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 혜리의 앙탈, 예능 역사에 기록될 수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무성한 소문 끝에 방영된 MBC <일밤-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이 대박 났다. ‘첫방’에서 올해 <진짜 사나이>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경신했다. 최근 예능 시청률에선 찾아보기 힘든 숫자인 17%대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는 전주대비 3% 이상 상승한 수치였고, 지난 주말 2회분은 시청률 16.9%라는 수치 그 이상으로 뜨겁게 회자되면서 기대치는 훨씬 더 높아졌다. 특히 걸스데이의 혜리는 그 중심에 서서 초고속 ‘인지도’ 진급을 했다.

원래 <진짜 사나이>는 이슈가 잘 안 돼서 그렇지 꾸준히 안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다만 출연자들의 ‘짬’이 쌓여가면서 군 생활에 대한 공감을 느낄 요소가 줄어들고, 프로그램 자체도 ‘짬밥’이 있다 보니 군 생활에 대한 호기심 등 특별한 호재가 없었다. 즉 애초에 연예인을 진짜 군대에 보낸다는 살벌한 리얼리티가 익숙한 볼거리가 되면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와 가치가 점점 하락하는 추세였다. <진짜 사나이>뿐만 아니라 동시간대에 방영중인 SBS <런닝맨>, KBS2 1박2일>이 모두 비슷하게 고착화가 진행되던 차에 등장한 스핀오프가 6시대 일요예능의 무료함을 넘고 넘어 진군한 것이다.

사실 기획이라고 할 것은 섭외가 전부다(물론 이것이 성공과 실패의 바로미터인 만큼 매우 중하고 어려운 일이다). 훈련소에 입소하고 군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 그 사이 군대 무식자 혹은 고문관의 등장은 <진짜 사나이>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새로운 부대에 갈 때마다 늘 만나는 장면이다. 이제 제식 훈련과 화생방을 비롯한 군 기초 훈련은 군대를 안 가고 <진짜 사나이>만 봐도 대충 어떤 것인지 알 정도로 숙달됐다. 그러나 여자 연예인이 출연해서 무릎에 멍이 들어가며 각개전투에 임하고 화생방 훈련장에 들어서자 이 모든 것은 마법처럼 새로워졌다.

시청자들, 특히 군필자들은 그녀들이 어떻게 그 어렵고 힘든 생활에 대처하고 적응해갈지 궁금해 했다. 여성들에게도 새로운 구경거리였다. 같은 여자이기에 출연자들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고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시청자들이 여군 특집에 재미를 느낀 이유는 ‘생얼’에 대한 기대 수준이 아니라 하루아침에 완전하게 리셋된 환경에 놓인 여자 연예인들의 ‘맨 얼굴’이 어떨지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크롭탑을 입고 입소하러온 맹승지나 강아지 데리고 온 지나처럼 엉뚱한 친구들이 대비를 보다 극적으로 이끌었다.



본격 훈련에 돌입하고 나니 생각보다 너무나 부족한 체력에도 악을 쓰고 끝까지 버티려는 마음가짐과 훈련 간 교관에게 말대꾸하기, 울음보 터트리기, 아픈 티 내색하기 등 실제 훈련소에선 있을 수 없는 태도가 충돌했지만 시청자들은 지난 주 이런저런 구설을 소비한 것과 달리 그녀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매우 중요한 포인트인데, 여자 연예인들이 ‘맨 얼굴’로 써내려간 이야기에서 시청자들은 진정성을 찾은 것이다.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이는 몸은 가장 말을 안 듣지만 강한 정신력과 개념, 열정으로 가득 찬 김소연이었다.

그런데 퇴소 직전, 혜리의 단 한 번의 앙탈에 모든 전세가 뒤집혔다. 혜리에 대한 호감을 넘어서 <진짜 사나이>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졌다. 불과 지난 주 방송 전까지만 해도 한편에서 여군 특집이 현실과 다르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한 네티즌이 ‘주작’(조작 없는 사실을 꾸며서 만드는 행위를 의미하는 인터넷 신조어)이란 제목의 정성스런 캡쳐 게시물을 올리면서 <진짜 사나이>에 가스 경보가 발령됐었다. 실제로 조작했다기보다 일종의 무성의가 낳은 편집 실수라 할 수 있는데 대본과 상황 설정 하에 연기했다는 조작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관찰형 예능은 십여 대의 카메라가 며칠씩 촬영한 분량을 추리고 추려서 방송을 내보낸다. 그러니 충분히 편집의 묘는 살릴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문제의 장면은 두 가지 상황을 함께 붙인 것으로 보이는 편집이 너무 거칠었던 게 화근이었다. 여기서 최근 천인공노할 윤 일병사건부터 남경필 경기도지사 아들 사건 등등 군 문제가 오버랩 되면서 불신이 싹텄다. 군에 대한 삐딱한 국민감정은 <진짜 사나이>에 독화살로 날아들었다. 군 생활을 긍정적으로 보여주는 <진짜 사나이>가 재밌을수록 반감을 샀고, 리얼이라고 하지만 실제 군대와는 거리가 먼 방송 속 세상이라며 진정성 따위는 없다고 비난받았다. 이는 프로그램에도 일정 부분 책임과 한계가 있다. 어느 순간 방향이 사병 문화 관찰과 공감대가 아닌 국군 홍보로 너무 쏠렸다.



그러나 라미란을 중심으로 가녀린 여자 연예인들이 자신을 내던지고 고생하며 성심껏 훈련하는 모습에, 엉터리 군가를 웃음 참아가며 배우는 7명의 출연진에 맨 얼굴에, 사람들은 마음을 열었다. 혜리의 앙탈은 이 모든 것을 응축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터미네이터 조교가 무장 해제 되듯 사랑스러운 여자들 앞에서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의 진정성 논란은 녹아내렸다. 군에 문제가 많다며 팔짱을 풀지 못했던 사람들, 방송이란 원래 다 거짓인데 군에서 방송을 만들기에 더욱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을 혜리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무장 해제시켰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진짜 사나이>가 아무리 군 홍보를 훌륭히 한다고 해도 우리는 뉴스를 다 보고 있다.

그렇게 혜리의 앙탈은 문제 많은 우리나라 군대와 싸잡아 비난받던 <진짜 사나이>를 구원했다. 한 소녀의 작고 깜찍한 우산 아래서 ‘진정성 논란’의 소나기를 피해갈 수 있게 됐다. 예능 방송을 보면서도 국방부와 군을 비난할 수밖에 없는 팍팍하고 신경질이 가득한 세상에 잠시나마 여유를 갖고 미소를 짓게 했다. 혜리가 한예슬 이후 애교만으로 대형 이슈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귀엽고 예뻐서가 아니다. 고생스런 훈련 과정을 지켜보면서 쌓여온 감정이 그 작은 몸짓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여군 특집은 출연자들의 진정성과 노력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바꾼 재밌는 사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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