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에 왜 자꾸 ‘추적자’가 떠오를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2012년 봄에 방송된 SBS 드라마 <추적자>는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드라마였다. 딸 수정(이혜인)의 죽음 뒤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려는 아버지 백홍석 형사(손현주)가 끝없이 무너져가는 과정이 차마 보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분노와 슬픔으로 붉게 충혈 되어 있던 아버지 백 형사의 두 눈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허탈함으로 가득한 그 얼굴을 바라보며 울기도 많이 울었었다.

막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돋아나는 새순처럼 마냥 순수했던 열일곱 살 소녀. 전교 석차 몇 등 올리는 것이 소망이라던 여고생 딸아이가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를 당해 숨을 거둔 것도 억울한데 거기에 원조교제에 마약을 복용했다는 누명까지 쓰고 말았으니 얼마나 피를 토할 심정이었겠나. 더욱이 억장이 무너질 일은 가해자 측근에게 매수된 수정이의 친구와 홍석의 친구가 사건 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감당할 수 없었던 수정의 어머니(김도연)는 결국 스스로 딸의 뒤를 따르지 않았나.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이번 ‘세월호’ 참사를 접하는 내내 자꾸만 <추적자>의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 하지만 최초에 사고를 일으킨 월드스타 PK준(이용우)과 그의 스폰서이자 내연녀 서지수(김성령)가 윤리적으로 대처했더라면 그 아까운 생명이 스러지는 비극은 없었을 게 아닌가. 추문이 두려워 그들이 저질렀던 짓을 차마 여기에 옮기지를 못하겠다. 하도 잔인해서. 그리고 국회의원인 서지수의 남편 강동윤(김상중)과 재벌 회장인 서지수의 아버지가 개입하면서 사건은 급기야 법의 테두리조차 벗어난다.

잃을 것이 많은 그들, 가진 걸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그들은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치 못할 일들을 꾸미고 또 그걸 빌미로 피 튀기는 기 싸움까지 벌였다. 대권을 노리는 강동윤과 사위의 대권 도전이 마뜩치 않았던 서 회장이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다. 그 와중에 아깝게 죽어간 아이에게 죄스러워하는 이가 어찌 단 한 사람도 없을 수가 있는지, 시청자들이 가장 분노해 마지않았던 대목이다.



권력의 술수에 의해 넘어지고 돈의 노예가 된 이들로 인해 또 다시 쓰러져야만 했던 백 형사. 그가 숱한 협박과 강요와 회유를 떨치고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수정이 아버지’이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알고 있으나 밝힐 힘이 없는 그에게 강동윤은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쉬워지는데 왜 포기하지 못하느냐고. “나는 수정이 아버지니까.” 백 형사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주말에 안산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 조문을 다녀왔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뭘 보고 느꼈는지 도무지 여기에 담아낼 수가 없다.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다만 돌아오는 길, “나는 수정이 아버지니까.”라는 백 형사의 대사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남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우리도 겪을 수 있는 일이니까.

백 형사의 동료들이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듯이 우리도 내 자식들을 위해 어떻게든 힘을 끌어 모아야 한다. 그래야 백 형사가 조작된 딸 사건 재판 결과를 바로 잡고 강동윤을 비롯한 가해자들을 모조리 법정에 세웠듯이 우리도 명명백백 진실을 밝혀낼 수가 있다. 비록 유죄 판결로 실형을 살게 됐지만 말이다. 환상일지언정 수정이가 “아빠 고마워. 아빤 무죄야.”라며 미소 짓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긴 말이 무슨 필요가 있으랴. 마지막으로 이번 ‘세월호’ 참사에는 부디 수정이의 친구 효진이처럼 권력에 휘둘려 거짓 증언을 하는 이가 없기를, 윤창민(최준용)처럼 돈과 타협해 죽마고우를 배신하는 파렴치한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란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SBS,트위터]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