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 유재석과 남자 콘셉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나는 남자다>는 단정한 머리, 차려 입은 정장을 풀어헤쳐야 한다. 갖춰 입은 의복 아래 진짜 남자의 무드는 사라졌고, 남자들을 위한 방송이라면서 너무 남자를 귀엽게만 다룬다. 주변을 둘러보자. 너드(nerd), 찌질이, 루저들의 허세와 호들갑, 시니컬, 섹슈얼, 그리고 힙합 코미디가 어쩌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남자들을 위한 코미디 코드다. 우리나라로 치면 의리 열풍의 김보성이나 최민수와 죄민수를 넣을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남자다>는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식의 자조적인, 그래서 모성애를 자극하는 유머와 정서가 셀링 포인트다.

남자들끼리 ‘흑흑낄낄’거리는 동질감을 연료로 삼은 환호성은 늘 짧은 불꽃으로 끝나고 만다. 왜냐면 속해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실제로 그 속에 머물길 원하지 않는데다, 속하지 않은 사람들, 특히 여성의 경우 처음엔 웃을 수 있지만 같은 이유로 쉬이 질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쩍 보면 이런 커뮤니티가 재밌어 보이지만 남들한테 보여주고 설명하기란 여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물론, <나는 남자다>를 막상 보면 재미없는 건 아니다. 장담하는데 회당 5번은 웃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해피투게더><별바라기><세바퀴> 등등 딱히 이슈를 만들지 못하는 예능들의 경우도 그냥 누가 틀어놓거나 별달리 할 일 없으면 그냥 앉아서 볼만하다.

이 프로그램의 무기는 사실 ‘남자’가 아니라 ‘일반인의 사연과 참여’다. 일반인들의 끼와 어리숙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고, 유재석은 국내 최정상 MC로서 다양한 사람들, 특히 세련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순수한 사람들을 가장 잘 어루만져주는 진행자다. 그러나 일반인의 끼와 사연으로 승부를 보는 건 <별바라기>도 알아둬야 할텐데 터져봐야 잽이다. 그 위에서 한정된 주제와 한정된 에피소드가 반복 나열되고, 모든 상황의 마무리를 환호성으로 장식한다. 몇 차례 반복되다 보면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흥미가 떨어진다.



이처럼 한두 번 웃어 놓고도 찾아보지 않게 되는 건 앞서 언급한 ‘남자들을 위한 방송’에 기대하는 정서가 남녀 모두에게 제대로 꽂히지 못했다는 점과 함께 스토리텔링의 부재 탓이다. 잽이 아무리 꽂혀도, ‘강약약 강강강약 강중약’의 리듬조차 없으니 임팩트가 생길 리 만무하다. 속담으로 말하자면 구슬도 꿰어야 보배인데 지금 방식은 그냥 구슬들을 쫙 퍼트려놓은 꼴이다. 이런 구성에 대한 문제점은 파일럿 당시 많이 나왔던 이야기인데 4개월의 준비 기간 동안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리고 알다시피 유재석에게도 스타일이란 게 있다. 그의 성격과 반듯한 이미지는 오랫동안 쌓아온 결과다. 친절함과 따뜻함을 바닥에 깔고 타이르듯 놀리듯 툭툭 건드리는 진행은 정형화된 그만의 방식이다. 그래서 유재석 곁에는 늘 박명수나 하하 같은 받쳐줄 인물이 필요하다. <나는 남자다>의 많은 MC들의 역할이 애매한 게 권오중 이외에 그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인원이 없다.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무나 박명수나 하하 수준의 톱클래스 예능인이 되는 건 아니니까.

유재석의 진행 방식도 크게 카테고리로 나눠보면 에너지로 진행하는 타입에 속한다. 나름의 호들갑과 이끌고 가는 제스처와 에너지가 있는데 희한하게 강호동과 달리 호감을 사는 경우다. 유재석의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런 스타일이 요즘 유행하는 토크쇼 스타일에는 안 맞는다는 점이다.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유재석이라도 안 되는 게 있다. 콩트, 쇼, 리얼버라이어티, 감동코드, 토크쇼 모두 잘 하지만 요즘 종편이나 케이블류의 솔직한 정서와 그의 진행 스타일은 안 맞다. 그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전문가지 아픈 곳을 찔러서 고름을 내고, 독설과 돌직구를 날리는 ‘이빨’ 타입이 아니다.



굳이 안 맞는 걸 할 필요가 없다. 시대가 변했다고 모두가 ‘SNL’과 ‘마녀사냥’을 할 필요는 없다. 유행한다고 근본을 버리고 도전하는 것이 변신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남자다>는 이탈리아 맥주와는 달리 마케팅만 좋았다. 마케팅하는 과정에서 19금 토크라는 설도 있을 정도로 유재석의 이러한 변신에 너무 기대를 품게 했다. 물론 그 점이 이제 독이 돼 실망의 폭을 키웠다.

남자들을 위한 방송이라는 콘셉트도 괜찮고 유재석도 훌륭하고, 일종의 커뮤니티 문화에 호응하는 정서 창출을 하겠다는 포부도 좋다. 그런데 진짜 남자를 위한 콘셉트가 아니라는 점, 유재석의 진행이 탁월하지만 신선하지는 않다는 점, 그 어떤 정서도 못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결과가 나왔다. 유재석의 진행 스타일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종편이나 케이블식 정서를 소화할 수 없다. 세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본인의 생각과 가치를 점점 드러내는 토크쇼의 흐름에 그는 이미지 상 제약이 너무 많아서 어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번 프로그램 런칭을 앞두고 유재석이 전격 19금 토크에 도전하는 것 아니냐는 관심이 일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재석이 어떻게 고정된 자신의 이미지를 극복하거나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고, 그 호기심에 대한 반응은 시청률로 나타나고 있다.

선택의 문제다. 유재석과 지질한 남자 콘셉트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남자다>를 그대로 두는 건 ‘유느님’에게도 실례고, 언젠간 그도 찍고 내려올 정점의 높이를 미리 깎는 행위다. 진짜 남자를 다루려면 진짜 남자의 욕망이 이 프로그램의 기본 정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단편적인 구성도 손볼 의미가 생긴다. 지금은 구성의 설계 수정이 아니라 콘셉트에 맞지 않는 자재를 선택한 것이 문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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