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 슈퍼 히어로들 다 챙겨볼 필요 있을까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이건 그 영화들이 특별히 나쁘거나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최근 나온 슈퍼 히어로 영화들, 그러니까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저>나 <엑스 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같은 영화들은 다 기본값은 한다. "만화 원작이니 대충 만들어도 되겠지"식의 태도는 사라진지 오래고, 참여한 사람들도 일급이다. 이들 중 안 좋은 영화들도 있고 좋은 영화도 있으며, 과대평가된 영화들도 있고 과소평가된 영화들도 있지만,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킬링 타임용으로 이들은 대체로 나쁘지 않으며 종종 그 이상의 깊이가 있는 영화들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을 무시하고 21세기 미국 영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들은 너무 많다. 그리고 너무 비슷비슷하다.

전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엑스 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확신하게 됐다. 그럭저럭 재미있는 영화였고 장점도 꽤 됐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글 쓰는 게 미칠 것처럼 재미가 없었다. 왜인가 생각해봤다. 생각해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는 이미 <엑스 맨> 이전 영화들을 다룰 때 다 한 번씩 다루었던 것들이다. <스타 트렉>식 시간여행을 집어넣어 과거와 현재를 묶는 재주를 부려도 기본 갈등과 드라마의 방향은 비슷비슷하다. 그리고 그 비슷비슷함은 최근에 나온 비슷비슷한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비교해도 또 비슷비슷하다. 그나마 <엑스 맨>은 캐릭터가 여럿이고 기원담을 제거할 수 있어서 드라마의 자유도가 비교적 넓은 편이다. 그런데도 그렇다.

여러분은 반박을 위해 수많은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묶여 거대한 하나의 우주로 통합된 <어벤저스> 세계관을 나에게 들이밀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어벤저스건, 저스티스 리그 건, 이런 식의 슈퍼 히어로 모둠 세트는 기괴하게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기원담부터 제각각인 이런 슈퍼히어로들을 하나로 묶으면 설정은 우스꽝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헐크와 아이언맨의 세계가 하나로 묶일 수는 있다. 둘 다 과장된 SF의 영역에 속하니까. 하지만 여기에 토르를 얹는다면? 아니, 토르를 빼도 마찬가지다.



<어벤저스>에서는 어떻게 묶인다고 해도 이들은 같은 세계 안에 묶이면 스스로의 존재가 가벼워지는 부류다. 물론 우주도 헐겁다. <어벤더스>에서 뉴욕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시는가.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지구 문명은 정상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려야 한다. 하지만 <어벤저스> 이후 마블 영화에 나오는 이들은 이를 10년 전 쯤에 일어난 교통사고 정도로 여긴다. 물론 이런 세계관으로도 여전히 훌륭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그런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꾸려내는 데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개별 히어로들을 따로 묶어도 심심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아무리 기원담을 바꾸어도 슈퍼히어로의 고민과 액션은 다들 비슷비슷하다. 그 때문에 종종 영화의 드라마가 엉뚱해질 때도 있다. 비교적 준수한 영화였던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저>에서 재미있는 드라마 대부분은 주인공 로저스의 초능력과 별 관계가 없다. 초능력은 이미 존재하는 드라마와 액션에 양념을 치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주인공을 입체적으로 만들려 할 때마다 초능력의 무게감은 낮아진다. 얼마 전에 나온 <어메이징 스파이더 맨 2>에서 스파이더 맨 액션의 비중이 적어 실망한 관객들이 많은데, 내가 보기에 그건 그냥 자연현상이었던 거 같다. 이전 영화들과 차별성을 유지하고 드라마를 만들어내려면 스파이더 맨의 비중을 줄이고 피터 파커의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었을 거다.

이런 슈퍼히어로 서사의 서브텍스트에 이야기하는 것도 싱거워진다. 예를 들어 <엑스 맨>의 뮤턴트는 소수인종과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들의 상징이다. 피터 파커의 고생담은 현대 도시인의 고생담과 다르지 않다. 기타등등... 하지만 그들은 금속과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소수자이고 거미줄을 쏘아대며 마천루 숲을 날아다니는 도시인이다. 아, 그리고 과연 피터 파커가 그렇게 너드의 감수성을 대변해주는 존재이긴 하던가. 적어도 영화 속 스파이더 맨은 아무리 영화 속에서 악당들 때문에 고생해도 여전히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잘 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여자친구를 만드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청년이다. 난 트위터 이웃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여기에 대해 반박하려고 해봤지만 정작 이번 영화를 보고나니 잘 안 됐다. 이들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그리스 신화 속 반신들에 감정이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나쁘지 않은 오락이겠지만 의미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나는 이런 슈퍼히어로 이야기의 동성애 서브텍스트를 갖고 노는 것 같은 놀이에도 지겨워졌다. 서브텍스트란 원래의 텍스트보다 은밀하고 텍스트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요새는 거의 공장생산품이고 어찌된 게 진짜 텍스트보다 더 단순하고 지루하다. 영화 하나 나올 때마나 생각없이 퉁퉁 튀어나오는 것이 거의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보는 것 같다. 심지어 이런 게임은 더 이상 변태스럽지도 않다. 그냥 라디오에서 나오는 아이돌 노래처럼 뻔할 뿐이다. 아이돌 노래가 단순하게 즐거운 것처럼 이 역시 단순하게 즐거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의 의미를 과대평가하지는 말자. 그리고 <엑스 맨> 시리즈의 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게이인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관심이 전혀 없었을까? 게이 서브텍스트에 대한 언급은 이제 지겹고 논점에도 어긋나 있다.

이런 지겨움은 장기 방영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문제점과 비슷하다. 계속 반복되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가 어려운데 시리즈의 틀이 그 이상의 발전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블 유니버스의 모험담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될 거리고 한다. 물론 저스티스 리그 영화 역시 발동을 걸고 있으니 앞으로 한 동안 슈퍼히어로의 전성시대는 계속된다.

필자는 이 영화들이 앞으로도 한 동안 다들 고만고만하게 재미있을 것이고 그 중 몇 개는 더 좋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의 모노폴리가 가진 평면적인 단순함을 깰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긴 생각해보니 <다크 나이트> 시리즈가 그렇게 이야기를 깊게 담을 수 있었던 것도 배트맨이 사전적인 의미의 슈퍼히어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거기에 이야기의 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엑스 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저><어메이징 스파이더 맨 2>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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