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 억압받는 소녀의 영악한 탈출기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도희야>는 정주리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공식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초청되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출연해 세계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린 배두나가 흔쾌히 주연을 맡은 영화이자, <여행자><아저씨> 등에서 오롯한 존재감을 과시하였던 김새론의 한층 성숙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영화이다. 또한 코믹한 이미지로 알려진 송새벽의 연기도 특별히 언급할 만한데, 감독의 디렉팅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행간을 메우는 배우의 힘이 제대로 드러난다. <도희야>는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짜임새 있는 플롯과 섬세한 연출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영화이다.

◆ 폭력에 노출된 상처투성이 소녀, 도희

<도희야>는 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가는 영남(배두나)의 시선을 따라 시작된다. 경찰대를 졸업한 엘리트 경찰인 영남은 서울에서 어떤 일로 좌천을 당해 전남 어촌의 파출소장으로 발령받아 내려가는 중이다. 영남은 길가에 앉아있던 소녀가 영남의 차로 인해 고인 물을 뒤집어쓰고도 항의 한 번 없이 들짐승처럼 도망가는 것을 발견한다. 깡마른 몸매의 14살 소녀 도희(김새론)는 의붓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얻어맞으며 산다. 학교친구들에게도 ‘삥’을 뜯기기 일쑤이다. 도희는 얻어맞은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선착장에서 나풀나풀 춤을 춘다. 할머니는 도희에게 욕을 해대며 때리고,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는 술만 마시면 도희에게 패악을 떨고는 “내 딸 내 맘대로 교육도 못 시키냐?”며 큰소리를 친다.

파출소의 순경들도 도희가 맞고 사는 것을 다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영남은 도희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쫓아주고, 할머니의 폭행을 뜯어 말리며, 의붓아버지에게 한번만 더 도희를 때리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어느 비오는 밤 도희는 영남의 집 문을 두드리며 할머니의 폭행을 피해 왔다고 말한다. 영남은 도희를 들여 씻기고 재운다. 다음 날 할머니는 주검으로 발견된다. 할머니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면이 있지만, 영남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는다. 서울에서 추문에 연루되어 좌천된 후, 영남은 가급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려 한다.

도희는 영남의 집에 머물겠다고 간청하고, 영남은 이를 승낙한다. 영남은 마을에 다른 심각한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버린 마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용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조달하여 마을의 일이 돌아가게 한다. 용하가 조달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마을사람들은 용하가 이주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영남은 용하의 폭력이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외지에서 온 젊은 여성이 마을사람들의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영남이 좌천된 이유가 용하에 의해 까발려지면서 영남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 양가적이고 모호한 매력

영화 <도희야>의 매력은 양가적이고 모호한 느낌을 품고 있다는 데 있다. 영화는 도희와 영남을 단순히 가엽거나 단순히 정의로운 인물로 그리지 않으며, 두 사람의 관계나 욕망도 중층적으로 그린다.

약자에 대한 폭력이 묵인되는 마을의 억압받는 소녀라는 점에서 도희는 가련한 면모를 지닌다. 하지만 도희는 가련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도희는 할머니의 말처럼 “요사스러운” 구석이 있고, 용하의 말처럼 “똘끼가 있으며”, 의경의 말처럼 “어린 괴물 같은”면이 있는 소녀이다. 도희는 천진한 얼굴 속에 살기위해 터득한 영악함을 숨기고 있는데, 이것은 도희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양가적인 면모이다.

영남 역시 정의로운 경찰로만 그려지진 않았다. 영남을 찾아온 연인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질척이고 서걱대는 감정이나 생수병에 담은 소주를 물처럼 들이키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파편적인 정서는 영남의 결핍을 드러낸다. 영남이 도희에게 느낀 감정들 역시 명쾌하지 않다. 가령 영남이 처음 도희와 목욕하면서 도희 몸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 영남의 감정은 연민과 안쓰러움이었을 테지만, 영남이 도희에게 못이기는 척 자기 것과 똑같은 비키니 수영복을 사주고 바닷가에서 함께 일광욕을 즐길 때 품었던 감정은 (설사 본인은 그 순간에 의식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무의식적인 쾌락을 지닌다.

물론 타인들이 편견에 찬 시선으로 영남을 공격할 때 방어를 위해 결백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영남이 도희에게 품었던 감정이 말 한마디로 부인될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영화는 연민과 욕망 사이의 그 모호한 감정들을 오버하거나 시치미를 떼지 않으면서 적절히 표현해낸다. 순수하면서도 위험한, 아니 순수하기에 위험한 소녀 도희와 연민과 욕망이 중첩된 영남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면서 관객들을 설득해나간다.



◆ 억압받는 여성의 탈출서사

<도희야>는 폐쇄된 공동체에서 억압받으며 사는 여성이 외지인을 지렛대 삼아 탈출을 시도하는 서사라는 점에서 <무진기행>,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소녀> 등을 연상시킨다. 이를테면 <도희야>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소녀버전이거나, <소녀>의 퀴어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진기행>의 인숙이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복남이나, <소녀>의 해원은 모두 외지인의 배신이나 무능 등으로 인해 탈출에 실패한다. 오직 도희만이 탈출에 성공하는데,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도희와 영남의 관계에도 위기는 존재하였다. 도희가 과도한 집착을 보이자 영남은 도희와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 그러나 도희는 영남을 놓아주지 않고, 심지어 순진무구한 진술로 영남을 옭아맨다. 이때 도희가 자신의 진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혀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희는 영남에게 해가 될 것을 어렴풋이 알았을 테지만, 영남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심정과 진짜로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이 혼재했을 것이다.

도희는 마침내 자신이 일상적으로 겪는 폭력에는 무관심하던 공권력이 성폭력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자신만의 기획으로 할머니에 이어 의붓아버지를 제거한다. 도희의 행동은 <무진기행>의 인숙이나 <소녀>의 해원에 비해 훨씬 용감하다. 도희는 외지인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건 모험을 통해 억압자를 제거하고, 그 힘으로 영남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결과 관계의 주도권을 쥔 채, 믿음직한 조력자 영남과 탈출에 성공한다.

<도희야>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복남이 꿈꾸었으나 궤멸당한 여성적 연대가 비로소 성취된 이야기이자, <소녀>의 해원보다 훨씬 일찍 깨우친 소녀가 또래 소년에게 이성애적 기대를 품는 대신, 자기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하면서 성차를 가로지르는 영악한 선택을 감행한 이야기이다. 억압의 오지에서 탈출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도희는 말한다. “언니들, 더 자주적이고 더 영악해 지세요. 비겁하고 별 볼일 없는 남자들 믿지 말고, 멋지고 의리 있는 언니 만나 여성적 연대를 이루세요~” 굳세어라 도희야!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도희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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