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커플 연기, ‘운널사’와 ‘유혹’의 극명한 차이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공교롭게도 과거 드라마에서 커플 연기를 했던 배우들이 다시 뭉쳤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끈 두 드라마가 있다. 과거 <명랑소녀성공기>에서 커플 연기를 했던 장혁-장나라가 다시 뭉친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과거 <천국의 계단>에서 연인을 연기했던 권상우-최지우가 다시 등장한 SBS <유혹>이 그 작품이다.

과거의 커플이 다시 뭉쳐 지금 현재의 드라마에 등장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복고적 코드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과거 작품의 향수가 어느 정도 현 작품의 기획에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나 <유혹>은 그래서 조금은 옛 트렌드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약간은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로맨틱 코미디다. 요즘의 로맨틱 코미디가 좀 더 일과 사랑에서 능동적인 여성상을 그려내는 것과는 달리 이 드라마에서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이란 인물은 타인에게 피해가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여성이다. 스스로를 포스트잇걸이라고 부르는 그녀는 이건(장혁)에 의해 본드걸로 재탄생하는 중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성장담을 담고 있지만 그 이야기가 보수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유혹> 역시 과거에 봤을 법한 불륜 드라마의 공식을 거의 따라가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초반부에는 ‘10억’을 제안하는 유세영(최지우)와 그 돈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차석훈(권상우)-나홍주(박하선)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좀 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이 드라마는 그렇게 10억을 매개로 만들어진 관계 속에서 네 사람이 감정싸움을 갖고 오락가락하는 전형적인 4각 멜로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운명처럼 널 사랑해>나 <유혹>은 시청률에서는 10%대와 9%대로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화제성이나 평가에 있어서 두 작품은 상이하게 나뉘어진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유혹>은 아예 관심에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서 이 두 작품에서 다시 모인 장혁-장나라와 권상우-최지우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도 상반되게 나오고 있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보수적인 관점을 가진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로맨틱 코미디 멜로 공식을 뒤집어놓은 신선한 설정을 갖고 있다. 즉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가 어찌 어찌해 사랑에 빠지게 된 연인이 결혼에 골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면 이 드라마는 먼저 결혼을 하고 난 후에 점점 사랑을 알아가는 드라마다. 즉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차츰 알아가면서 깊어질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나라가 연기하는 김미영이라는 인물은 요즘 여성답지 않게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력한 ‘모성애’를 가진 인물이다. 그녀가 타인을 배려하고 끌어안는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끌어안는 모습과 거의 유사하다. 이건이 그녀에게 빠져드는 건 바로 그녀가 가진 모성애로 대변되는 강력한 여성성이다. 요즘처럼 사랑보다는 일에 더 몰두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시점에 김미영이라는 인물이 주는 울림은 그래서 결코 적지 않다. 그렇게 여성성을 바탕으로 한 김미영은 이건을 만나 차츰 능동적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는 성장을 보여준다.



하지만 <유혹>의 유세영이란 캐릭터는 이와는 정반대다. 굉장히 쿨하고 뭐하나 부족할 것 없이 살아가는 이 인물은 사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조기 폐경 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차석훈에게 자기 방식으로(돈) 접근하다가 덜컥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그가 유부남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 부분에서 전형적이고 식상한 불륜 드라마의 코드 속으로 빠져버린다.

사실 유세영이라는 캐릭터는 훨씬 더 참신할 수 있었지만 드라마는 그 새로운 이야기로 나가지 않고 익숙한 불륜 드라마의 이야기에서 도돌이표처럼 관계를 반복한다. 당연히 그녀를 연기하는 최지우의 연기가 좋아 보이기 어렵다.

여성 캐릭터의 참신함의 차이는 거기서 함께 화학작용을 할 수밖에 없는 남성 캐릭터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허세 가득한 인물에서 김미영의 모성애를 통해 점점 진짜 인간관계에 대해 알아가는 이건을 연기하는 장혁은 그래서 연기 호평을 받았다. 그의 과장된 코믹 연기는 장나라의 눈물 연기와 괜찮은 앙상블을 만들었다. 반면 최지우가 연기하는 세영 캐릭터의 식상함 속에서 상대역인 권상우가 연기하는 석훈의 행보 역시 식상할 정도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연기력 논란까지 있었던 최지우와 권상우다. 그 정도의 연기 경험을 해왔다면 작품을 선택하는 선구안도 연기력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은 이들에게는 최악의 선택처럼 여겨진다. 도무지 배우의 매력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장혁과 장나라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를 통해 재평가되고 있다. 장혁은 의외의 코믹 연기가 호평을 받고 있고 장나라는 역시 명불허전의 눈물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작품 선정이 만들어내는 결과의 차이는 이처럼 혹독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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