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과도한 남성중심주의 깰 때 됐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최근 <우는 남자>, <하이힐>, <황제를 위하여> 등 느와르를 내세운 영화들에 대한 미적지근한 반응을 구경하면서 한국 영화 속 남성의 매력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저 영화를 하나로 묶어서 일반론을 전개할 생각은 없다. <하이힐>만 해도 일반적인 한국 남성 이미지를 뒤집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다. 하지만 일반론의 시작은 될 수 있다.

지난 칼럼에서 <우는 남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남성성에 고취된 남자들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실 이것들은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남성영화에 해당된다. 자신이 머릿속에 담은 멋진 남성 이미지의 매력에 대한 확신이 너무 큰 나머지 그들이 다른 식으로 받아들여질 거라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 대부분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클리셰란 익숙한 환상의 반복이기 마련이니까. 판타지를 실제 대중 문화 작품에 반영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보편적인 매력에 호소하면서 그것이 가진 진부함을 떨어내야 하는데 그 매력 자체가 진부함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위의 영화들의 흥행 실패는 그런 판타지가 영화기획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헐겁다는 것을 보여준다. 캐릭터나 배우의 매력이란 예민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기계적인 분석으로는 완전히 이해하기도, 재현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성공적인 남성영화 또는 성공적인 남성 스타에서 '남성'의 비중은 의외로 큰 편이 아니다.

성공적인 남성 배우 아무나 골라보자. 하정우를 예로 들어볼까. 그의 매력에서 남성성을 제외하면 이상할 것이다. 그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정우라는 배우/스타의 매력을 이루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하정우라는 것이지, 남성이라는 캔버스는 아니다. 그의 연기력, 영화를 고르는 눈,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그것이 하정우라는 스타의 '내용'이다. 그리고 그게 정상이다. 한 명의 스타나 영화가 살아남으려면 그가 속해있는 풀에서 더 나은 존재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미 인류 절반이 속해있는 조건이 그렇게 중요할까. 그 조건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만 이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면 우스꽝스러워진다. 다시 한 번 <우는 남자>를 보라.



반대의 예를 들라면 지금 조용한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비평적 성과도 높게 받은 <끝까지 간다>를 보라. 이 역시 두 남성 배우를 내세우고 있는 영화이고 둘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이들은 모두 '전형적인 남성적 매력'을 과시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반대로 간다. 그 때문에 다른 영화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구석들을 계속 탐험하며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배우의 매력 역시 살아난다.

폼보다 내용이 먼저이다. 가끔 폼이 내용을 넘어서면서도 영화가 좋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내용에 충실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여러분이 파올로 소렌티노가 <그레이트 뷰티>에서 그랬던 것처럼 멋지게 폼을 잡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위의 영화의 실패는 한국영화계에서 남성영화의 비정상적 과잉 역시 보기만큼 논리적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한국 영화 흥행작 중 상당수는 남성 중심 영화였다. 하지만 이 사실에서 '남성영화가 흥행이 잘 된다'와 '남성영화가 지나치게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 여성배우와 여성 위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하자. 여기에는 위에서 언급된 남성 영화와 정반대의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여성 중심 영화와 여성 배우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게 부족한 것이다. 이 문제점은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할리우드도 몇십 년째 같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일단 최근에 죽어라 나오는 <어벤저스> 영화를 보라. 비중있는 여성 캐릭터가 얼마나 되나. 계획 중이라는 <블랙 위도우> 영화가 정말로 만들어져야 여성 주인공 영화가 간신히 하나 나온다.

이런 문제점들이 과연 경제적으로 논리적인 선택에 바탕을 둔 것인가, 라는 질문은 꾸준히 나오고 있고, 그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작년만 해도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여성 주도 영화의 흥행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겨울왕국>, <헝거게임>과 영화들이 남성 주인공 액션 영화들을 꾸준히 밀어내고 성공을 거두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남성 주도 영화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이 성공의 의미는 더욱 크다.

이 영화들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모두 벡델 테스트를 무리없이 통과한다는 것이다. 잊어버린 분들을 위해 다시 설명한다면 만화가 알렉시스 벡델이 정리 요약한 이 테스트는 세 가지 관문을 통해야 한다. (1) 두 여자가 한 장면 이상에 나와, (2) 서로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3) 그 대상은 남자가 아닌 다른 것이어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너무나 일상적인 이런 상황이 영화에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지금 영화계의 문제점인데, 최근에 성공한 여성주도 영화들은 이 테스트를 무리없이 통과하고 있고 심지어 최고 히트작인 <겨울왕국>의 경우 우등생이기도 하다. 엘사와 안나 자매는 남자 이야기를 하기도 하긴 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자매간의 갈등에 대한 것이거나 권력과 책임감, 자기 통제력에 대한 보다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일반적인 '여성 캐릭터'라고 보는 인물들보다 감정이입의 정도가 높다.



여성 주도 영화를 만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만들어낸 여성 캐릭터의 행동 영역과 사고 영역을 '여성적인 영역'으로 꾸준히 제한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적인 영역'은 꾸준히 탐사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하지만 복수의 여성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관객이 자동적으로 '이 영화는 여성 이슈에 대한 것이군.'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 다음 나오는 진부한 예상은 '이 영화는 이 여자들이 각각 다양한 조건에서 연애를 하는 이야기군.'인데 이 역시 문제가 덜한 건 아니다. 각각의 주제나 소재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이것이 고정관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여성 배우의 활용도와 인기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남성 배우들은 자신의 섹스 어필을 내세우기 위해 굳이 연애나 섹스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여성 배우들은 자신의 영역을 그 안에 가두어야 하는 걸까.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제니퍼 로렌스를 보라. 팬들은 이 배우의 섹스 어필에 큰 영향을 받겠지만 굳이 이를 과시하기 위해 로맨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배우의 영화 중 로맨스로 분류되는 작품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정도다. '여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건 양성 양쪽의 팬을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되고 이는 긍정적인 양의 되먹임이 되어 여성주도 영화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세를 불려놓으면 '여성적인 영역'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도 이전처럼 기계적인 편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남성 주도 영화이건, 여성 주도 영화이건, 이 문제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 지금 한국 영화의 성비는 비정상적이기 짝이 없다. 심지어 과도한 남성성과 남성중심주의는 한국 영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단골로 튀어나오는 주제이다. 이는 의도적으로라도 교정되어야 마땅한데, 그 부작용이 바닥을 치고, 모두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 기회가 아닐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군도:민란의 시대><하이힐><황제를 위하여><우는 남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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