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무도’는 여섯 캐릭터만으로도 충분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토요일 반가운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주말 밤 아저씨들의 나 홀로 맥주 파티를 함께할 EPL이 개막했고, 기성용은 시즌 첫 골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모처럼 <무한도전>이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으로 돌아왔다. 멤버들 간의 야합과 이전투구가 판을 치는, 오랜만에 올드스쿨 <무도>의 매력적인 심리전 말이다. 비록 ‘쌩얼’ ‘깨알’ ‘빅재미’ 등의 신조어를 생산하던 시절의 펀치력에는 못 미쳤지만 덕분에 간만에 재미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잠잠했다. 시청자들은 오랜 시간 쌓아온 데이터베이스에 의거해 예측하고 유추하면서 롤플레잉 게임을 하듯 심리 게임에 함께 몰입했다.

어리둥절하게 해야 했다. 시작은 영화 <도둑들>을 패러디해 <무도> 멤버들이 MBC 신사옥에 침투해 기밀문서를 탈취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상황극이었다. 멤버들은 어렵지 않게 입수했으나 영문도 모른 채 현장 체포된다. 그들이 입수한 자료들은 ‘음악 변두리’ ‘다섯 바퀴’ ‘새 아빠 어디가’ ‘우리 이혼 했어요’ ‘진짜 아가씨’ 등의 말도 안 되는 제목을 달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것들이 시가 100억 원 대의 기밀문서였고, 멤버들은 이를 중국에 빼돌리려한 산업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것이었다. 종범과 주범을 가리는 취조가 시작되면서 본 심리 게임의 막이 열렸다.

대역 연기자가 아니라 실제 베테랑 수사관의 취조술 앞에 ‘예능 짬밥’은 큰 도움이 안 됐다. 정준하는 요구르트 앞에 무너지고, 능수능란한 밀당 취조에 박명수와 정형돈은 톡 건드리자마자 봉선화처럼 바로 입이 터졌다. 두뇌대결과 사기꾼 기질로 살아온 노홍철이 수사관의 유도 심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은 <무도>팬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였다.

사실, 이 게임은 경제학원론으로도 친숙한 ‘죄수의 딜레마’를 가져온 것이다. 공범자인 멤버들 입장에선 서로 협력해 범죄사실을 숨기는 것이 최선인데, 다른 공범의 죄를 불면 벌을 줄여준다는 수사관의 유혹에 빠져 각자 상대방의 죄를 서로서로 고하다가 다 같이 무거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여기다가 예전 <패닉룸> 특집에서도 아이디어를 빌린 적 있는, 수학문제를 풀지 못할 때마다 갇힌 방이 줄어들어가는 스페인 스릴러 영화 <페르마의 밀실>의 설정을 벌칙으로 차용해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더 지니어스> 같은 본격 두뇌게임 예능이 등장한 시대에 이번 <무도>의 심리 게임이 재밌고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어렵고 완벽한 설정에 몰아넣어서가 아니다. 특별출연한 모종준 수사관의 회유, 설득, 협박 앞에 멤버들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크다. 여러 캐릭터가 모여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인 동시에 <무도>가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특별했던 이유다. 아무 준비 없이 심리 게임에 휘말려든 멤버들이 각자도생을 위해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그 예전 여섯 캐릭터만으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캐릭터쇼의 재미를 다시 한 번 느끼게끔 했던 것이다.



게다가 심리 게임에서는 유재석의 1인자 체제는 리셋 된다. 새로운 관계, 색다른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이번에도 가장 불이익을 많이 받은 유재석은 간만에 분노했다. ‘멤버를 다시 짠다’고 깐족거리고, 밉상부리는 박명수에게 ‘10년 동안 들은 것 중 제일 안 웃겼다’며 정색했다. 오히려 심리전이나 추격전의 틀 안에서 캐릭터 변신과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다급한 상황이 오다보니 유재석은 예전 박명수가 예민한 시절, 자신에게 CD를 던졌던 이야기 같은, 체통을 지키고 서로를 보호해주던 평소 그답지 않은 말도 편하게 흘리게 된다.

그렇게 멤버들만 덩그러니 남은 어두운 취조실은 <무도>의 정서와 에너지가 가득한 공간이 됐다. 당근과 채찍, 의리와 실리 앞에서 당황한 멤버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각자 누가 최후에 살아남을 1인이 될지 예측해본다. 그 근거가 되는 데이터베이스는 지난 9년여 간 쌓아온 <무도>월드를 지켜온 기억이다. 제작진이 공들여 구축한 설정도 근사했지만 멤버들의 에너지만으로 이렇게 순도 높은 긴장감과 몰입도를 뽑아낸 것도 기억 속에만 있었는데, 실로 오랜만에 다시 즐길 수 있었다. 심리 게임이나 추격전의 매력은 <무도>가 가장 충만했던 세계를 구축했던 시절, 캐릭터쇼의 묘미에 빠져 살았던 그때의 기분과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간만에 제대로 찾아온 심리 게임이 반가운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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