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쓸만한 호러를 만들기는 정말 어려운가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3D 영화, 그러니까 스테레오스코픽 영화의 매력은 늘 과대평가되었고 그마저도 잘못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터널 3D>의 입체 효과는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딱 기대만큼이었다. 누군가는 입체 효과가 보이는 부분은 여자배우들이 비키니를 입고 나오는 부분뿐이었다고 하던데, 그건 아마 그게 그 관객의 관심분야였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영화는 3D에 어울리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무대는 곧 체험공원으로 바뀔 폐광 내부이다. 다시 말해 적당히 폐소공포증을 유발할 정도로 좁고 긴 공간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주인공 주변에 있는 사방의 벽 때문에 늘 공간의 입체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건 우리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인식하는 입체시와 가장 가깝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거대 로봇을 입체적인 대상으로 인식할 상황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멀리있는 거대한 물건일수록 평평하게 보인다. 양눈 사이의 거리를 바꾸지 않는다면 자연스러운 입체시를 만드는 가장 정직한 방법은 될 수 있는 한 등장인물과 벽 사이에 적절한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다.

입체효과를 적절하게 쓴 장면도 꽤 되는 편이다. 박쥐, 눈구멍, 초반 사고 때 날리는 먼지와 같은 것을 보라. 적어도 3D 영화로서 <터널 3D>는 <7광구>에 비해 여러 모로 발전했다. 그린 스크린 범벅이었던 <7광구>와는 달리 비교적 정직하게 촬영된 저예산 호러였기 때문에 이 정도 결과물이 나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효과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있겠지만 영화의 입체효과는 그런 그들의 감상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비교적 효율적인 입체효과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해 긍정적인 언급을 하는 관객들이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일단 상영관이 별로 없다. 그 중에서도 3D로 상영하는 관은 더 조금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입체효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기엔 영화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아무리 3D 효과가 효과적이어도 일단 영화가 좋아야 한다.

줄거리를 보자. 주인공 은주는 친구들과 함께 탄광촌의 리조트로 놀러간다. 클럽에서 그들은 탄광이 저주받은 곳이라고 지껄이는 정신이 좀 이상한 남자를 만난다. 나중에 그들 중 한 명이 그 남자의 습격을 받고 그를 막으려는 동안 그만 실수로 그를 죽이고 만다. 그들은 시체를 탄광에 은닉하지만 그만 그 안에 갇히게 되고 한 명씩 정체불명의 상황에서 살해당한다.



이것만으로는 영화가 어떤지 알 수 없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스타일의 진부한 이야기처럼 보이긴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호러 장르에서 이야기의 진부함을 따지다간 많은 걸 놓치고 만다. 특히 슬래셔 영화의 경우, 진부함은 종종 장르의 중요한 일부이다. 피의 학살에 집중하려면 이야기는 그 잔인한 제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한 것이 좋을 수도 있다. 비평가들에게는 좋은 소리를 못 듣겠지만.

하지만 <터널 3D>는 공포 효과만 봐도 영 점수를 줄 수가 없다. 등급을 15세이상관람가로 잡아놨으니 폭력 묘사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만드는 사람들 스스로가 선택한 핸디캡이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15세이상관람가 호러는 덜 무서운 영화를 만들어도 된다는 핑계가 아니다. 등급 때문에 본격적인 슬래셔 영화로 갈 수 없다면 그에 대한 대안 역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영화엔 그게 없다. 그 때문에 영화는 주인공들이 탄광 안에 갇혀 죽어가는 한 시간 동안 슬래셔에 물을 탄 것처럼 싱겁기만 하다.

조금 양보해보자. 앞에서 저렇게 이야기를 풀긴 했지만 사실 호러 영화는 꼭 무서울 필요는 없다. 장르란 기껏해야 틀에 불과하고 그 틀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감독 마음이다. 수많은 좋은 호러 영화들이 무섭지 않은 길을 걷는다. <식스 센스>는 매력적인 호러 영화지만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지 않는가. <여고괴담> 시리즈도 사실은 초자연현상을 다룬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터널 3D>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영화에서 호러 대신 빈자리를 채우는 건 추리와 멜로드라마다. 제목이 뜨기 전에 우리는 붕괴된 탄광 안에 갇힌 두 광부를 본다. 아마 이들은 뒤에 일어나는 사건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누가 탄광 안에 이 젊은이들을 가두었고 왜 죽이는가. 자연스럽게 미스터리가 발생하고 그 사연을 설명하는 과정 중 멜로드라마가 나온다.



하지만 이 역시 재미와 개연성이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이야기가 핀트가 어긋난 복수담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살해당하는 젊은이들 중 과거의 죄에 직접 책임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단 한 명만이 복수의 도구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비록 그들 대부분이 매력없고 종종 불쾌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그게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 것까지 다 죄라면 우리들 중 무죄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진짜 복수 대상은 듣지도 못하는 곳에서, 복수자가 엉뚱한 사람들을 죽이며 엉뚱한 사람에게 설교를 늘어놓는 걸 보면 그냥 한숨이 나온다. 사연을 묘사하기 위해 깔아놓는 멜로드라마는 지독하게 인공적인 신파일뿐이라 언급하기도 민망하고.

슬슬 좋은, 아니, 그냥 괜찮은 호러 영화의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서 쓸만한 장르 호러를 기대하는 건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은 끊임없이 제시되었다. 처음엔 사다코 스타일의 긴 머리 귀신들을 쫓아내면 숨통이 풀릴 줄 알았다. 다음엔 호러 장르에 진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전문적으로 영화를 만들면 나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어느 것도 진짜 해결책은 되지 않았다. 아마 이건 결과물만 확인할 수 있는 관객들이 뭐라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시스템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딥 레드>와 <서스피리아>를 만든 호러 거장 다리오 아르젠토는 지금 가장 훌륭한 호러 영화를 만드는 나라로 한국을 뽑았다. 매 여름마다 좌절하는 국내 호러 관객들에겐 어리둥절한 소리이며 도대체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묻고 싶어진다. 유감스럽게도 그 인터뷰에는 정작 작품 제목이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장화, 홍련>이나 <박쥐>, <폰>과 같은 영화들을 보지 않았을까. 모두 까마득한 옛날 영화들로 여겨지지만 가장 오래된 영화인 <장화, 홍련>도 기껏해야 10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까지 지나치게 성급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시시한 영화들은 피할 수 없다. 우린 그냥 느긋하게 앉아 그들 사이에 섞여 있는 좋은 호러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기를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대할만한 영화와 재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나홍진은 지금 호러 영화 <곡성>을 만들고 있는데, 앞의 두 편은 온순하게 보일 정도로 센 영화가 될 거라는 소문이 돈다. 비록 그들이 낸 첫 상업 장편 영화가 기대와는 다르긴 했어도 조성희와 허정은 여전히 기대할만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들 중 누군가가 <터널 3D>을 기준으로 여기는 시스템에 구멍을 내주길 바랄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터널 3D>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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