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에 대한 깊은 생각 ‘혹성탈출:반격의 시작’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혹성탈출 : 반격의 시작>은 2011년에 개봉했던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서 이어지는 연작물이다. 전편에서 치매치료제를 개발하는 실험실에서 태어난 유인원 시저가 인간의 품에서 천재적인 두뇌와 자의식을 가진 유인원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그려졌다. 시저는 억압받는 유인원들의 처지를 자각하고 실험실의 유인원들을 해방시켜, 마치 모세처럼 유인원들을 이끌고 인간들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탈주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치매치료제가 인간들에게 치명적인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사건을 보여준다. 시저의 옆집에 살던 여객기 조종사는 감염이 된 것도 모른 채 항공기를 몰고 외국으로 나가게 되며, 미국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가 끝난다.

◆ 인류문명의 종말, 그 이후

<혹성탈출 : 반격의 시작>은 마치 좀비 묵시록 영화처럼, 바이러스에 의해 인간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인류문명이 종말을 맞는 상황으로 시작된다. 그 후 10년, 시저가 이끄는 유인원들은 숲으로 들어가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새로운 문명을 일군다. 그러니까 이 세계에는 문명의 종말을 맞은 소수의 인간들이 폐허가 된 도시에 모여 살면서 어딘가에 남아 있을 또 다른 인류와 교신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군집’이 존재하고, 도시에서 멀지 않은 숲에서는 실험실에서 탈주한 유인원들이 초기 문명을 일구며 살아가는 ‘유인원군집’이 존재한다. 두 군집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유인원들은 “인간들은 다 멸종한 것일까? 2-3년 동안 보이지를 않네”라 말하고, 인간들은 유인원들이 어느 정도의 지능과 문명을 지녔는지를 알지 못한 채 유인원들과 접촉하면 감염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서로를 알지 못하는 두 부족이 인간들의 필요에 의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인간들의 문명과 교신을 실낱같이 이어주던 전력이 바닥나자, 인간들은 댐을 손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몇 명의 인간들이 총을 들고 유인원들이 살고 있는 숲으로 들어가는데, 이 장면은 다른 영화에서 서구인들이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들어가는 장면과 유사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인간들은 유인원들에게 포위되고, 양측의 두려움 속에서 총이 격발되면서 한 유인원이 총에 맞는다. 유인원들은 인간들을 시저에게 데리고 가 어떻게 할지를 의논한다. 복수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시저는 인간들이 댐을 고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때 시저의 결단은 실로 놀라운 것이다. 적대와 증오가 일반적일 수밖에 없는 두 집단의 만남에서, 시저는 평화를 택한 것이다. 인간들에게 전기가 생산되도록 돕는 것이 장차 유인원들에게 위협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주장에도 수긍하지만, 그는 평화가 깨질 경우 소중한 가족들과 지금까지 일구어 온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며 주전론을 일축한다.

시저는 내부의 강경파를 누르면서, 인간들과 서로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평화를 유지하려 애쓴다. 마침내 댐이 고쳐지고 인간들의 도시에 전기가 공급된다. 그러나 평화는 계속 유지되지 않는다. 인간들이 유인원들에게 품고 있는 인종적 경멸과 감염원이었다는 증오, 그리고 유인원들이 인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원한과 불신이 증폭되면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평화에 금이 간다. 여기에 유인원 집단 내부에서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두 집단의 충돌은 불가피해진다.



◆ 전편에서 이어지는 반전의 메시지

<혹성탈출>은 1968년에 처음 만들어진 영화로 마지막에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는 반전으로 유명한 SF물이다. 그 후 1973년까지 모두 5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졌는데, 인종적이고 계급적인 문제의식과 전쟁반대와 인류공멸의 메시지가 잘 녹아있다. 2001년에 팀버튼에 의해 <혹성탈출>이 리메이크 된 일이 있었지만, 큰 반향을 얻진 못하였다.

2011년에 개봉한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의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1972년에 만들어졌던 시리즈의 4편 <노예들의 반란>을 리메이크 한 영화이다. 영화는 기껏해야 특수 분장을 활용했던 전작들과 달리, 발달된 모션 캡쳐 방식을 활용한 정교한 인물묘사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모션 캡쳐 기법을 통해 골룸과 킹콩을 연기한 바 있는 배우 앤디 서키스는 시저 역할을 맡아 완벽한 심리묘사를 펼쳐주었다. 이번에 개봉한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시리즈의 5편 <최후의 생존자>를 리메이크 한 것으로, <클로버필드>를 만들었던 맷 리브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은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아주 원론적인 차원에서 고찰하는 영화이다. 영화는 처음 인간문명의 붕괴를 보여주고는 곧바로, 유인원들의 공동체를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유인원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하도록 만든다. 유인원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시저의 고뇌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기가 고갈되어가는 인간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인간들의 고민을 공감하게 만든다. 다른 재난영화라고 한다면, 당연히 인간의 입장에서 유인원 부족을 어떻게 처치해야 할 것인지를 관객들이 함께 고민하였을 것이다. 영화는 유인원의 입장과 인간의 입장을 동시에 보여주며, 종적 친화력이 더 있는 인간보다 유인원의 입장에 더 친연성을 둠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을 보여준다.



이것은 서부영화로 치자면 백인이 아닌 인디언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서부극에 가깝고, 전쟁영화라고 치자면 비서구인들의 관점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보여주는 셈이다. 영화는 유인원과 인간 집단이 평화공존의 길을 찾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전쟁에 나서게 되는 과정을 안타깝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평화공존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평화를 원하는 자라면 외부와의 단호한 협상은 물론이고 쉽게 강경론으로 휩쓸릴 수 있는 내부와도 끊임없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요컨대 영화는 전쟁은 어떻게 촉발되고 평화는 어떤 노력을 통해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를 인류학적 고찰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교훈은 항시적인 전쟁위협을 겪으며 살고 있는 한국의 관객들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던진다. 즉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남한 내부의 전쟁세력에게 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누가 평화를 말하고, 누가 전쟁을 말하는가. 살펴볼지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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