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 오브 투모로우’, 흥행돌풍의 분명한 이유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일본 사쿠라자카 히로시의 경소설 ‘All you need is kill’을 원작으로 한 SF액션 영화이다. <본 아이덴티티><미스터 &미세스 스미스>를 만든 더그 라이먼 감독이 연출을 맡고,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타임루프 물이다. 제목인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오늘과 내일의 경계’라는 뜻으로, 주인공이 겪는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를 나타낸다.

주인공이 과거의 한 시점으로 되돌아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타임루프 물은 새롭지 않다. 굳이 SF가 아니더라도 <사랑의 블랙홀>이나 <세이빙 산타> 같은 가족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타임루프의 설정을 생사가 걸려 있는 전쟁터에 펼쳐놓음으로써 절박함을 더한다. 또한 타임루프의 원인을 타임머신이 아니라, 외계생명체의 생태능력으로 설명하면서 신선함을 더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국내에서 3백만의 관객을 모으며 크게 흥행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영화는 액션물에서 언제나 제몫을 하는 관록의 배우 톰 크루즈의 매력을 바탕으로, 박진감 넘치는 전쟁영화의 스펙터클에 타임루프 설정에서 기인한 각별한 재미를 더했다. 영화는 주인공이 전투를 벌이다 죽으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전투를 반복하며 마지막 미션을 향해 나아가는데, 이러한 구조는 게임의 내러티브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영화는 처음 접한 게임을 익혀가며 즐기는 재미를 관객들에게 선사하는데, 이는 마치 영화가 대신 게임을 해주고, 관객들은 그 게임을 관람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요컨대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흥행은 전쟁영화의 스펙터클에 ‘대신 게임해주는 영화’를 보는 듯한 쾌감, 그리고 톰 크루즈 효과로 요약된다.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는 속 깊은 윤리와 로맨스가 숨어있다.



◆ 무한히 반복되는 죽음

미믹이라는 외계생명체의 침공으로, 유럽이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연합군 공보장교 빌 케이지(톰 크루즈)소령이 런던에 도착한다. 장군은 그에게 직접 전장에 가서 취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빌은 명령을 거부한다. 학사장교 출신으로 광고회사를 경영하다 전쟁으로 회사가 망하자 입대한 빌은 그동안 전쟁영웅 무용담이나 젊은이들의 입대를 종용하는 선전물을 만들어왔지만, 직접 전장에 가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는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겁쟁이에 뺀질이였기 때문이다. 장군은 명령불복종의 죄를 물어 그를 이등병으로 강등시키고 곧바로 전투부대에 투입한다.

다음날 아무 훈련도 받지 못한 빌은 ‘엑소 슈트’를 착용한 채 헬기에 태워져 해변에 낙하한다. 인간병기로 무장했지만, 사용법도 제대로 모르는 빌은 사방에서 외계생명체들이 공격해 들어오자 정신없이 총을 난사하다 죽는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전투부대에 배치받기 직전 상황으로 돌아가 있지 않은가. 다시 전장에 투입된 빌은 처음만큼 무섭진 않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르긴 마찬가지이다. 다시 죽고 전장에 투입되기를 반복하면서, 빌은 점점 적의 위치를 알아서 피하는 기민한 능력을 발휘한다. 마침내 전쟁영웅 리타(에밀리 블런트)를 구한 빌에게 리타는 “깨어나면 나를 찾아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죽는다.

