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처세왕’, 리얼한 서인국과 만화 같은 이하나가 만났을 때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 월화드라마 <고교처세왕>이 쏜 화살은 코믹오피스 활극이라는 과녁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물론 드라마 초반부만 보면 지금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고교처세왕>은 고교 하키선수인 이민석(서인국)이 똑같이 닮은 형 이형석(서인국)의 부탁으로 컴포Inc에 본부장으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사건들로 시작한다. 대리기사 아닌 대리본부장이 된 고교생 민석은 하지만 그의 비밀을 모조리 아는 김창수(조한철) 팀장의 ‘짝퉁’ 놈 구박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회사 생활에 적응한다. 특히 이 드라마 초반부에 고교생인 민석이 능숙하고 기발하게 회사 PT에 성공하는 장면은 꽤 호쾌한 장면이었다. 물건 운반용 카트를 타고 등장한 민석에게서 어딘지 현대판 오피스 일지매 같은 분위기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화살은 더 이상 회사생활을 다룬 기업물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날카로운 풍자의 화살은 어느새 큐피드의 달콤한 화살로 변한 지 오래다. 민석과 계약직 여직원이었다가 해고된 이후 민석의 비서가 된 정수영(이하나)과의 연애담이 어느새 드라마의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고교처세왕>이 아니라 어느새 <연애처세왕>이 된 듯한 이 드라마는 그럼에도 보는 내내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만든다. 그건 비록 기대와는 어긋났지만 이 드라마가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고등학생과 이십대 중반 여직원의 연애를 꽤나 사랑스럽게 그리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민석과 수영 모두 보는 순간 모든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거다. 그보다 두 사람 모두 연애와는 서툰 아니 연애와는 담을 쌓은 인물로 묘사된다.

우선 서인국이 연기하는 하키선수 민석은 아직 사랑의 감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남자애다. 그를 짝사랑하며 쫓아다니는 정유아(이열음)를 날파리처럼 귀찮게 여길 정도로 그는 알콩달콩한 사랑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낄낄거리고 할아버지하고 아버지와 투닥투닥 노는 걸 좋아하는 고등학생이다. 몸은 이미 우락부락 성인인데 사랑에 있어서는 아직 이성에 제대로 눈을 못 뜬 ‘초딩’ 같다고 할까? 그런 그가 수영이란 인물을 통해서 사랑에 눈뜨고 가슴 아파하고 두근거리고 그녀 없인 살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사랑을 통해 민석은 누군가를 위로하고 다독여줄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이하나가 연기하는 수영 역시 남자들을 휘어잡는 팜므파탈은 아니다. 그녀는 책으로만 연애에 대해 공부할 뿐 오히려 궁상녀와 망상녀에 가깝다. 거기에 소심하고 자신감도 별로 없다. 짝사랑하는 유진우 본부장(이수혁)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거절당한 뒤 술김에 여러 번 전화하는 모습에 이르노라면 이 여자는 연애하기에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 주는 민석을 통해 수영은 자신의 매력을 재발견한다. 그리고 책으로 배운 연애비법이 아닌 각기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 퍼즐을 맞춰가며 쌓아가는 진짜 연애의 처세를 배우게 된다.

<연애처세왕> 아니 <고교처세왕>은 이처럼 진짜 연애와는 거리가 먼 두 남녀가 서로 가까워지고,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다져가는 과정을 꽤나 사실적으로 공들이며 묘사한다. 하지만 민석과 수영을 연기하는 배우가 서인국과 이하나가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가 이처럼 매력적으로 다가왔을까?



<고교처세왕>에서 서인국과 이하나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을 각각 다른 방식이지만 똑같이 사랑스럽게 연출한다. 굳이 나누자면 서인국은 리얼하고 이하나는 만화 같다. 우선 <응답하라 1997>과 똑같은 고교생을 연기하지만 서인국은 민석을 통해 전혀 다른 고교생을 보여준다. 또래의 다른 남자 스타들과 달리 서인국의 연기는 거칠지만 자연스럽다. 서인국은 민석을 통해 이제 어른의 문턱에 갓 다다른 남자애의 표정과 성격과 움직임을 정말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심지어 혀 짧은 소리 내면서 상대에게 개개는 듯한 말투까지 생생하다. 하지만 유쾌한 ‘고딩’의 모습만이 아니라 민석이 운동선수로서 생명이 끝난 뒤 비오는 운동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장면에서는 진짜 슬픔의 감정선을 뽑아낼 줄 안다.

한편 이하나는 만화에 흔히 등장하는 다소 엉뚱해서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처럼 수영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 분야에 있어서 이하나는 동년배의 다른 어떤 여배우들보다 탁월하다. 그래서 어느새 이하나의 수영을 따라가다 보면 이 궁상맞고 소심한 아가씨가 어느새 왜 민석이 반했는지 설득이 될 만큼 사랑스럽고 귀여워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술에 취해 자신의 발밑으로 떨어지는 강냉이를 바라보며 “강냉이 탈출한다, 강냉이”란 대사를 이토록 사랑스럽게 그릴 수 있는 건 이하나가 유일무이한 것 같다. 심지어 무언가 불합리에 상황에 처했을 때 아래턱을 쑥 내밀고 개그맨 장동민처럼 “우쒸, 우쒸.”거릴 것 같은 장면 역시 웃기면서도 너무나 깜찍하다.



이 리얼한 민석과 만화 같은 수영이 만나면서 <고교처세왕>은 오피스활극은 아니지만 보는 이들에게 사랑스러운 큐피드 화살을 날리는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물론 아직 모른다. 민석의 형인 형식이 돌아오면서 드라마 막바지에 이른 지금 이 드라마의 화살이 오피스 활극이란 과녁을 향해 다시 날아갈지도. 그런 기대를 할 만큼 이 드라마 지금껏 제법 처세를 잘 해왔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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