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다소 아쉬웠던 괴산의 난 활용법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KBS 주말예능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헤비한 시청자로서 매일 TV를 보며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필자 같은 사람에겐 <1박2일>은 어려운 프로그램이다. 처음 한 두 번은 보고 재미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계속해서 어떤 의미를 찾기는 까다롭기 때문이다. 시즌2의 어둠을 확실히 걷어냈고, 제작진의 노력도 엿보이지만 새로운 무엇, 다른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새로움이나 한 마디를 찾기는 여전히 어렵다.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일 걷고 있지만 수년전 이들이 벤치마킹했을 <무한도전>은 이름 그대로 다양한 도전을 하고, <런닝맨>은 아예 게임이란 장르에 천착한다. <1박2일>은 전국을 여행하고 다니며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담은 프로그램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포인트는 여행과 복불복 게임이다. 그런데 시즌2에서 보듯 같은 포맷으로 반복이 계속되다 보니 여행에 대한 로망이 감퇴하고, 멤버, 제작진 등 플레이어들의 능력 차이는 웃음마저 사라지게 했다. 당시 즐겁게 웃고 장난치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소외감을 느꼈다.

그런 엉망인 상황에서 시즌3은 매우 화려하게 출발했다. 신선하면서도 훨씬 훌륭한 플레이어들이 등장했고 제작진과의 긴장관계 형성에 다시금 성공하면서 호평이 쏟아졌다. 여기에 KBS 예능국의 전폭적인 지지와 스타PD 육성이란 전략도 한몫을 했다. 성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가재PD’라는 별명도 붙이고, 유호진PD도 띄우기 위해 꽤 비중 있게 등장시킨다.

문제는 혹평도 없지만 시청률도 답보 상태라는 데 있다. 일요예능 전쟁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무기가 딱히 없어서다. 여섯 남자의 왁자지껄한 여행의 재미는 취향 차원으로 내려앉았다. 각자는 호평을 받지만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캐릭터가 없다는 점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시즌1은 국내 여행과 아웃도어 열풍과 궤를 같이 했다. 요즘 대형 예능들은 모두 이런 식이다. 시청자의 일상에 끼치는 일종의 의미, 공감대, 낭만과 같은 요즘 예능의 덕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발목을 잡는 중요한 원인이다.



그런데 지지난주 <1박2일>은 모처럼 박진감 넘쳤다. 더운 여름까지 에어컨과 창문이 고장 난 차량으로 이동하라는 설정을 준 제작진에게 출연자들이 항명을 하고 차를 자체적으로 고치러 촬영동선을 이탈한 ‘괴산의 난’이 발발한 것이다. 제작진과 출연진 간에 점심 식사를 놓고 벌인 노골적인 대결에서부터 이어진 상황으로 <1박2일>은 물론 다른 예능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장면이었다. 빅브라더인 제작진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꼬리칸 멤버들 간의 신경전과 갈등은 예측할 수 없는 재미를 기대하게 했다. 제작진에 늘 당하는 출연자라는 틀과 게임의 룰이 위태해지자 그 긴장을 즐기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시청자들은 마음을 졸이며 방송이 빨리 끝났다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려 지난 6일 ‘괴산의 난’이 본격 시작됐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입장에 따라 보이는 건 각자 다른 법이다. 지난 주 분량은 제작진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 것이라면, 이번 본방에서는 멤버들의 시선에서 “째”라는 한마디로 대표되는 탈주의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사상 초유의 위태로운 예능 로드무비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기대감은 AOA 멤버들의 비키니 몰카만큼이나 김이 샜다. ‘당신은 우리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선전포고 후 기세등등하게 시작된 여섯 남자의 로드무비는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차량에 부착된 카메라를 직접 떼서 자기들끼리 촬영하고 무전과 전화에도 응답하지 않는 등 활발하게 상황에 몰입했다. 그러나 카센터를 제때 못 찾으면서 싱거워졌고 멤버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제작진에게 돌아갔다. PD의 단호한 모습을 보는 걸 기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과 쫓고 쫓기는 에너지를 기대했었다. ‘한번은 이런 날이 왔어야 해’라는 김종민의 말은 돌아오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그 후 우리가 아는 게임으로 점철된 <1박2일>이 다시 펼쳐졌다.



사상초유의 사태가 쫄깃했던 것은 복불복 게임으로 대표되는 <1박2일>의 틀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마치 <설국열차>처럼 태초에 정해진 세상의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 새로운 그림이고 생각지 못한 지점이어서 흥분하고 집중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울타리를 확장하는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결국 본방송은 잠자리를 놓고 발로 얼굴에 쓴 스타킹 벗기기, 얼음 위에서 오래참기를 하고 더운 방에서 잠을 자기, 헤딩으로 징 치기 등 망가지는 게임으로 웃음을 만드는, 우리가 익히 아는 <1박2일>으로 돌아갔다.

<1박2일>이 변화된 시청자들의 기호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시청자들도 안다. 기본적으로 멤버들 간의 캐미스트리에 신경을 쓰고, 복불복을 비롯한 게임과 기상미션 등 7년간 쌓아놓은 역사를 적절하게 변주해서 반가움과 새로움을 주려고 애쓴다. 그리고 나영석PD와 강호동의 관계처럼 제작진과 멤버들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을 살리기 위해 스타PD를 육성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다. 그런데 시청자의 일상과 정서에 어필하지 않고 독한 게임만으로는 이제 한계가 있다. 멍석을 조금 달리 깔아야 할 때다. 지지난주 점심식사는 놓고 벌인 치열한 두뇌싸움부터 사상초유의 일탈까지, 시청자들이 빠져들었던 것은 기존의 틀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다고는 하는데 시청률은 그대로고 이슈가 안 되는 이유는 늘 똑같아서다. 다른 말로 새로운 시청자를 유입할 후크가 없다. 낄낄거리는 데 취향 맞는 사람은 이미 즐겨보고 있다. 그 외에 일요예능 무당파를 사로잡기엔 너무 사적이고 고전적이다. 이번 일탈을 꼬박 일주일을 기다린 것도, 그리고 깊은 아쉬움이 남는 것도 시즌3이 시작했을 때처럼 새로운 에너지가 느껴졌고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의 변화를 주려고 하는 제작진은 일반인 특집 이런 수준이 아니라 이제 <1박2일>이란 브랜드의 틀 자체를 놓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엔 다소 아쉬웠지만 꼬리칸의 반란이 계속되어, <1박2일>체계 자체에 새로운 에너지와 가능성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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