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보물을 알려준 ‘미안해, 고마워’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새 영화가이드]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개 등은 사람들에게 사육된다고 생각들을 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폴 오스터의 이색소설 <동행>에 나오는 ‘미스터 본즈’나 클레이메이션의 대표격인 <월레스 앤 그로밋>에서의 ‘그로밋’ 등은 우리의 생각이 때론 정반대임을 보여준다. 미스터 본즈는 자신의 주인인 윌이 그렇게나 걱정스러울 수가 없으며 그로밋은 그로밋대로 천방지축인 주인 대신 모든 난제를 척척 해결해 나간다. 그로밋은 쉴 때면 ‘독(dog)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곤 한다.

임순례 감독이 총연출을 하고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연구소가 투자총괄을 맡은(실질적인 기획 프로듀서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옴니버스 영화 <미안해, 고마워>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도 미스터 본즈나 월레스 같은 개, 그리고 고양이가 많다는 것을 얘기해 주는 작품이다.

<미안해, 고마워>는 총 4개의 에피소드로 돼있으며 송일곤 감독이 [고마워, 미안해]를, 오점균 감독은 [쭈쭈]를, 박흥식 감독은 [내 동생]을, 그리고 임순례 감독은 [고양이 키스]를 만들었다.

[고마워, 미안해]는 로봇박사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골든 리트리버를 남기자 고민하게 되는 수영이란 여인의 얘기를 그렸다. 외골수 아빠에 대한 애증, 운영하는 갤러리가 빠져있는 경영난, 철없는 남편과 아이 등등 수영은 지금 한창 날이 서 있는 인생이다. 그런 그녀에게 아빠가 남긴 수철(강아지 이름은, 어린 시절 죽은 자신의 동생 이름에서 따왔다.)은 그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만나게 한다.

[쭈쭈]는 기차역과 공원 등지를 전전하며 노숙자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어느 날 구청이 진행하는 ‘노숙자에게 반려동물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에 의해 코기 종 한마리를 얻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사실 이 주인공은 개를 ‘키우기’ 위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주변 노숙자의 강요에 따라 ‘먹기’ 위해서 받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강아지가 살해당하려 하자 마음이 바뀐다. 그는 강아지를 구하고 무리에서 줄행랑을 친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내 동생]은 강아지를 자신의 진짜 동생이라고 생각하는 보은이란 여자 아이의 이야기다. 올해 다섯살인 보은은 직장에 다니는 아빠,엄마 대신 자신이 유아원에서 돌아온 후 늘 반겨주는 동생 보리가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보은과 보리는 집 안팎을 휘저으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는데 문제는 이 보리가 보은이 눈에만 ‘내 동생’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보리는 사실, 동생이 아니라 어린 강아지다. 어느 날 보은과 보리는, 엄마가 진짜 동생을 뱃속에 갖게 되면서부터 헤어질 운명에 처하게 된다.

[고양이 키스]는 작은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여주인공 혜원의 끝간데 없는 길고양이 사랑을 그린 얘기다. 그녀는 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겼지만 친구들과의 여행이나 혹은 소개팅 같은 데는 도통 관심이 없다. 오로지 관심있는 일은 퇴근 후 밤이 되면 골목을 다니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방에 있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되면서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아버지는 고양이에 매달려 사는 그녀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송일곤이 만든 에피소드는 다소 평이하다. 어쩌면 조금 진부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딸의 애틋한 관계, 가족의 복원이라는 주제를 밀어 붙이며 유효적절한 신파론을 펼쳤다는 점에서 지지를 보내게 되는 작품이다. 보고 있으면 코끝이 찡해진다. 스크린에서 드물게 만나는 김지호의 오랜만의 연기가 일품이다.

오점균과 박흥식의 에피소드에 특히 갈채를 보내고 싶어진다. 오점균은 반려동물 중에서 특히, 개가 갖고 있는 ‘무계급의 속성’을 잘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높이 사고 싶은 작품이다. 개는 주인이 고대광실에 사는 사람이든, 아니면 길거리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든 상관이 없다. 재벌이든 넝마주의든 개에게는 오로지 주인만 있으면 된다. 에피소드 [쭈쭈]에서는 그러한 개의 무계급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반면 노숙자임에도 여전히 약탈과 압박, 폭력을 일삼는 사람의 속성을 대비해서 잘 보여준다. 극중 후반부에 가서 주인공은 쭈쭈 이후 또 다시 개를 기를수 있을까 여부를 놓고 고민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개를 기르다 사람을 사귈 수 없을까 봐’서이기 때문이다. 때론 개가 사람보다 훨씬 낫다는 얘기다.

박흥식이 그린 동심의 세계,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 판타지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시선이 지금 얼마나 때가 타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박흥식이 만든 얘기는 네 편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캐러비안의 해적4:낯선 조류>와 <쿵푸 팬더2>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극장들이 들썩거린다. 오히려 볼 영화가 없어졌다고들 입을 모은다. 그러니 이럴 땐 차라리 시원한 물가를 찾는 게 낫다고들 말한다. <미안해, 고마워>는 작은 영화 속에 인생의 보물이 담겨져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다. 이럴 땐 이렇게 얘기하는 게 맞다. <미안해, 고마워>같은 영화는 안 보면, 자기들 손해라고. 더운 여름이다. 잔잔한 감동이 더욱 절실할 때다.


칼럼니스트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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