리타를 찾아간 빌은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첫날 전투에서 ‘알파’ 미믹의 피를 뒤집어쓴 빌은 ‘알파’가 지닌 ‘리셋’ 기능을 얻게 되었다. 즉 죽으면 하루 동안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빌은 전장에 투입되어 죽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더 전투능력과 정신력이 강해져 전쟁영웅의 면모를 지니게 된다. 리타 역시 ‘리셋’ 기능을 통해 신출귀몰한 전쟁영웅이 되었지만, 현재는 수혈로 인해 그 기능을 잃은 자이다. 리타는 외계생명체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알파’가 아닌 ‘오메가’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메가’를 죽이러 가는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빌 역시 ‘리셋’기능을 상실한다. 이제 그동안 익힌 전투 능력을 제외하면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 빌은 어떻게 ‘오메가’를 죽이고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 실존적 윤리와 로맨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매일 죽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얼떨결에 전장에 투입되어 매일 죽기를 반복하지만 계속 살아난다는 점에서 코미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골백번을 고쳐죽어도 죽음의 전장을 벗어날 수 없으며, 몸에 가해지는 죽음의 고통은 진짜라는 점에서 끔찍한 악몽이거나 영원한 지옥 같은 상태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굉장한 윤리가 숨어 있다. 빌은 아무런 준비나 훈련 없이 전장에 투입되어 온몸으로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점점 더 강한 존재가 된다. 오직 실전을 통해 학습과 훈련이 이루어지며, 몸에 새겨지는 고통을 통해 지혜와 용기가 쌓인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인간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며, 주어진 악조건에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사투를 벌임으로써 스스로 생존과 성장을 이루어간다는 실존론적인 인간의 조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빌은 어떻게 하면 자신도 살고 동료도 살릴 수 있을 것인가를 끊임없이 궁리하며, 자신의 선택을 조금씩 바꾸며 다른 가능성을 모색해나간다. 그러나 빌이 아무리 노력해도 부대원들이 몰살당하는 해변의 전투를 막을 길이 없으며, 리타가 눈앞에서 죽은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리타는 빌을 훈련시키고 빌에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자,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는 전우이자, ‘오메가’를 죽이는 대업을 완수해야 할 동지이다. 수없는 죽음을 거쳐 빌은 리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만, 리타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빌만이 리타와의 만남과 사별을 되풀이해 겪는다. 빌이 리타를 대하는 눈빛과 표정이 조금씩 달라진다. 리타는 자신을 아는 듯 한 빌의 그윽한 눈빛에서 어렴풋한 교감을 느낀다. 이러한 교감, 시공을 뛰어넘어 마치 어느 평행우주에서 우리가 만난 적이 있었던가 하는 오묘한 느낌이야말로 사랑의 신비를 묘사하는 수사가 아니던가.

징그럽고 포악한 외계생물체가 우글거리는 전장에서 피 터지는 전투를 겪는 절박한 상황에서 빌과 리타 사이에 형성되는 교감은 어떤 로맨스 물에서보다 미묘하고 애틋하다. ‘오메가’를 죽이러 가는 도중, 번번이 리타가 죽는 것을 경험한 빌은 리타를 만류하기도 하고, 리타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애쓰기도 하지만 리타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빌은 리타와의 재회를 위해 몇 번이고 다시 죽는다.



◆ ‘작은 나’를 넘어 타자와 인류를 품는 대승의 완성

이러한 반복되는 죽음과 헤어짐을 어떻게 그만둘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마치 어떻게 윤회의 사슬을 끊고 해탈할 수 있을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오메가’와의 결전을 앞두고 ‘리셋’ 기능을 잃은 빌. 이제 단 하나의 목숨이 남은 그는 잠시 망설이지만, 인류의 멸망을 볼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전장에 나아간다. 그는 부대원들에게 함께 가자고 진심으로 설득한다. 부대원들은 전쟁영웅 리타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들을 따라나선다. 이 같은 타자와의 연대는 이전의 선택과는 확실히 다른 길이다.

마지막 전투에서 부대원들과 리타의 고귀한 희생을 딛고 빌은 마침내 ‘오메가’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자신도 죽는다. 현실의 모든 전쟁영웅이 그러하듯이, 빌은 자신의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장렬히 전사한다. 그때 ‘오메가’의 피가 빌을 감싸며, 빌은 다시 깨어난다. 새로운 차원의 시간이 열린 것이다. 이제 빌은 이등병으로 전투에 투입되기 직전이 아니라, 장교로 런던에 도착하던 때로 돌아간다. 외계생명체는 패퇴하였으며, 그토록 살리고 싶던 리타도 그대로 살아있다. 무릇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생사의 역설이 이루어진 것이다.

종이에 손가락을 베이는 것조차 두려워 도망치던 주인공에게 주어진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한히 반복되는 하루’는 결코 환상이 아닌 실제이다. 우리네 삶이 이미 무한히 반복되고 있으며,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에게 타임루프가 인식되는 것이다. 즉 ‘어느 날 타임루프에 갇힌 주인공’은 ‘삶이 무한히 변주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 자’의 비유이다. 이를테면 그는 이제 막 삶의 무상함을 깨닫고 수련의 길에 들어선 선승과 같다.

그는 반복되는 삶의 회로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을 단련해나간다. 목표를 가지고 용맹정진 하여 육체적·정신적으로 강해진 그는 마침내 자기 목숨 너머에 있는 타자의 삶과 인류의 운명을 사고하는 대승적 사명을 느끼게 된다. 그는 드디어 자아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연대할 줄 알게 되었으며, 절체절명의 순간 하나뿐인 목숨을 기꺼이 내던지는 결단을 감행함으로써 존재의 도약을 이루어낸다. 이것이 바로 ‘작은 나’에서 벗어나, 이웃을 구하며 다른 차원의 우주를 열어젖히는 대승의 완성이다. 이것이 바로 윤회의 무간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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