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법칙’이 ‘정글의 법칙’이 되지 못한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뉴욕에서 3주간 체류하며 촬영한 실험적인 예능 <도시의 법칙in 뉴욕>이 ‘도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막을 내렸다. 서울에서 보호받으며 보드랍게 살던 연예인들이 모든 것을 리셋하고 바닥에서부터 몸으로 부딪히면서 찾아낸 답은 도시인은, 우리는, 사람 때문에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회까지 보면서 꾸준히 머리에서 맴돌았던 질문은 척박한 도시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고찰보다 ‘<도시의 법칙>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대도시에서의 생존을 테마로 하는 ‘시즌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했으니 의문은 걱정과 엉켰다. SBS가 자랑하는 스타PD와 대규모 자금이 투자된 프로그램이 종편 예능보다 시청률에 밀리고, 2~3%대의 말 그대로 애국가 시청률에 허덕이는 까닭에 이들은 어떤 답을 찾았을지 그게 더 궁금했다.

처음부터 의문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3회까지는 낯선 곳에서 함께 의지해가며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하나하나 갖춰가고 평소 봉인된 생존력을 복원해내는 체류기에 기대가 있었다. 힙한 브루클린을 거점으로 공장 지대와 주거지역, 예술과 일상이 뒤섞인 뉴욕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공부한 흔적들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제작진의 과잉된 포부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방송은 급격히 초점을 잃었다. 도시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공감과 위로를 주겠다는 이상은 저 높은 곳에 있으나, 현실은 <체험 삶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제작진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많았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의미, 함께 서로를 보듬고 위하며 살아가는 가족애와 커뮤니티,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뉴욕의 볼거리와 문화 소개, 낯선 땅에서 도전을 하는 진취적 기상, 근본적인 생존까지 너무 많은 것을 두루 다루려고 했다. 허나 도시는 삶과 죽음이 선명한 정글과 다르다. 어느 날 뚝 떨어진다고 해도 훨씬 더 복잡한 관계망과 사회적 맥락에 녹아드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도시의 생태는 낯선 정글 생존과는 다르게 시청자들이 이미 잘 알고 있다. 실제 정착한 이야기도 아니고 짧은 시간 체류하면서 이 넓고 깊은 이야기를 다 다루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 문제가 드러난 대표적인 설정이 일자리 구하기다.



어차피 이들의 조건으로 일자리 구하기란 카메라 없이는 불가능하다. 처음엔 우연히 한인 슈퍼에서 일할 기회도 얻었지만 그런 행운만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실험적인 슬로티비 방송도 아닌데 밑바닥에서 허드렛일 하는 에피소드만 세 달 넘게 내보낼 순 없었을 것이다. 또한 엄청난 제작비를 투자받아야 가능한 기획인데 제안서에다 기획의도만 말하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되는대로 찍어오겠다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획은 새롭고 실험적이었으나 준비된 바는 기존 방송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 며칠이 지난 후 일자리는 점차 영화 스튜디오, 유명한 회사, 패션 스튜디오, 버스킹, 라이브 공연 등 범인들은 범접하기 힘든 준비된 방송용 볼거리로 흘러갔다. PPL은 생존을 위한 발버둥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결국 한국 연예인의 뉴욕 문화 탐방기가 됐다. 심지어 마지막 회의 미용실 아르바이트는 거의 예능 차원의 이벤트였다.

더 어리둥절한 건 3주간 고생한 마지막 회의 피날레를 게스트인 이소은의 근황과 가수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미국 도전기로 장식한 점이다. <도시의 법칙>이 진짜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다면, 도시의 삶에 대해 느끼는 바가 있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면 이소은을 초대해 멤버들이 시청자와 함께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게 아니라 그들이 체험한 것을 우리에게 얘기해줬어야 했다.



<도시의 법칙>은 그렇게 점점 더 애초의 기획의도와는 멀어진 예능과 다큐의 어정쩡한 경계에 머물렀다. 도시와 도시인의 삶의 거울이 되고자 했지만 카메라가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 점점 일상을 채워가면서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 심지어 볼거리도 친구 초대, 새로운 직장 탐방을 계속 반복하게 되면서 선형으로 이뤄지는 스토리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행복이나 공감과 같은 그 어떤 정서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잃었다. <꽃보다> 시리즈가 인기를 얻는 것도 색다른 여행지를 보여주는 재미도 물론 있지만, 여행의 낭만과 스토리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점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로망은 전시한다고 나오지 않는다.

정글의 법칙은 도시에서 통하지 않았다. 도시의 삶을 방송에 담기 위해서는 <정글의 법칙>의 성공 공식들과 다른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정글은 낯선 환경인데다 카메라 앞에 설정과 한정이 보다 용이하다. 허나 도시는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환경인데다 생존의 로망을 풀어내기엔 너무 복잡한 것들이 얽혀 있다. 서울에서 갖춘 지위와 맥락이 리셋 되면서 시작되어야 할 이야기가 제작진과 카메라의 존재로 인해 유지되니 기획 의도를 들었을 때의 로망이 싹조차 트지 못했다. 그런 이들의 체류기에서 공감은 고사하고 얻을 게 없다.

따라서 도시를 계속 다루려면, 더욱 더 카메라와 제작진의 존재가 숨어들어야 하고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체험이 아닌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정보화 시대라는 말조차 무색한 오늘날 젊은 시청자들이 연예인들의 뉴욕 문화 체험기를 예능으로 볼 이유는 거의 없다. <도시의 법칙> 앞에 놓인 시청률은 이 말을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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