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구왕’ 이렇게 로맨틱한 코미디일 줄이야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족구왕>에 대한 리뷰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지향적이 된다. 비슷해보이는 과거의 작품들을 골라 리뷰 대상과 유사성을 비교하는 게 영화 리뷰를 쓰는 가장 손쉬운 길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여기엔 무언가가 더 있다.

필자의 경우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주인공이었던 80년대 청춘 영화들과 비교하게 된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처럼 다소 황당하고 괴상하게 신파이며 이상할 정도로 낙천적이었던 영화들. 이들이 <족구왕>에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각본가와 감독이 그 영화들을 챙겨봤을 거라는 생각도 안 든다.

그런데도 왜 이런 영화들이 떠오르는 걸까. 그건 스타일의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대학생이 학교를 무대로 한 스포츠 코미디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 시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재에, 이런 주인공을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는 7,80년대에 속한다.

10대말에서 20대초. 가장 예쁘고 빛나는 나이다. 이 나이대를 커버할 연예인들도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문화상품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얼마 전에 송지나 사단이 만들었던 뮤지컬 학과 학생들이 나오는 <왓츠업?> 정도? 대학생들이 하숙집과 동아리에서 연애만 하던 이야기를 시리즈로 내보냈던 '청춘시트콤' <논스톱>도 대가 끊긴지 오래다. 배우들도 자연스럽게 이 단계를 건너 뛴다. (20대 중반까지 고등학생을 연기하다가 갑자기 29세 커리어 우먼으로 건너뛴 배우 천우희 생각이 난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부분 하나로 연결된다. 대학은 더 이상 낭만을 좇는 곳이 아니다. 20대는 더 이상 구매력이 있는 무리가 아니다. 이해가 되는 이야기지만 10대, 20대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매력적으로 보는 판타지도 꿈꾸지 못한다면 이건 심하게 비정상이다. 이런 이미지의 유일한 탈출구가 케이팝 아이돌이라면 더욱 끔찍한 거고.



<족구왕>은 <논스톱>처럼 순진무구한 판타지는 아니다. 영화는 우리가 보는 2010년대의 대학을 무대로 삼는다. 취업 준비와 공무원 시험, 학자대출금과 같은 산문적인 단어들의 폭격 속에서 <논스톱> 판타지는 나올 구석이 없어 보인다. 반대로 영화는 제대한 주인공의 눈을 통해 군대보다 더 군대같은 대학생활에 대한 농담을 터트리며 낄낄거린다. 복학생 주인공의 족구 대회 출전이라는 메인 스토리도 당연히 주인공의 구차하고 촌스러운 삶에 대한 농담이다.

하지만 <족구왕>은 기대 이상을 성취한다. 괜찮은 코미디일 거라는 건 예상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렇게 로맨틱한 작품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우리에게 익숙한 <논스톱> 대학생 판타지의 클리셰를 거의 모두 거두어내고 이를 이룩한 것이다. 여기엔 약간의 판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장치들이 있다. 하지만 그 판타지는 주인공의 상황을 더 나은 무언가로 만들지 못한다.

달라지는 것은 여전히 회색인 세상이 아니라 주인공이 자신을 보는 관점이다. 그리고 그 차이만으로도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 엄청난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던져진다. 아무리 세상이 회색이고 힘겹고 지루해도 작정하고 즐기려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들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두려움밖에 없다는 것.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족구왕>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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