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꾼일지’ 왜 이 좋은 비주얼을 살리지 못했나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드라마 반(反)▲. MBC 월화드라마 <야경꾼 일지>는 판타지 사극으로, 24부 중 현재 8회가 방송됐다. 조선시대 밤에 순찰을 돌던 ‘야경꾼’을 귀신을 쫓는 특수요원으로 상정하고, 궁중 암투를 중심으로 귀기에 얽힌 갈등을 풀어나간다. 역사적으로 존재한 적 없는 가상의 왕 ‘해종’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판타지와 로맨스를 주축으로 깔고 약간의 액션을 가미한다는 점에서 <해를 품은 달>과 비슷한 장르임을 알 수 있는데, <해를 품은 달>과 비교하면 코믹 요소가 더 강하다.

◆ 아무리 퓨전사극이라도 조선시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드라마는 궐에 유성이 떨어지고 귀기가 덮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세자책봉을 앞둔 어린 월광대군은 귀기에 공격을 당해 몸져눕는다. 해종은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는 야경꾼들의 조언에 따라 월광대군을 소생시킬 수 있는 천년화를 구하기 위해 백두산으로 간다. 마침 천년화를 피울 수 있는 마고족의 무녀가 용신족에게 잡혀가자, 해종은 용신을 무찌르고 천년화를 얻는다. 그러나 용신족의 주술로 인해 해종은 난폭한 성격으로 돌변하여 중전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 졸지에 고아가 된 월광대군 대신 기산군이 왕위에 오르고, 월광대군은 궐 밖에서 한량으로 자란다. 12년 후, 용신족의 술사 사담은 왕이 된 기산군의 심복이 되고, 사라진 마고족의 무녀를 찾아 한양에 온 동생 도하는 월광대군과 우연히 마주친다. 귀신을 볼 수 있는 월광대군은 왕을 저주했다는 모함을 받고 쫓기다가 선왕 때 쓰인 ‘야경꾼 일지’를 손에 넣는데...

드라마의 초반에 귀기가 궁궐을 덮치는 장면이나 백두산 원정 장면, 그리고 돌변한 왕의 미친 행동을 담은 장면 등은 나름 흥미롭다. 그러나 이후 드라마는 매우 허술한 전개를 보인다. 일례로 해종이 죽은 뒤, 세자책봉이 예정되어 있던 월광대군 대신 나이 차이도 크지 않은 기산군이 왕위에 오르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개는 아무리 퓨전사극을 표방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개연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기에 서사의 설득력을 크게 떨어뜨린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선왕의 적장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자가 왕위에 올랐던 적은 광해군이 유일하다. 임진왜란이라는 예외적 상황을 겪은 뒤 성인인 광해군이 어린 영창대군 대신 왕위에 올랐을 때에도 정통성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해종 사후 월광대군 대신 기산군을 옹립하는 과정에서 조정의 실세인 박수종과 대비의 결탁이 어떤 복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도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이후 박수종은 또 월광대군을 끌어들이는데, 그의 정치노선이 무엇인지 납득되지 않는다. 그는 월광대군과 기산군 사이에서 그때그때 유리한 입장을 취하는데, “나의 본심은 말해진 적이 없다”는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붕당정치 시스템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자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노선을 취하는 것은 실로 불가능하다. 그를 정치역학을 초월한 유연한 정치를 구사하는 인물로 그리려했다면 훨씬 정교한 묘사가 필요하다. 또한 사담이라는 매우 이질적이고 의문스러운 존재가 조선의 왕을 보필하게 되는 과정이나 소격서를 부활시키는 문제도 대단히 얄팍하게 그려진다. 이는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드라마가 본령으로 삼고 있는 좌도나 사술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에 대한 상당히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무성의하게 그린다.

드라마가 해종이라는 가상의 왕을 설정하면서까지 실제 역사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예 전혀 다른 시공간을 채택했다면 모를까 조선시대라는 전제를 차용했다면 마땅히 고민할만한 정치사회적 시스템을 드라마가 너무 안일하게 다루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드라마는 사건전개에 치밀함이 없고, 문제의식이 유치하며, 상황과 관계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아무렇게나 서사를 전개한다고 볼 수 있다.



◆ 허술하고 방만한 전개

드라마는 정교하지 못한 전개로 인한 개연성의 공백을 뜬금없는 고스트 삼인방의 코미디나 매란방의 풍경 등으로 메운다. 캐릭터는 방만하게 묘사되며, 사건은 중구난방으로 이어진다. 가령 백두산에서 한양으로 온 도하는 도무지 화면에 안착되지 않으며, 그가 월광대군과 만나는 에피소드들은 어수선한 우연의 중복이며, 그가 여곽 등에서 일으키는 소동은 쓸데없이 산만하다.

세자로 책봉될 뻔 하였으나 아버지의 광기로 인해 졸지에 고아가 되고, 출궁한 뒤 트라우마 속에서 귀신 보는 한량으로 자라났다는 설정만 지닌 월광대군은 정일우의 안정적인 연기에 힘입어 그나마 그럴듯한 캐릭터로 보이긴 한다. 왕위계승의 적통이었으나 왕이 되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아야 하는 그는 주술적 세계에서 원한과 사술을 담당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그는 현재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적 존재로, 용신족이 신봉하는 괴수인 이무기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거듭남으로써 스스로의 이무기성을 극복하고 용이 되는 인물로 그려지기에 걸맞다.

그러나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삼각멜로가 형성되는 과정은 감정의 자연스러운 축적에 의해 설득되지 않는다. 단지 극의 전개와 재미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멜로가 개시되는 듯한 억지스러운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드라마는 밑도 끝도 없는 난삽한 에피소드를 펼치다가 8회가 지나도록 월광대군이 악귀와 맞서는 영웅적인 주체로 탄생하여 활약하는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지도 못한다. 전체분량의 3분의 1을 본격적인 서사에 진입하기 위한 방만한 도입부로 낭비하는 지리멸렬한 전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꽤 좋은 캐스팅과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대한 허술한 묘사와 산만한 전개로 시청자들을 몰입시키지 못한다. 그나마 기존 사극에서 보지 못한 인상적인 특징이 있다면 두 명의 왕을 모두 미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해종은 용맹한 왕이자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용신족의 저주에 의해 포악한 의심병자가 되어 가족과 궁인들에게 칼을 휘두른다. 그는 아내의 정조를 의심하고, 아들의 혈통을 의심한다. 그리곤 죽일 듯이 달려든다. 정신세계가 피폐한 폭력가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찍이 <샤이닝>등에서도 다루었지만, 미친 아버지라는 존재만큼 공포스러운 것도 없다. 드라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해종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기산군 역시 심각한 자아 분열을 겪으며 갈수록 인격이 황폐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미친 왕의 발작이나 순간순간의 착각 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드라마는 그동안 사극에서 보았던 왕들이 사실은 이렇게 미친 내면의 소유자들이라면 어떨 것 같으냐며 짓궂은 질문을 던지는 듯 하다. 그렇다. 이무기니 사술이니 많은 것들이 묘사되지만, 사실 미친 사람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진다면 그것만큼 위험하고 오싹한 일이 어디 있으랴.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그것은 아마도 최악의 공포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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