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포위’ 이승기, 차승원에게 한 수 배운다면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2004년 ‘내 여자라니까’로 연예계에 데뷔한 이승기가 지난 10년간 얻은 대중적 인기는 꽤 독특한 지형도를 그린다. 데뷔 당시 이승기는 10대 소녀팬 혹은 20대 여성들의 인기를 얻을 법한 발라드 솔로가수 포지션을 취했다. 하지만 가수로서의 성공 뒤에 이승기는 초창기 성시경처럼 꾸준하게 가수의 길만 다지는 방식을 택하지는 않는다. 그 해 <논스톱5>를 시작으로 연기에 발을 들여놓은 이승기는 KBS 주말연속극 <소문난 칠공주>에서 ‘땡벌’을 부르는 이십대 초반의 철부지 남자애 황태자 캐릭터를 제법 능청스럽게 소화하며 누나들만이 아니라 어머니들의 마음까지 훔친다.

그 후 남자들끼리의 생짜 엠티 같은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을 통해 이승기는 가수도 배우도 아닌 ‘엄친아’와 ‘허당’이라는 이질적인 요소가 적절하게 배합된 ‘이승기’란 스타로 탄생한다. 2007년을 시작으로 2011년 하차할 때까지 <1박2일>의 이승기는 대중들이 이십대 초반의 남자아이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친근한 매력들을 보여준다.

<1박2일>에서 이승기는 엄마 친구 아들 같은 반듯한 모범생의 전형을 베이스로 깐다. 하지만 종종 허당의 기질을 드러내 그 얄미운 ‘엄친아’의 분위기가 상쇄된다. 한편 형뻘인 은초딩(은지원)보다 의젓하기에 어른들이 말하는 요즘 아이들처럼 경망스럽거나 가볍지도 않다. 입고 있는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 또한 눈살 찌푸리게 하는 ‘날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또 소심하지는 않아서 게임이나 시합에서 강한 도전정신을 보여준다. 예의는 바르지만 형들에게 적당히 유들유들하게 굴 줄도 안다.

그렇게 <1박2일>은 연예인 이승기를 성격 좋은 ‘엄친아’ 이승기라고 믿게 만드는 환상의 마법가루를 뿌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 사이 가수로서의 이승기도 여전히 인기를 끌었고, <강심장> MC로서도 괜찮은 자질을 선보였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이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에서는 당당히 주연의 자리를 꿰찼다. 하지만 그 인기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1박2일>의 이승기가 들려주는 노래와 보여주는 드라마, 예능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다.



이승기가 최근 출연한 SBS의 수목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는 <1박2일>의 마법이 사라진 이승기가 배우로 평가받는 중간지점쯤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최근 이승기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더킹 투하츠>나 <구가의 서>와는 맥락이 다르다.

이승기의 연기 타입은 예능에서의 모습에 비해 훨씬 더 진중하다. <너포위>에서도 은대구(이승기)를 연기하는 그가 날림으로 역할을 이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이승기는 자신의 역할 설정이 확실하게 주어졌을 때 그 배역 안에 확실하게 몰입한다. 그것이 남한의 왕자나 반인반수처럼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여도 설정만 확실하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너포위>의 은대구에 이르노라면 문제는 조금 복잡해진다. 은대구는 과거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며 자신의 과거를 비밀로 감춘 어둡고 까칠한 성격의 형사다. 과거 이승기가 해온 역할들에 비하면 심리적인 면에서 복잡한 내면을 지니고 있다. <너포위>의 작가는 정작 이 복잡한 내면을 설정만 해놓았을 뿐 디테일적인 부분은 ‘왜 저러냐?’ 싶을 만큼 허술하게 비워둔다. 그렇기에 이 여백을 배우가 직접 자연스럽게 채워야하는 어려운 문제와 부딪친다. 물론 <너포위>에서의 이 문제는 은대구만이 아니라 어수선(고아라), 박태일(안재현), 서판석(차승원) 등등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안고 가는 문제다. 그들은 어떠한 설정만 지니고 있을 뿐 구체적인 성격이나 행동을 드러낼 만한 요소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고아라와 이승기는 이 문제를 각기 다른 방법으로 풀어간다. 고아라는 과감하게 없는 디테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배우로서 지닌 캐릭터를 밀고 나간다. 아마 <너포위>의 어수선에게 <응답하라>의 성나정의 성격이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까닭은 그래서일 거다. 하지만 <응답하라>에서 다소 거칠어도 매력적으로 보였던 고아라는 이 작품에선 어수선하고 정리가 덜 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승기 또한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는 못한다. <너포위>에서 드러난 배우로서 이승기의 단점은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의 감정에 쉽게 이입하지 못하고 해석하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물론 분노나 슬픔처럼 감정에 힘이 실리는 부분이나 이승기 또래 평범한 인물의 감정을 보여줘야 할 때 이승기는 나쁘지 않다. 특히 어수선과의 키스신 장면 같은 부분에서는 그 나잇대 남자애들이 그 순간에 어떤 표정과 떨림을 느끼는지 적절하게 표현한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너포위>의 아주 작고 일상적인 부분에서 이승기는 멈칫하고, 주저하며, 힘을 주다 종종 굳어버린다. 혹은 최대한 정답이라 믿는 감정을 연기하지만 그 정답과 진짜 감정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의 차이를 잡아내지 못해 시시하고 답답하게 풀어낸다.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은대구가 종종 이 드라마에서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에 포위된 이승기처럼 다가오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배우로서의 미래를 위해 <너포위>는 연기인생 10년차를 맞은 이승기에게 꽤 의미 있는 걸림돌일 수는 있겠다. 더구나 이승기가 쉽게 풀지 못하는 부분을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스럽게 푸는 배우가 바로 차승원이니 말이다. 대본상으로 보면 지극히 멋없어 보이는 형사 서판석은 차승원에 의해 꽤 그럴듯한 남자로 태어난다. 반면 이승기는 여전히 사람들을 먹먹하게 하는 남자를 꿈꾸는 ‘엄친아’ 학생같이 연기하는 부분이 있다. 그 지점의 허물을 벗어버릴 때 이승기는 황태자나 반인반수가 아닌 내면에 상처를 지닌 인물에 좀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을 것 같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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