1대 다수의 대립구도로 그녀를 압박해 오는 ‘폭력성’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사회의 천민 비올레타를 감싼 보이지 않는 ‘벽’과 ‘위선적인 시선’을 효과적으로 표출한 연출로 볼 수 있겠다.

조명디자이너 파트릭 메우스는 비올레타에게 진정한 사랑을 알게 해 준 알프레도의 등장을 환한 빛과 함께 처리 해 작품 속으로 한 단계 더 빠져들 수 있도록 도왔다.

주 조역 가릴 것 없이 모든 가수들이 투혼을 발휘하며 역동적인 액팅을 만들어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소프라노 리우바 페트로바와 조이스 엘 코리)와 남주인공 알프레도(테너 이반마그리, 강요셉)은 테이블 위로 올라가거나 바닥에 누워 고 난이도의 아리아를 불렀으며, 극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상대 가수를 바닥으로 내 팽겨치는 장면도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비올레타의 가창은 대체적으로 무난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라트라비아타> 중 알프레도의 비중이 이렇게 큰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알프레도’는 뜨겁게 사랑하고 분노하고 절망한다. 그런데 이 점이 양날의 칼이 된 감도 없지 않다. ‘비올레타 못지 않게 길을 잘못 든 남자 알프레도의 사랑’이란 부제가 떠오를 정도였다.

어느 순간 ‘주인공이 비올레타가 아닌 알프레도인가’란 생각이 물음표를 달고 머릿 속을 돌아다녔고, ‘<라트라비아타>가 아닌 <라보엠>을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테너 이반마그리의 미성은 귓가를 따뜻하게 자극하고, 테너 강요셉의 혼연일치 된 소리와 연기는 함께 울게 만들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눈에 들어 온 가수는 바리톤 유동직이었다. 호흡 하나, 템포 하나, 손짓 하나까지 디테일한 매력을 발산했을 뿐 아니라 최고의 바리톤 보이스로 부드럽게 빨려들 듯 객석을 리드해나갔다. 2006년 국립오페라단 <라트라비아타>에서 제르몽으로 활약 해 호평 받았던 바리톤 유동직이 다시 한 번 이름을 확실히 각인 시킨 것. 또한 "<라트라비아타>를 절대 스테레오 타입으론 해석해선 안 되며, 그런 작품은 예술적 가치가 없다” 는 말을 100% 몸으로 입증했다.

'제르몽은 말로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역'임을 말했던 유동직의 몸에서 새롭게 탄생한 제르몽은 소리의 호흡 뿐 아니라 연기의 호흡까지 초 단위로 분석한 치명적인 제르몽이었다. '바리톤이 어떻게 관객을 새로운 신세계로 안내 해 '행복'에 이르게 하는 역'임을 목소리와 연기와, 그리고 진정성으로 확인시켜줬다.

듀폴 백작의 바리톤 한진만, 가스통 자작 역 테너 민경환, 플로라 역 메조소프라노 백재은의 존재감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 파트릭 랑에는 감각적인 템포로 무대 뿐 아니라 객석을 함께 지휘해 나간 점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 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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