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고, 유쾌하고, 친구 같던 그녀 유채영을 추억하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어떤 스타들은 재능 없이 외모만으로 반짝 빛났다가 사라진다. 어떤 스타들은 재능보다 그 사람 특유의 매력 때문에 인기를 끌어 안티와 열혈팬을 동시에 몰고 다닌다. 지난 24일 오전 위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가수 겸 배우였던 유채영은 두 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그녀는 타고난 댄스가수로서의 재능이 돋보였지만 여러 가지 안타까운 이유로 인기의 시기가 짧았다. 그 후, 예능 프로에서 특유의 과장된 표정과 입담으로 웃기는 연예인으로 주목받아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감초 역할 배우로 활약했다. 이 시기 유채영의 열혈팬은 많지 않았지만 우스꽝스러운 그녀의 캐릭터를 싫어하는 이들 역시 거의 없었다. 그녀는 너무 먼 스타라기보다 우리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엔돌핀’ 넘치는 친근한 친구의 캐릭터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과거 그룹 <쿨>과 <어스>에서의 유채영을 사랑했던 팬들이라면 그녀가 세상에 없는 지금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추억할지 모르겠다. 바로 데뷔시절 <쿨>과 <어스>로 활약하며 무대를 누비던 춤꾼이었던 그녀 말이다. 유채영은 고교시절 <푼수들>이란 그룹의 멤버로 데뷔했지만 그녀가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얼굴을 알린 건 94년 발매된 <쿨> 1집을 통해서였다.

그 시절 그녀는 한국 여가수 중 최초의 삭발 여가수가 아닐까 싶을 만큼 파격적이었다. 그런 까닭에 <쿨>의 타이틀곡 <너이길 원했던 이유>에서 그녀가 노래하는 파트는 하나도 없었지만 당시 그룹에서 삭발머리에 큰 링귀걸이를 한 유채영은 가장 주목 받던 멤버였다. 그 시절 유채영은 흔히 삭발하면 떠오르는 과격한 이미지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신비스럽고 말없지만 눈에 띄게 춤은 잘 추는 ‘쿨’하고 보이시한 이미지였다. 또한 당시 <쿨>은 2집 이후부터 이어진 귀엽고 앙증맞은 그룹은 아니었는데 <너이길 원했던 이유>에서 쿨은 세련된 댄스뮤직에 맞춰 꽤 고난이도의 춤을 선보인다. 유채영은 비록 목소리는 잠깐잠깐 들리는 코러스가 전부이지만 춤에서는 다른 남성 멤버들과 가까운 혹은 그들을 압도할 만큼 빼어났다.



이후 유채영은 95년 혼성 듀오 <어스>를 통해 유로댄스 번안곡인 <지금 이대로>를 부르면서 가수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다. 통 큰 바지 차림에 짧게 깎은 옆머리에 앞머리를 내린 그녀의 스타일 역시 꽤나 파격이었다. <지금 이대로>는 유채영이 댄스뮤직 비트에 어울리는 가녀리면서도 섬세한 목소리를 지녔다는 걸 보여주는 노래였다. 그와 더불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여가수가 섹시하기보다 멋져 보일 수 있는 걸 알려주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녀는 웨이브와 팝핀을 넘나들며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춤을 출 줄 아는 매력적인 춤꾼이었다.

하지만 그룹 <어스>에서의 탈퇴 후 유채영은 가수로서는 물론 연예인으로 어두운 시기를 맞는다. MBC <세바퀴>에서 고백한 대로 작곡가와 매니저 등등에게 연달아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 이후 그녀는 오랜 공백을 가진 뒤 주영훈과 함께 만든 테크노댄스 앨범 <이모션>으로 1999년 컴백한다. 하지만 당시의 테크노 열풍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앨범은 기대만큼 히트는 치지 못한다. 오히려 이 시기에 출연했던 <서세원의 토크박스>에서 특유의 과장된 표정과 입심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영화 <색즉시공>에 감초 조연으로 출연하고 이후 대중들이 기억하는 배꼽 잡게 우스꽝스러운 여자 연예인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유채영은 가끔 예능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과거사나 어려운 일, 행복한 일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녀는 서슴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 눈물은 그녀가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와 달랐다. 진짜 힘들어서 울어 본 사람만이 아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주변에 그런 친구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밝고 씩씩하지만 일이 풀리지 않아 눈물로 산 세월이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유채영은 그런 친구처럼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유채영의 위암말기 기사를 접했을 때의 기분은 그래서 다른 연예기사를 접했을 때와는 달랐다. 많은 네티즌들이 그 어느 때보다 유채영의 죽음을 애도하고 같이 슬퍼하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다. 너무 멀리에 있는 스타가 아니라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던 유쾌한 누군가가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의 그 아픔이 얼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네티즌들이 유채영을 추억하며 그녀의 히트곡 <지금 이대로>를 떠올리는 듯도 하다. 지금 이 순간 유채영의 가느다란 목소리에 실린 이 경쾌하고도 서글픈 노래는 유채영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가 멋있고, 웃기고 ,친구 같던 유채영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위로의 노래 같기도 하다.

“이젠 헤어져야 해/ 음악이 멈추면 난 눈물대신 웃어줄꺼야/너의 뒷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어/내 맘속깊이 간직한채로//슬프지 않아 추억이 있잖아/ 항상 기억할꺼야/ 변하지 않아 시간이 흘러도/ 항상 지금 이대로/지금 이대로!”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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