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괴담’ 유독 아쉬움 컸던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필자는 영화 <소녀괴담>에 대해 최대한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적어도 고스트 픽처스 영화에 대해서는 그렇다. 이들이 오래 전에 바닥을 친 한국 호러 장르에 꾸준히 영화를 대주는 것이 고맙다. 열의없는 아마추어들이 입봉작으로 만든 호러에 지쳐 있는 터라, 이들이 호러 장르에 대해 어느 정도 전문성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고맙다. 그리고 필자는 이 회사에서 만든 첫 영화인 <두 개의 달>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능성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가능성으로만 끝난 게 아쉽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소녀괴담>은 앞의 영화가 보여주었던 정도의 가능성은 보여주지 못한다.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커녕 앞에서 비난했던 '열의없는 아마추어들의 입봉작'의 단점들을 그대로 답습한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엔 외부인들이 알 수 없는 온갖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고 아마 <소녀괴담>도 그것들 중 하나에 발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추측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줄거리 요약부터 진부하다. 주인공 소년은 귀신을 본다. 전학 온 학교엔 마스크 귀신이 있다. 알고 봤더니 그 귀신은 집단 따돌림의 희생자다. 가해자들이 한 명씩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모두 이전에 학교 무대의 다른 영화에서 한 번 이상 보았던 것 같다.

장르 베테랑들이 (이 영화의 경우엔 각본가인 호러작가 이종호다) 극도로 진부한 소재를 선택한다면 이를 다른 아마추어보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이 뻔한 뱀파이어 소재로 <세일럼즈 롯>을 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서재의 시체>를 쓴 것도 서재에서 발견된 시체야 말로 공장 생산되는 추리소설의 가장 뻔한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소녀괴담> 역시 이 재료들이 신선한 무언가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반대로 영화는 주인공 인수의 경험이 그이 세계에서는 무섭다기보다는 지겹고 귀찮은 일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진부한 것을 진부하다고 말을 하는 것으로 일을 끝낼 수는 없다. 여기서부터 두 가지가 추가된다. 로맨스와 코미디다.

예고편에서 강조되는 것은 첫 번째다. 인수는 전학 오자마자 기억을 잃은 소녀 귀신과 친구가 되고 데이트를 한다. 인수가 귀신을 특별히 무서워하지 않는 아이이기 때문에 이 장르의 전환은 자연스럽고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연다.

하지만 여기엔 큰 문제가 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로맨스 장르엔 전혀 재주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성애 로맨스 영화를 만들 때 필수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바닥을 친다. 소녀 귀신의 경우, 막연히 옛날 책받침이나 노트 커버를 장식했던 긴 머리 소녀를 모델로 삼았던 것 같은데, 그 예쁜 척 하는 태도나 대사가 너무 이상해서 연기하는 배우가 걱정이 될 정도이다. 악역과 방관자 역의 학생들은 그보다 조금 낫지만 그래도 평범을 밑도는 건 마찬가지다.

코미디 역시 비슷한 문제에 빠진다. 역시 귀신을 보는 무당인 인수의 삼촌이 코미디의 대부분을 책임지는데 이 대부분이 "나는 귀신을 보는 무당인데, 호들갑스럽고 웃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농담을 만들자니 이것만으로는 당연히 숨이 차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내용과는 별 상관없는 코미디용 여자 귀신을 하나 더 넣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넣은 코미디도 그것으로 끝이다.



이렇게 엉뚱한 부분에서 에너지를 쓰다보니 정작 본론인 호러에 투자되는 시간이 얼마 없다. 이들이 그 남은 시간 동안 호러 파트를 능숙하게 다루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진부한 이야기를 끌어가야 할 아이디어는 여전히 빈약하고 로맨스와 코미디가 들락날락하느라 이야기에 큰 구멍이 뚫린다. 이를 장르 혼합에 따른 불균질한 매력이라고 포장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걸 매력이라 부를 생각이 없다. 전문가들이 진부한 재료로 실력을 보여줄 생각이었다면 그들이 아는 재료만을 상대했어야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영화의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학교 폭력은 중요한 이슈이고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겐 이를 계속 다루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영화는 이 중요한 주제를 장르 클리셰로 다룬다. 귀신 이야기로 이끌기 위한 자극적인 폭력의 연속인데, 최소한의 설득력도 놓쳐버린 센세이셔널리즘의 연속인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반복된다면 관객들이 학교 폭력에 대해 걱정하는 대신 오히려 무감각해지거나 비웃을 가능성이 더 크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기회 하나가 게으른 습관 때문에 날아가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소녀괴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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