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무도’, 환상이 깨지면 시청자는 분노한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왜, 가끔 우리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둘러싼 논란을 마주할까? 그 양상도 늘 비슷하게 전개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방송 중에도 실시간으로 배신감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면 이것이 뭐가 문제냐, 이 정도도 수용 못하냐는 또 다른 시청자들이 그 시청자들을 비판한다. 그 후 며칠간, 두 집단으로 나뉘어 마치 모의토론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진영을 나눠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지난 주 <1박2일>이 몰고 온 이슈도 이와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세상 동향을 살피는 사람들은 이날 방송 자체가 꽤나 문제 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약 1시간 40분짜리 방송에서 1시간 30분 동안은 논란과 무관하게 왁자지껄하게 재밌었다. 미녀와 추녀를 대비시킨 마지막 복불복 장면, 단 한 번에 통째로 엎어진 것이다. 단 12분 만에 애써 쌓아온 웃음은 사라지고 차갑게 식었다. 외모의 성상품화라는 논란은 거대한 해일이 되어 모든 걸 덮었다. 일요예능편성 전쟁 중인 박태호 예능국장의 출연도, 모처럼 웃음을 터트린 <무한도전>과 <아빠 어디가>의 지분마저 집어삼켰다.

이른바 ‘<1박2일> 비키니女 논란’ 혹은 ‘비키니 미녀 논란’이다. 그런데 말을 바로 해야지 핵심이 빠졌다. 이번 이슈는 정확하게 말하면 ‘글래머 비키니녀 논란’이다. 여기서 방점은 비키니가 아니고 글래머다. 해변의 비키니야 여름철이면 저녁 뉴스 리포트에도 항상 나오는 흔한 장면이다. 그런데 문제가 됐다는 건 뉴스 화면과는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가 있었다는 거다. 정확하게 따지면 논란은 비키니가 아닌 글래머 위에서 지펴졌다. 추녀와 미녀를 나눠서 여성을 외모로 상품화한 복불복(오나미에 발길질, 미녀들에게 친절)에 대한 반감과 가족이 함께 보기에는 (볼륨이) 과하다는 지적의 불편한 감정은 여기서 발단한다.

그런데 추녀로 등장한 오나미와 김혜선은 꽁트에서 배역을 맡기라도 했지 이 글래머 미녀들은 도시락을 싸온 것 말고는 딱히 활약한 바가 없어서 출연자라기보다 풍경에 가까웠다. 실제 모습을 비춘 것은 12분 중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문제시된 것을 문제시 삼는 진영의 시청자들은 요즘 19금 소재 방송도 넘치는데, 우리나라가 탈레반 치하도 아닌데, 이 정도 수위도 못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꽉 막혔다고 답답해한다. 특히 남성 시청자들은 여성들은 남자 연예인들의 웃통 벗길 때는 좋아하면서 이런 경우만 트집 잡는다며 역성차별과 이중 잣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아가 여성들의 열등감이라 공격하며 성별 대립 구도로 논리를 편다.



성별에 따른 시각차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글래머녀 논란과 얼마 전 <무도>의 ‘홍철아 장가가자’ 특집 등에 따랐던 ‘불편함’은 성별 차원의 사회 갈등이 아니다. 방송 매커니즘의 문제다. 리얼버라이어티을 둘러싼 대부분의 논란은 ‘순수함’이 위태로워지면서 발생한다. 리얼버라이어티에서의 순수함이란 밀폐된 우주선의 산소와 같다.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무진장 애써야 하지만 평소엔 느끼지 못하는 공기다. 그런데 글래머녀가 등장하면서 ‘1박2일호’의 일부 선실 산소 공급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고, 시청자들은 즉각적으로 호흡곤란을 겪은 것이다. 그러고 나면 잠시 잊고 있었던 사실, 우주선이 실제 지구처럼 완벽한 세계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생각해보라. 주변에 누가 다 큰 어른들이 까불고 본능에 충실하게 노는 걸 웃으면서 재밌게 봐주는가. 방송이라서 가능하다. 이 용인이 리얼버라이어티의 순수함에서 나온다. 출연자들은 분명 스타고 해당 분야에서 성취를 거둔 사람들이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장난치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소년의 행동과 정신 연령으로 방송에 임한다. 그 유치함 속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이들이 마치 애들처럼 노는 것을 지켜보며 시청자들도 그 순수했던 그 시절의 정서와 마음으로 동기화한다. 미국 코미디물의 기본 정서가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의 정신연령과 정서 맞춰져 있다면 우리는 보다 어린 로우틴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글래머의 등장이나 야한 농담 등은 대중의 정서에 꼭 맞질 않는다. <아빠 어디가> 같은 육아예능이 다른 나라보다 유독 잘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사내아이들의 정서가 있기 때문에 리얼버라이어티에는 평범하고 못나고, 덜 자란 어른 같은 남자들이 득실거리고, 그런 존재들이 희화화된다. 그러니 이를 두고 남성 역차별을 말하는 건 넌센스다. <무도>에서 노홍철 장가 관련 특집이 논란을 빚고 사장된 것을 예로 들어보자. 노홍철이 성공한 연예인임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리얼버라이어티 <무도>에서의 노홍철은 일반적으로 여성의 인기를 얻기 힘든 특이한 캐릭터다. 헌데 <무도> 내에 진짜 노홍철을 끌고 들어오니 현실과 방송의 경계가 무너졌다. 아무리 유치하게 굴고, 장난을 쳐도 웃으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리얼버라이어티를 지탱하는 순수의 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불편해졌다.



이번 <1박 2일>도 똑같다. 글래머녀들이 복불복 상품으로 등장하면서 순수함이 깨졌다. 아이들의 놀이가 갑자기 사라지고 사내, 그것도 우리와는 거리가 있는 연예인이 됐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존재의 등장은 깔깔거리던 시청자들을 정색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즐기던 세계가 갑자기 다른 세계(현실)로 전환된 것이다. 우리가 따라다니며 웃고 즐겼던 출연자들도 친근한 존재가 아니라 연예인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보기 힘든 ‘글래머 미녀’의 존재만큼이나 낯설어진다. 그러니 그동안 웃으며 봐왔던 이야기에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제작진은 피서지의 환상을 만들려다가 시청자들의 환상을 깼다.

잘 보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이따금씩 배신감을 느끼는 이유는 방송 내의 세상과 현실 사이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항상 달콤하던 사탕에서 쓴맛이 나면 당혹스러움이 배가되는 것과 같다. 제작진은 논란이 거세면 조기진화를 힘쓴다. <무도>는 결방을 선택하며 머리숙여 사과했고 <1박2일> 역시 “<1박2일>다운 순수한 방송을 만들겠다.”고 사과했다. 이런 문제에 갖고 사과한다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담당PD와 제작진은 문제의 본질을 직파했다. 여기서 말하는 순수는 포카리스웨트 광고 같은 순백색의 순수를 뜻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유치하고, 때로는 아이 같은, 리얼버라이어티의 세상을 가능하게 하는 공기의 중요성을 잠시 간과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남녀 성별 대립구도를 벗어나 이해를 하고 인정을 해야 한다. 그 순수함에 경도되는 차이는 시청자마다 다 다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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